메뉴 건너뛰기

close

국정원의 민간사찰 개입 의혹을 제기해 국가로부터 명예훼손으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가 15일 승소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변호사)와 이번 사건 담당변호사인 차병직 변호사가 나눈 이메일이 잔잔한 감동을 던져 주고 있다.

변호사 선임료 없이 소송을 맡은 차병직 변호사는 15일 당일 새벽 5시경 선고를 앞두고 초조한 마음에 잠을 설치고 있을 박 상임이사의 심정을 헤아린 듯 박 상임이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박 상임이사는 16일 "우리시대의 현주소를 읽는 좋은 글이 되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답장 글과 함께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차 변호사가 이번 재판의 승패와 관계없이 서울중앙지법 제14민사부 재판장인 김인겸 부장판사에게 공정한 재판을 진행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박 상임이사도 전두환 정권 시절 피고인을 배려했던 박태범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를 회상하며 재판장들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부분이다.

차병직 변호사 "국정원 압력 불구 김인겸 부장판사 원칙대로 재판 진행"

먼저 차 변호사는 "그들이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장을 제출했을 때는 미국에 계시더니, 선고하는 날엔 싱가포르에 가 계시군요. 마치 패소가 두려워 피하시듯이 말입니다"라고 가벼운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정치는 종교보다 더 치열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박원순)에게 국가가 나서서 훈장 대신 민주적 방식을 가장해 (고초를) 가하니 말입니다"라며 소송을 건 정부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저희들의 귀감이신 박원순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은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고 열심히 소송을 진행했다"며 "만약 오늘 선고 결과가 우리의 예상과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 윤지영, 박주민 두 변호사의 공로로 돌려야 옳다"고 함께 참여한 후배 변호사들에게 공을 넘겼다.

차 변호사는 "두 사람이 직접 운동장에서 뛴 프로선수라면, 저는 벤치에 앉아 무조건 이기라는 작전지시를 하며 구경만 한 감독에 불과하다"고 겸손해 했다.

이와 함께 차 변호사는 이 사건 담당재판장을 높이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우리의 예상이란 단순한 승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결과를 의미할 뿐"이라며 "그런 뜻에서라면, 두 변호사 다음으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이 사건 재판장입니다"라고 재판장인 김인겸 부장판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차 변호사는 "그는 국정원의 사실상 압력 행사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고 원칙대로 재판을 진행했다"며 "아마 소심하고 눈치를 살피는 재판장이었다면 선고는커녕 아직 변론을 종결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원순 상임이사 "일부 유죄 났지만 피고인 배려한 박태범 부장판사 존경"

곧바로 답장을 보낸 박원순 상임이사는 "태어나서 변호사인 내가 피고가 돼, 그것도 나라로부터 소송을 당해 이렇게 선고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니, 참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며 "이곳 싱가포르에 회의가 있어 나오면서 의식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나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라고 초조한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래도 나는 여기 시간으로 아침 6시가 넘어 일어났는데 차 변호사님은 새벽 5시에 이 메일을 쓰셨으니 당사자인 나보다 더 이 사건에 신경을 쓰고 계심이 틀림이 없다"며 "참으로 고맙습니다. 차 변호사님, 그리고 윤 변호사님, 박 변호사님!"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 상임이사는 "어차피 사건의 결과야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지난 5공이나 6공에서 얼마나 많은 시국사건을 담당해서 변론했습니까! 어차피 유죄는 나게 돼 있었고, 그 사건의 진실과 의미는 결국 역사 속으로 넘겨져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길 것을 꿈꾸지 않았습니까?"라며 "그나마 차 변호사님이 재판부를 칭찬하셨으니 우리가 그렇게 용기 있는 재판부를 가지게 된 것도 역사의 진전이라고 위안으로 삼아야지요"라고 이내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아직도 국정원은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재판부에 그런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데 재판부는 최소한 절차적으로는 그것을 거부했으니까요. 만약 재판부가 패소 판결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런 용기를 보인 재판부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재판부에 신뢰를 보냈다.

그러면서 박 상임이사는 예전 전두환 정권 시절 보도지침 사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박태범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가 잠깐 휴정을 하면서 교도관에게 '저 피고인들이 말씀을 많이 하느라고 목이 마를 것이니 물을 좀 갖다 드리라'고 지시한 것을 회고했다.

그는 "우리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그렇게 깍듯이 대하고 배려하는 것을 처음 보았으니까요. 결과는 일부 유죄가 났지만 변호인단의 한 사람이었던 저는 박태범 부장판사님이 보인 태도를 늘 존경의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며 "승소든 패소든 그것은 모두 저의 운명입니다"라고 재판부에 존경을 표시했다.

"어찌하겠습니까?"라고 개탄한 박 상임이사는 "분단과 권위주의로 고통 받는 나라, 야만과 무지로 얼룩진 땅, 정치적 후진이 지배하는 나라 그곳에서 제가 태어났고, 제가 살아가고, 그 모든 것을 부여안고 함께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어내야 할 그런 곳이 아닙니까"라며 "시대의 고난을 함께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저의 운명이라고 느낍니다"라고 결연한 마음가짐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 상임이사는 끝으로 "차 변호사님, 윤 변호사님, 박 변호사님 선임료는커녕 제대로 시간 내서 차 한 잔도 못한 엉터리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보내주신 준비서면을 읽을 때마다 그 지식과 지혜, 열정에 늘 감탄해 왔습니다"라며 "귀국하면 인사동에서 맛있는 밥이라도 한번 사겠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고 거듭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차병직, #박원순, #인권변호사, #국정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