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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 <여성주의와 소통하기 ① 누구의 민주주의인가 - 민주주의와 여성주의>에서는 민주주의 발전 속에서 여성이 배제된 것, 특히 정치영역과 여성들의 관계에 대하여 논의해보았다. 그러나 시민권에는 정치참여와 대표권 그 이상이 있다. 즉 "시민이 된다는 것은 사회의 진정한 성원으로서 사회와의 관계에서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가지게 되고 또한 사회 성원이라는 이유로 보호와 혜택을 받는 사회적 권리의 수혜자로서 규정되는 것이다(브라이언 S. 터너, 1997)." 따라서 시민권에는 정치적 권리 외의 (복지)사회적 권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글 <여성주의와 소통하기②>에서는 시민권 중 사회권 특히 복지와 여성과의 관계를 논의하고자 한다. 정부의 '일-가족 양립' 정책을 중심으로 여성주의적 사회권은 어떤 내용을 포함해야 하고, 국가의 복지모델은 어떤 것이 되어야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일-가족 양립 정책의 함정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정책과 성주류화 전략이 국가정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일-가족 양립 정책은 사실상 오랫동안 여성단체들이 주장해온 것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취업과 결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여성의 일은 일차적으로 가정이라는 성별분업 의식이 뿌리 깊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여성단체들은 80년대부터 여성의 평생노동권의 보장을 요구하면서 여성이 일과 가족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것이 바로 산전후 휴가제, 육아휴직제, 직장보육시설의 설치 등의 제도화 노력이라 나타났다. 그리고 여성운동 내에 보살핌 노동에 대한 가치 인정과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에 대한 논란이 생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될 정도로 여성정책이 부상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 자본의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되고 '가족해체'현상이 나타난 때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호성희, 2007). 2000년 초는 1980년대와 다른 시대적 배경으로 우선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전면화되었고 노동의 불안정화가 일반화되었다. 여성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가 더욱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노동의 여성화와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이중부담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족 해체의 위기에 있다는 점이다. '가족임금-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족해체의 위기 상황이다. 그리하여 여성이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여성들의 출산파업(?)으로 연결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일-가족 양립 또는 평생노동권 확보 등은 여성운동의 오랜 숙원이었고, 이는 현재도 진행중인 요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시대적 차이를 꼼꼼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올해 초 여성부가 '퍼플 잡'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일-가족 양립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 형태를 확산시키겠다고 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여 경력 단절을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여성에게 일-가족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책의 현실적 효과 정도를 차지하고 왜 여성만 일-가족 양립의 책임이 있는가이다. - 퍼플잡, 그것이 어떻게 포장되든. 일-가족 양립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주체가 여성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여성만이 일-가족양립이 필요한 주체라는 것은 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으로 성별분업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여성에게 양립이란 이중노동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일-가족 양립 정책은 진정한 성평등의 방향하에서 기초화된 것이 아니라 가족임금의 붕괴와 저출산으로 인한 가족 해체의 위기를 구원해야 할 구원투수로서 역할을 더욱 여성에게 부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선택되었다는 점을 떨쳐내기 힘들다. 현실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특히나 전통적인 가족관 변화와 가족제도의 약화현상으로 인해서 이혼증가, 한부모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인에 대한 보살핌이 증대하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가정에서 가정 밖에서 증가하는 보살핌 서비스는 누가 담당할 것인가.  일-가족 양립은 여성의 해방이 아니라 여성에게 전통적 역할, 보살핌 노동과 소득 제공자로서의 이중 역할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의 노동권이란 측면에서 그렇다면 여성의 보살핌 노동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보살핌 노동의 가치를 폄하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긴장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젠더 차원을 고려한 사회권 -탈상품화, 탈가족화, 탈젠더화

 

여성의 보살핌 노동의 가치와 여성의 임노동시장 진입과의 긴장관계는 여성주의자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이슈였다. 일부는 여성들이 가정에서 착취당하는 것을 그만두고 노동시장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보살피는 자로서의 여성이 위치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딜레마가 종종 제기된다. 그러나 이들의 긴장이 결코 가부장적 질서, 성차구분 또는 공사영역의 고정을 지지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임노동시장에의 진입과 보살핌 노동의 인정 이 두 가지 선택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동등한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려는 여성들에게 필요한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복지제도를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이러한 제도화를 위해서 역사적 맥락 속에서의 여성의 사회권, 복지 국가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대 민주주의가 남성경험에 근거하여 구성된 것과 같이 근대 복지제도도 남성생활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여성주의자들은 기존의 사회권과 복지 개념이 여성을 배제해왔고, 사회권의 개념, 특히 복지의 기준이 재개념,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권은 논쟁적인 개념이지만 많은 이론가들이 시민권의 의미에 대한 토론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마샬 (T. H. Marshall) 의 정의이다.  마샬은 시민권을 세 가지 권리로 나누었는데, 이 권리들은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이다. 그 중 사회적 권리란 "그 전체의 범위가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부와 안전에 대한 권리로부터 사회적 유산을 공유하고 사회에 만연된 기준에 따라 문명화된 생활을 할 권리"를 말한다. 이 사회적 권리와 밀접한 것이 사회복지이다. 즉  마샬은 "부르주아 시민적 권리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집단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시민권을 인정하기 위해 경제적 복지, 안전에 대한 권리, 문화적 존재로 살 권리 등을 포함한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샬의 기여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자유주의적 입장에 반대하며 집단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국가 개입을 제안함으로써 실질적 민주주의를 증대하는 것에 기여했다. 그러나 (여성주의 관점에서 볼 때) 마샬의 결정적 한계는 노동자 범주에 백인남성만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주성수, 2006) 즉  마샬의 사회권은 인종을 간과하고, 공-사 구분의 전제에 기초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남성이 가족의 대표로서 시민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근거로 여성들이 시민의 권리에서 배제되었다.

 

또 이러한 사회권의 정의는 복지권의 자격에도 연관이 되게 된다. 복지의 자격 요건을 나타나는 용어로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가 있다. 탈상품화란 개념은 폴라니(Polanyi, 1944)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을 활용하여 에스핑앤더슨(Esping-Anderson, 1990)이 복지국가 이론을 만들었다. 에스핑앤더슨에 따르면 사회적 권리의 질은 시장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달리 말하자면 이것은 개인(또는 가족)이 노동시장 참여와 상관없이 일정수준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이다.

 

이 개념은 사회적 시민권이라는 마샬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복지권의 자격요건인 탈상품화가 되기 위해서는 상품화(임노동자화)가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개념은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시장에서 보내는 남성들의 생활양식에 기초하고 있어서 주로 시장 밖에서 가사와 양육노동 등 보살핌이라는 복지 기능을 수행하며 살아온 여성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여성은 임노동 시장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상품화의 전단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 성인은 어떤 자격을 갖는가? 아내나 어머니의 지위는 노동자 지위와 동등한 권리자격을 갖지 못한다. 시장에서의 유급노동에 비해 가사와 보살핌이란 무급노동은 매우 취약한 사회권의 기초가 되었다. 여성은 남성의 탈상품화 자격에 종속되는 자격을 갖는다. 아동과 마찬가지의 지위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권은 가부장적 질서하의- 공사영역 분리- 임노동 중심의 권리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여성이 사회권을 갖기 위해서는 탈상품화 이전에 그 전제조건으로서 노동력의 상품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상품화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보살핌노동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즉 보살핌노동이 사회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탈가족화의 개념이 탄생되게 되는 배경이 된다. 탈가족화도 에스핑앤더슨이 만든 개념이다.

 

에스핑앤더슨이 인정하다시피 "본질적으로 탈상품화의 개념은 개인들이 이미 상품화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에스핑앤더슨, 2006)." 탈가족화란 용어는 여성의 보살핌 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라 말할 수 있다. 여성의 가족의 복지와 부양의무를 얼마나 완화시틸 수 있는가의 정도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리고 "여성이 평생에 걸쳐 전일제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고무한다는 점에서... 복지국가는 복지책임의 탈가족화에 의해서 여성의 상품화를 지원하고(남성에 대한 의존을 완화하고), 그 결과로서 여성의 상품화를 촉진한다(에스핑앤더슨, 2006) ."

 

이상의 용어 설명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탈상품화, 탈가족화는 근본적으로 임노동자, 노동력의 상품화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 체계이다. 따라서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노동자의 지위를 가지게 하고 탈상품화의 관계로 복지국가와 연관을 맺게 하는 것이 에스핑앤더슨의 탈가족화의 기획 요지이다. 이와 같은 논리 구조 속에 여성의 사회적 권리는 전(前)상품화-> 상품화-> 탈상품화라는 단계적 도식으로 사고되며 복지레짐은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가는 결정적 조건이자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에스핑앤더슨이 말하는 탈가족화를 남성과 동일하게 여성을 탈상품화에 접근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간주할 경우, 이런 구도는 남성 중심의 체제에 여성을 무조건 일치시키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런 구도 속에서는 보살핌노동의 가치가 폄하된다는 평가이다. 그리고 노동과 양육을 병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여성의 복지를 간과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의 복지가 가족(보살핌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노동대안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동시장에 편입될 수 없는 많은 여성을 복지사각지대에 방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보살핌 자체를 사적 책임 영역으로 추방하지 않고 보살핌 자체를 유급노동과 마찬가지로 시민권의 기초가 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보살핌노동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권리, 보살핌제공자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함으로써 여성의 복지가 향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가족 의존은 의존이 아니라 독자적 노동의 영역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중심과 보살핌 중심 대안을 모두 종합하여 여성의 탈가족화를 이중적인 기획으로 정의하는 것이다(김수정, 2004)." 또 이러한 탈가족화의 이중적 기획은 여성복지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그것은 여성복지가 혼인지위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가구를 형성,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여성주의적 사회권은 임노동자로서의 여성의 노동권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여성의 보살핌도 노동으로 가치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노동이 사회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보살핌의 가치 인정을 경제적 보상을 우선시하는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우선 경제적 보상으로 환산하는 것은 임노동에 비해서 대단히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또 경계해야 할 것은 성별분업의 확산에 기여하고 성평등에 기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동의한다. 오히려 여성의 임금 노동자로서의 권리을 확대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임금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여성에게 보다 경제적 독립적인 주체가 되고 하고 이러한 과정이 가정에서의 보살핌 노동의 탈젠더화를 만드는 조건의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한국에서는 떨어지고 있는 심각한 현실이다. 사실상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9년 49.2%이며, 2004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50% 아래로 감소한 수치이다. '07년 이후 3년간 계속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인 추세로 보자면 90년대 이래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정체수준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09년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3.1%로 남녀간 차이는 23.9%p이며, 전년(23.5%p)에 비해 차이가 다소 벌어지고 있다(통계청, 2010). 그렇다면 여성의 노동권도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가사노동, 보살핌에 대한 탈젠더화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성평등 차원의 일-가족 양립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보살핌노동이 탈젠더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의 양성평등을 제도화하는 길이다. 탈가족화를 하여 여성이 임노동자로서의 탈상품화의 자격이 된다해도 가정에서 보살핌노동을 전담한다면 이는 일-가족 양립의 실질적인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 못될 것이다. 양육을 공동분담한다는 성평등 의식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그 의식을 현실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바로 탈젠더화의 제도로서 소개되고 있는 것이 아버지의 육아휴직제도이다. 탈젠더화는 젠더의 재구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남성의 역할을 공식적인 정책변화의 목표로 보는 것이다. 즉 재생산 활동에서 남성의 참여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탈노동, 탈가족, 탈젠더화가 실현될 수 있는 의식의 향상과 제도화의 정착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 일-가족 양립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 그럼에도 3가지 차원이 주로 여성의 보살핌노동 중에서 출산과 양육에 집중되어 있다. 사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보살핌노동에는 양육 외에 보살핌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에 대한 노동이 있다. 이들에 대한 보살핌서비스가 노인, 장애인 복지정책으로 별도로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설명한 탈노동, 탈가족, 탈젠더화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방향성을 상실한 일-가족 양립 정책

 

한국의 복지제도는 '남성-생계부양자, 여성-양육자'라는 성별분업구조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기초로 임금노동에 기반한 복지수급권과 여성의 경제자원에의 접근권 배제, 여성의 보살핌 노동 전담을 낳았다. 궁극적으로 여성의 경제적 의존성 및 남편을 통한 파생적 복지수급권 등으로 나타나 복지체계가 성에 의해 구성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복지국가 모델은 반여성주의적 일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21세기에는 더 이상 존립이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IMF 경제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가족해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때 가족모델이란 '남성-생계부양자, 여성-양육자'형이다. 남성생계부양자-여성양육자모델은 남성생계자로부터 여성이 부양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은 고학력 중산층 주부에만 해당되는 현실이 되었다. 남성일인 생계자는 99년 79.3%에서 2004년 50.6%로 현격히 감소를 하였다. 반면 2인생계부양자는 동일 기간 20.7%에서 49.4%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2인 생계부양가구의 10.2%가 절대빈곤층이라는 것이다(윤흥식, 2007). 저학력층 기혼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는 배우자들의 소득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노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고학력, 전문직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는 남성생계자적 가정 중 혜택의 측면은 관철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비정규직 기혼여성이 남성생계자부양자모델에 포섭되지 않는다. 저소득층은 의무만 있고 혜택은 없는 남성생계부양자 없는 남성생계자모델 혹은 이인소득자-시장양육자모델의 이중체제이다(김영순, 2010)"

 

그러나 아직도 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가족 양립 정책이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중산층 슬로건으로 들릴 수 있다. 남성배우자의 의존에서 벗어나 시장으로 의존을 높이려 해도 많은 비정규직 여성들이 4대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 즉 노동자로서의 사회권이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현재의 노동법으로 보장된 모성보호권조차 언감생심 꿈을 꿀 수 없다. 시장을 통해서 받는 복지혜택도 이들에게는 저조하다. 그렇다면 배우자의 의존도 안되고, 시장으로 의존도 불충분하다면 국가로 이전하는 것은 어떤가? 국가에 의해서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에의 의존을 두고 사적 가부장제에서 공적 가부장제 질서로의 전환이란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 예가 국가의 보살핌 서비스가 또다시 여성 유급노동에 의해서 수행되고, 이러한 노동의 가치는 대부분 형편없게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러나 공적 가부장제의 전환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가의 복지모델에 대한 여성주의적 개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여성의 노동에 대한 보장은 여성주의에 의해서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여성의 관계는 실천적 관계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지국가로의 발전을 위해서 여성이 국가에 대해서 적극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여성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어머니이자 보살피는 자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임금소득자라는 여성의 이중적 기능이 제도화된 것에 기반한다. 이 관계는 "사적영역에서의 남성에 대한 의존이 공적 영역에서 국가에 의존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이 여성들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지금 국가에 의존하게 된 여성은 여전히 권력과 의사결정에서 과소대표되고 있다. 결국 이제 과제는 공적 가부장제와 싸우는 것이다(제인 프리드먼, 2002)."

 

여성의 적극적 실천 속에서 새로운 젠더질서를 가진 복지국가로의 변화, 다른 말로 공사영역분리가 아닌 공사영역통합, 성통합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기반에서만이 일-가족 양립이 실현될 수 있다. "일-가족 양립의 제도화를 위한 여성단체의 활동은 시장노동과 보살핌노동의 상반된 요구를 조정하면서(노동권 확보와 보살핌노동의 사회화) 궁극적으로 성별분업에 기초한 젠더관계의 재구조화를 지향하는 것이었지만 일-가족 양립 제도화 과정에 남성을 포섭하는 제도적 요구로 활성화하지 못하며 일-가족 분리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남성중심적 일터를 가정하는 측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젠더관계의 재구조화의 실현으로 이어가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김경희,2008)."

 

필자는 실질적으로 젠더관계를 재구조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프레이저가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이저(Praiser, 2000)는 복지국가는 새로운 젠더질서를 지원하는 복지국가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복지대상을 남성생계 부양자 모델에서 시민권에 기반한 개인모델로 전환되어, 누구나 생계부양자가 되는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로 변화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국가가 보살핌 노동에 대해서 보상을 하고, 마지막으로 보편적 양육자 모델을 주장하는데, 이는 남성의 역할을 표준으로 삼아 여성들이 남성과 유사한 생활양식을 갖게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여성의 생활양식을 지향하는 것이다. 즉 누구나 보살핌 제공자가 되게 하는 것을 주장한다(장지연, 2004)." 필자는 프레이저의 각각 부양자이면서 동시에 양육자인 모델로의 전향이 남녀 공히 의존적 관계에서 상호호혜적 관계로 진전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아이디어를 신자유주의하에서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겠는가라는 점은 실천적으로 남는다. 

 

한국 정부의 일-가족 양립 정책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복지모델의 방향이 불분명하다. 우선 국가의 여성 몸에 통제권을 높이는 것이 그 목표로서 분명해 보일 뿐이다. 즉 산업인력으로 여성의 노동력에서 이제는 여성의 출산력이  필요한 국가의 여성에 대한 통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일-가족 양립은 젠더관계를 재구조화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된다.

 

결론

 

일-가족 양립은 노동 차원에서 직장일과 가정일 즉 임노동-보살핌 노동의 양립이 가능한 복지모델을 만드는 문제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이미 이 두 가지 노동을 해 왔으며 여성들은 무급노동과 유급노동을 서로 배타적인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부유하지 않는다면 보살핌과 가사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유급노동만을 할 수 없다.

 

성별 노동분업의 핵심적인 측면은 남성들은 가사일을 거의 하지 않는 반면, 여성들은 유급노동에 종사하건 아니건 간에 대부분의 가사일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성평등의 관점에서 다시 일-가족 양립을 재정립하고자 한다면 여성에게 두 노동에 대한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두 노동을 할 적극적 자유와 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가 가능한 현실을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 자유의 측면에서 우선 여성의 경제참가율이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시급하게 비정규직에 대하여 진정한 사회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임노동 시장에서 보살핌 서비스가 평가 절하되는 것을 막을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자리 늘리기 차원에서 제공되는 공공영역에서의 보살핌 서비스 일자리가 턱없이 열악한 노동조건이건도 바로 공적 가부장제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극적 자유로 보살핌노동을 안할 자유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국공립 보육시설을 포함한 국가의 공공서비스를 높이고, 아동수당 등의 신설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가족 양립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사적/공적 가부장적 질서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가족내의 권력 관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논의하여야 한다. 사회정책이 가사노동의 부담을 공공서비스와 남성에게도 이양하여야 한다. 공적 가부장제로서 국가는 가족을 복지의 주체로서 인식하지 않았다. 기존의 복지 정책 속에서는 가족을 상품시장과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인식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족은 복지의 중요한 주체 역할을 해왔다. 특히 보살핌 노동은 시장과 국가의 복지 역할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복지주체로서 가족내의 성평등 문화, 보살핌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가족 양립은 한 사회의 노동규범과 가족 규범, 젠더 관계 규범과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일-가족 양립은 새로운 젠더관계를 정립하는 문제이며, 이를 기초로 한 새로운 노동규범, 가족규범 그리고 대안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젠더민주주의를 세우는 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출산력을 높이기 위한 실용적 측면에서의 접근으로는 일-가족 양립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성의 차이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수용되는 여성의 사회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여성들은 단순 수혜자로서가 아니라 적극적 행위자로서 인정되고,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김경희, 류임량 (2008), "여성의 일-가족 양립 제도화을 위한 활동과 특성", 『페미니즘 연구』 제 8권 제 2호 

김수정(2004), "복지국가 가족지원정책의 젠더적 차원과 유형", 『한국사회학』  제 38집 5호

김영순(2010),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사회권을 통해본 한국의 젠더체제", 『사회보장연구』  제 26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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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애화 기자는 새세상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태그:#일-가족, #여성 , #사회권 ,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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