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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앞에서 참여연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정부여당의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7일 오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앞에서 참여연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정부여당의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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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가 지난 1966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지식의 책무'라는 글에서 설파한 지식인의 책무다.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참전한 베트남전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나온 이 기고문은 그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도 '밥줄'을 끊는 탄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사유화된 권력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불거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지식인 탄압'도 이미 금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례 1 : 국정원의 사상검증] "논문 쓴 경위 자술서로 써달라"

지난 6월 10일 국가정보원 직원 2명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북한경제를 전공한 연구자인 J씨를 찾아왔다. 이들은 "최근 국정원이 체포한 간첩이 J씨가 3년 전에 쓴 논문을 북한에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그에게 논문을 쓰게 된 경위와 그 논문이 북한에 건네졌을 때 어떤 영향이 예상되는지 등을 자술서로 써달라고 했다.

J씨는 "당신들이 말한 간첩이 내가 쓴 논문을 북에 보낸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화를 내면서 자술서 쓰기를 거부하고 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자신이 정보기관으로부터 사상검증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가 막혔다. 그는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고 고발을 검토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가까스로 분을 삭였다.

서울 강남의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인 J 박사는 연구소 소장으로부터 대외활동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한다. J 박사가 "대외활동의 하나로 외부에 기고한 글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상반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J 박사는 개의치 않고 대외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국책연구기관이다 보니 아무래도 '자기검열'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고 토로했다.

[사례 2 : 통일부의 진보학자 솎아내기] 장의관 통일교육원 교수 재임용 탈락

사상검증과 자기검열의 피해를 토로한 두 J 박사의 사례는 오히려 '사소한' 일이다. 통일부 소속 교육기관인 통일교육원의 장의관 교수는 지난 5월 31일 늦은 오후에 통일부 담당과장으로부터 '재임용 탈락'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전화 통보를 받았다.

통일부 계약직 공무원 신분인 장 교수는 8월 31일로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었지만 올해 들어 자신보다 앞서 계약이 만료된 동료 교수 3인도 모두 계약이 연장되어 재계약이 안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더구나 통일부는 계약을 해제할 경우 90일 이전에 통보하도록 돼 있는데 5월 30일까지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던 마지막 순간에 "계약 연장이 안 되었다"는 일방적 전화통보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장 교수가 이유를 묻자 담당과장은 어물어물했다고 한다. 장관 면담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하고 대신 엄종식 차관을 만날 수 있었다. 장 교수는 탈락 이유를 물었으나 오히려 엄 차관은 장 교수의 '이념적 성향'을 운운하면서 "문제될 만한 발언을 했냐"고 되물었다.

현재 통일교육원 교수진 9명 중 5명은 계약직이고 4명은 별정직 공무원이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장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통일교육원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 2008년 장 교수를 포함해 진보성향 학자의 재임용 탈락설이 있었지만 아무 일 없이 넘어갔는데 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이다.

이와 관련, 장 교수는 "본부(통일부)에서는 내 이념적 성향을 운운하는데 문제될 만한 발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에)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과 달리) 공무원 신분이라서 나름대로 정부에 비판적 글을 쓰지 않았는데 뒤통수를 친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는 재임용 탈락 사유와 관련해 표면적으로는 '실적 미비'를 내세우지만 실제적으로는 '친노무현 정부 성향의 진보학자'인 탓이라는 게 말이 나오고 있다. 장 교수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8월 중에 통일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현인택 통일부장관.
 현인택 통일부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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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3 : 통일부의 비판 틀어막기] 정부 입장에 반하면 입도 벙긋하지 말라?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재임용 탈락이라는 극단적 사례까지는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정부출연연구기관들에서도 유사한 탄압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 대북정책에 반대 의견을 편 한 국책연구기관의 선임연구위원인 K 박사에게 가해지고 있는 대외활동 금지조치 및 징계압력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에 재직 중인 K 박사는 지난 4월 자신이 맡고 있는 한 사단법인 포럼 대표의 자격으로 '금강산 관광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의 조찬 강연회에 참석해 "금강산 관광 중단의 대가는 유무형의 경제 손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관광 중단으로 남측이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액은 1조8778억원 이상으로 집계된다"고 밝힌 바 있다.

K 박사는 또 천안함 사건 이후 6.2지방선거 뒤에 정부가 대북심리전 방송을 재개하기로 한 것과 관련, 한 보수신문이 "전문가들의 찬반의견을 싣기로 했다"며 자신에게 찬반 여부를 묻고 청탁을 해와 연구원 내부절차에 따라 통보(신고)를 하고 대북심리전 방송에 반대하는 취지의 기고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채 1주일도 안 되어 6월 중순께 원내 연구원들이 연구 방향과 건의사항 등을 논의하는 '연구위원 협의회' 회의에 통일부에서 보낸 업무협조전 형식의 문건이 회람되었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그 문건에는 K 박사의 이름과 함께 정부 정책에 반하는 대외활동을 한 두 사례(금강산 관광 관련 조찬 강연 및 대북심리전 방송 반대 기고문)를 적시해 대외활동 금지와 징계를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와 관련, 참석자들은 열띤 공방을 벌였으나 규정과 절차를 어기지 않은 만큼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연구원측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통일부에서 (징계 요청) 문건이 온 게 아니고 기고문과 관련, 내부에서 연구위원들이 논의를 하다가 마무리되었다"면서 "특히 대북심리전은 고도의 정치적 영역인데 왜 경제 전문가가 나서서 영역을 침범하느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 연구자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대외활동의 절차(신고)에는 문제가 없을지라도 내용과 수준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연구원의 한 박사는 "학자에게 그런 정도의 얘기도 못하게 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연구원은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국무총리실 소관이지만 실제로는 통일부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공교롭게도 현인택 장관은 학자 출신이다. 그런데 통일부장관 취임 후 그가 한 일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미명 하에 '기다린 것뿐'이다. 그래서 대북정책은 '부작위'로 일관하면서도 정부에 비판적인 진보 지식인을 탄압하는 데는 신속하게 작위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태그:#통일부, #현인택 , #민간인 사찰, #통일교육원, #장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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