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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경희대 학생에게 어머니가 봉변을 당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경희대 패륜녀'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환경미화원의 딸이라고 신원을 밝힌 이는 13일 12시 15분경 경희대에서 청소부인 어머니가 당한 일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을 녹취했다는 파일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습니다.

녹음파일 속의 '경희대 패륜녀'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쓰레기를 치우라'는 명령과 함께 욕설을 퍼붓습니다.  여대생의 앙칼진 목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인터넷은, 흥분과 격정의 도가니입니다. 자식뻘 되는 여대생에게 수모를 당한 아주머니에 대한 동정과 더불어 저런 질 나쁜 인간은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성토 그리고 응징의 글이 넘쳐납니다.

"저런 애들은 그냥 격리시켜야…" "제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죽탱 날리고 경찰서 갔을텐데, 열받네요" "신상터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저런 애들은 좀 먼지나게 털려봐야" "나중에 딸 낳으면 예절교육 잘 시켜야지 ㄷㄷㄷ"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희대 측에서도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욕설 사건이 일어난 여학생 휴게실 주변의 CCTV를 분석하는 등 문제의 학생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총학생회에서도 이미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라며 공식 입장을 표명했고요.

경희대 패륜녀, 이 학생만의 문제일까

인터넷의 고발로 시작된 '패륜녀 사건'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기사로 작성되고 공중파 뉴스까지 탔으니, 이쯤 되면 이 여학생도 '루저녀'마냥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보여집니다.

확실히 이 여학생이 '네가지(싸가지)' 없는 짓을 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네가지' 없는 짓을 한 만큼, 그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패륜녀' 한 사람만 처절하게 응징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일까요? 이 일을 단지 한 여학생과 청소부 아주머니 사이에 일어난 우연하고도 사소한 개인적인 다툼으로 치환해도 되는 걸까요?

이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학생의 입에서 쏟아져나온 주옥같은(?) 욕설이 아닙니다. 그에게 모욕당한 사람이 다름 아닌 사회의 '최약자'라 할 수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였다는 거지요. 비정규직의 설움을 온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노동자라는 점입니다.

대학 곳곳을 걸레로 훔치는 '용역'이란 이름의 청소부 아줌마들은 새벽 5시에 출근해서 하루 8시간 이상 일합니다. 그렇게 일해서 손에 쥔 돈이 겨우 최저생계비를 넘는 수준입니다. 이들에게는 변변한 쉴 곳도 없습니다. 대부분 탈의실도 없어, 옥상이나 계단 밑에 쭈구려 앉아 끼니를 때웁니다.

임금인상 따윈 꿈도 못 꿉니다.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행여 잘릴까봐 제대로 항변도 못 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저 잘리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

'사회적 패륜' 바로 잡아야 제 2, 3의 패륜 막는다

돈으로 사람의 값어치가 매겨지는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이들은 사회계급 최밑단에 위치한 바닥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위원은 15일자 자신의 기명칼럼에서 이들을 "하층민" "현대판 노예"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직장 따라 신분 등급이 매겨지는 작금의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경희대 여대생이 사람이 모인 휴계실에서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함부로 하대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은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요? 그 점에서 양극화가 내포하고 있는 계급분열의 위험이 필연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 '경희대녀'의 음성파일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여대생의 모욕을 면전에서 당하고도 청소부 아주머니가 아주 강하게 혼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 분의 후덕한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혹 '용역' 신분이라는 자괴감 때문에 스스로 위축돼 할 말도 다 못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더군요.

짧게 말하려다 길어지고 말았습니다만, '경희대녀'의 '패륜'은 단지 일 개인만 벌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생각입니다. 그보다 못 가진 자, 노동자, 비정규직 등을 하찮게 보고 무시하는 '사회적 패륜'부터 바로 잡아야 할 문제지요. 그것이 제2, 제3의 패륜을 방지하고, 청소부 아주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바른 대응 아닐까요?


태그:#경희대녀, #비정규직 차별, #경희대 패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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