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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동구 일산동 바다에 있는 대왕암
 울산동구 일산동 바다에 있는 대왕암
ⓒ 울산동구향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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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호국용이 되겠다던 문무왕의 수중릉은 경주 감포인가, 울산 동구 일산 바다인가.

현재 문무대왕 수중릉은 경주 감포(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67년 7월 24일에는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반면 울산동구 대왕암은 문무왕 왕비의 수중릉인 문무대왕비릉으로 알려져 지역의 문화유산해설사까지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왕비의 릉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민들이 주축이 된 울산동구향토사연구회(회장 심우섭 변호사)는 "1960년대 말 지역의 한 학자가 울산대왕암을 왕비의 릉으로 잘못 저술하면서 왜곡돼 알려져 왔다"며 십수 년째 진실규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울산동구향토사연구회는 4월 3일 이런 진실규명의 일환으로 지난 1997년부터 진행해 온 제 9회 문무대제를 대왕암이 있는 울산동구대왕암공원에서 열었다. 문무대제는 이곳에 잠든 문무왕의 혼을 달래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다지는 의미로 열리고 있다.

문무왕 비문에 "고래도시에 묻어라"

울산동구향토사연구회는 여러가지 정황 증거를 제시하며 울산동구대왕암이 진짜 문무대왕릉이 맞다는 입장이다.

대왕암을 정점으로 하는 이곳 바다에는 여러가지 기암괴석이 동해바다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특히 문화재청은 지난 3월 17일 울산대왕암공원을 "제 2의 해금강"이라 칭하며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이곳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곧 명승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대왕암공원에 1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토목공사로 고래체험장 등을 만들려던 지자체의 계획이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토목공사를 반대하며 명승 지정 활동을 벌여오던 동구향토사연구회를 비롯한 주민들은 크게 환영하며 문무대왕릉 진실규명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울산대왕암 주변에는 신라 왕들이 자주 찾았다는 화진 바닷가를 비롯해 삼국통일 후 신라 왕들이 즐겨찾았다는 어풍대, 해산물 '군소'가 많이 나 이름 붙여진 군수밭, 일산마을 동쪽에 있으면서 바다속에 있는 바위가 마치 고래 모양 같다고 붙여진 고래듬 등이 있었다.

또한 조개듬, 지네듬, 형제듬 등 절경의 바다와 어울린 바위들이 즐비했는데 1970년대 초 인근에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이 들어서면서 매립되었거나 남아 있어도 일반인들이 볼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왕암 주변은 여전히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울산대왕암 인근에 있으며 지금은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고물늘방. 약수터인 이곳은 단오날 목욕을 하거나 주민들이 야유회를 즐겼다고 한다.
 울산대왕암 인근에 있으며 지금은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고물늘방. 약수터인 이곳은 단오날 목욕을 하거나 주민들이 야유회를 즐겼다고 한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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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왕비릉으로 알려졌나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이 자신을 화장해 (서라벌) 동쪽 바닷가에 수장해 나라를 지키도록 하라는 유언이 기록돼 있다. 기록으로는 문무왕릉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경주 감포의 대왕암이 문무대왕릉 사적으로 지정되던 1967년 무렵, 울산의 역사학자인 이유수 선생은 울산대왕암이 문무왕의 왕비 수중릉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역사서를 저술했다. 이때부터 울산대왕암은 왕비의 릉으로 알려지며 점점 굳혀져 왔다.

하지만 이 저서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 울산 동구 출신이며 이 지역에 조선소가 들어설 때 자문 역할을 했던 김병희 박사(95)도 이곳이 왕비의 릉이 아니라 문무왕의 릉이라는 이론을 펴고 있다.

울산동구향토사연구회가 제시하는 증거 몇가지. 우선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된 문무왕의 비석 문헌을 든다. 비석 뒷면 비문에는 "경진에 수장하라"고 했는데 고래 '경'자와 나루 '진'자를 썼다.

울산에 있는 대표적 국보인 반구대암각화에 고래그림이 있는 등 울산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고래도시로 알려져 왔고, 문무왕 비문에 있는 이 글이 울산의 문무왕릉이 맞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

또 하나, 문무왕 당시 지리적 여건이다. 당시 서라벌과 울산대왕암은 말을 타면 하루 거리인데 반해 감포는 700미터가 넘는 토함산 자락이 가로막혀 3일이나 걸린 거리였다는 것.  경주와 감포간 직접도로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개통됐다.

또한 울산 경주를 오가는 강을 그 예로 든다. 경주의 입구인 입실에서 태화강에 이르는 동천강은 특이하게도 북쪽(입실)에서 남쪽(태화강)으로 흐르는데, 당시 경주에서 배를 타고 울산으로 왕래한 것이 그 증거라는 것.

또 입실에서 경주 사이에 난 남천강은 남(입실)에서 북(경주)으로 흐른다. 때문에 당시에는 두 강을 배로 왕복하며 경주와 울산을 오갔고, 이렇게 교통이 편리한 울산에 문무왕을 수장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울산동구향토사연구회 정일호 사무국장은 "내가 어렸을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도 울산대왕암을 '댕방'이라 불렀고 지금도 부르고 있다"며 "댕방은 대왕바위를 줄여 부른 말이다"고 했다.

그는 또 "당시 시대상으로 왕비의 릉을 수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또한 울산대왕암이 왕비의 릉이라는 역사적 문헌이 아무것도 없다"며 "울산대왕암이 문무왕릉으로 확실하며 반드시 이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 3일 오후 1시부터 울산대왕암공원 내 울기등대 앞에서 진행된 문무대제. 문무왕을 추모하고 대왕암 진실규명을 추구하는 행사다.
 4월 3일 오후 1시부터 울산대왕암공원 내 울기등대 앞에서 진행된 문무대제. 문무왕을 추모하고 대왕암 진실규명을 추구하는 행사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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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울산동구향토사연구회가 주관해 4월 3일 오후 1시부터 울산대왕암공원 내 울기등대 앞에서 열린 문무대제는 지역주민 등 수백 명이 참여한 가운데 문무왕에 제례를 지내는 행사 등으로 진행됐다.

식전 행사로 풍물놀이, 축원무, 검무, 울산학춤 등이 공연됐고 오후 2시 30분 의복을 차려 입은 주민들이 문무왕께 제를 올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울산동구대왕암, #문무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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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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