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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파병한다고 한다. 며칠 전, 친구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서울에 올라와 신문을 보다가 섬뜩한 기사를 읽었다.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130~150명의 민간 전문요원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250여명의 군과 경찰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평화재건이었다.

 

총을 들기는 하겠으나 살상용은 아니다, 총을 쏠 수도 있으나 사람이 죽어도 살인은 아니다, 는 '헌재식 논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프간 파병소식을 접한 순간,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한 맺힌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라크는) 왜 갔다와서…."

 

며칠 전, 친구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00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느닷없는 통보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를 무시한 채 과속으로 달리던 트럭에 치였다고 한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이야.

 

이군은 3년 전 입영소 앞에서 작별을 고했던 나의 입대 동기이자 내무반 동기였다. 경상도 사내인지라 입이 거칠고 행동이 우악스러웠지만, 악의 없는 마음가짐만큼은 천의무봉에 가까웠다. 아직도 내 뇌리에는 3년 전 헤어지면서 반달모양의 눈웃음을 보내던 녀석의 모습이 남아있다. 그 인사에 화답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헛헛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순박한 사내아이를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빨리 데려갔다.

 

빈소에 도착해서 얼이 빠졌을 때,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이군의 할머니가 남기신 한 마디 때문이다. 한 시간 동안 통곡하시다가 끝내 지쳐서 쓰러지시던 이군의 할머니는, 족히 1시간동안 한 마디 말만 되풀이하셨다. "이놈아, 이라크는 왜 갔다와서…."

 

할머니의 가슴에 응어리가 졌던 건, 손주 녀석이 이라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이군과 나는 이라크 파병 동기다. 2005년 여름, 우리는 자발적으로 파병 신청을 했고 나름 혹독한 선발과정을 통과해 최종 파병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끄러운 줄 안다. 죄의식도 느낀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당시 파병을 선택했던 것은, 파병이 권태로운 군 생활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물론 비겁한 변명이다. 그 때 이군과 내가 망각한 게 있다. 우리가 걸어 들어가는 길이 지옥도이고 불구덩이인지는 몰랐던 거다.

 

우스갯소리로 파병동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던 말이 있다. "한국 군대에서 죽으나 이라크에서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다." 그 말은 한국군대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향한 고도의 풍자였다. 사실 한 번 자대 배치를 받으면 그곳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군생활의 부조리함 때문에, 군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변화의 폭이란 좁다. 고참이 제대를 하고 신병이 들어오는 일 뿐이 더 있겠는가.

 

그러던 중에 파병이라는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고, 이군과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파병에 목을 매었다. 물론 파병 수당도 적지 않은 지원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파병지원자들은 돈을 목적으로 떠나지 않는다. 으레 인간은 극한에 처하면 그 고통에 면역력이 생겨 더 큰 고통 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여기 보다 낫겠지'하는 심정으로.

 

그 때는 몰랐다. 파병이 원죄를 낳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길 거라는 걸. "이라크는 왜 갔다와서..."라는 이군 할머니의 말씀. 이군의 장례식장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알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아무렇지 않게 선택했던 파병 생활이 이군의 죽음 후에도 죄의식처럼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가슴은 핏덩이 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면서 가슴이 찢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금쪽같은 자식이 이라크라는 험난한 곳에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심정이란 어땠을 까?

 

나는 이군의 할머니가 하셨던 말을, 우리 부모님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이라크에서 귀국하던 날. 어머니는 나를 잡고 우셨고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거 엄마가, 니 이라크 보내고 나서 보름은 앓아누웠다. 부모가 못나서 아들이 돈 벌러 간 거라고 가슴을 치더라."

 

남자는 철이 없으면 남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 하는 동물이다. 나는 눈앞의 고통은 직시하면서도 주변의 걱정과 만류를 고려하지 않았던 거다. 필시 이군의 할머니도 우리 부모님과 같은 생각을 하셨을 거다. 부모님들은 당신네 아들과 손자가 먼 나라로 목숨을 걸고 떠나는 것이, 못내 당신들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지 않나. 아들들 군대 보낸 것도 못난 부모 탓이요, 아들들이 군대 가서 돈을 벌겠다고 작정한 것도 못난 부모 탓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른다. 보다 근본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아들(들)이 지어야 할 죗값을 부모님들이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죄는 죄를 낳는다. 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은 여러 사람의 피눈물을 낳고 있던 셈이다.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가서는 안 된다. 총을 드는 행위만으로, 총을 드는 곳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생 원죄를 짓고 살아가게 된다. 파병수당이 한 인간의 존엄성을 보상해주지도, 반인륜적인 행위에 동참했다는 오욕을 씻어주지도 못한다.

 

상처와 죄를 짊어져야 하는 건 파병 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들도 원죄의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하물며 무고하게 죽어갈, 또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통치를 당해야할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나. 이국땅으로 아들을 보낸 부모친지들이 울고, 그 땅에 있는 가족들은 자식과 형제를 잃고 매일같이 눈물 흘릴 것이다. 총은 피와 눈물을 부른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걸 굳이 해야만 하는가? 세계화, 세계화 하더니 피눈물의 세계화라도 추구하겠다는 건가?

 

파병을 하는 쪽에서는 국익과 대외협력관계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중동과 이슬람 국가에는 분열과 분쟁의 불씨를 지필 수가 있다. 평화유지군이기 때문에 비폭력을 추구하며, 또 평화유지군은 전쟁과 상관없다는 군 당국과 정부 측의 자기합리화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어전술에 불과해 보인다.

 

살인을 돕거나 방조한 것도 살인죄에 속한다면, 전투 병력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평화유지군'도 전투 병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나라는, 파병하는 횟수가 늘더니 둘러대는 말솜씨만 늘어난 것 같다. 그 때 가서 이렇게 말하겠지. 죽이진 않지만 총은 들겠다. 설령 총을 쏘아 누군가가 다치더라도 그것은 살상행위가 아니다.

 

가지 말아라. 20대에 죄인이 된다면, 앞으로 죄를 안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 너무 길다. 또 가족들이 눈물 흘릴 눈물의 양은 한이 없다. 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보내서도 안 된다. 더 이상 죄와 죄인을 재생산하지 말라.

 


태그:#아프간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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