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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정국 이후 멈춰 버린 한국 정치권 시계

 

 2009년 5월 23일, 힘들었던 한 주 동안의 고단함에 아직 묻혀 잠들어있던 시민들의 단잠을 깨운 것은 충격적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비극적이었던 끝없는 속보들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세상은 다시금 일상성을 회복하고 한국의 시계는 2009년 7월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3일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한국 정치권의 시계는 아직 2009년 5월 23일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진정 고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을 살리는 논의와 결과는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고인의 49재를 마지막 시발점으로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소망했던 '원칙과 상식' 통하는 사회, 무분별한 이데올로기적 규정짓기가 사라지고 뿌리깊은 지역감정이 사라진 세상에서 힘들게 이룩한 민주주의가 보다 성숙하길 바란다. 또한, 시민들의 '참여'가 제한당하고 '소통'의 부재가 당연한 것 같은 현 시국의 문제도 함께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참여민주주의와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원리인 참여와 소통을 보다 강화하는 '참여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임기 마무리 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개혁이었던 참여민주주의를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목소리는 점차 늘어났다.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외교)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시민사회 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참여의 기능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시민단체와의 상호협조를 통한 참여는 제한적"이고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처럼 "사실상 위원회의 기능과 그 결과물을 바라볼 때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노무현 민주주의의 가장 큰 실패를 열린우리당의 실패에서 찾으며 시민들의 "정치-경제적 개혁의 열망"에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을 안겨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실망을 안겨줘 대한민국 정치 악순환인 '열망-실망' 싸이클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참여민주주의 실패를 정당과 시민과의 '책임'이라는 연계고리가 약하고 끊어진 데서 문제를 찾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과정과 그 목적의식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지역감정에서 자유롭고 당원이 주인인 정당, 정당과 시민(정당을 지지하는 당원 및 투표자)과의 연계고리가 강화된, 민주주의 제도에 부합하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 소속정당을 나와 소수의 여당을 창당한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 정치인들에 의해 당의 정책기조가 바뀌거나 성향이 다른 정당과의 연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당원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정당의 뿌리내림을 소망했다. 그렇기에 임기 말,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패배를 자인하면서도 열린우리당에 대한 애착과 흡수통합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완강한 거부의 의사를 밝힌 것이다.

 

  노무현과 그가 함께했던 열린우리당은 지금 한국 정치권에 남아있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소망했던 당원이 주인이 됨으로써 '책임'의 연결고리가 강화된 정당은 비록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고 소멸되고, 다양한 시민단체와의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참여'가 위축된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에 그가 추구했던 참여민주주의가 대한민국 정치권의 빛과 소금이 되길 바란다.

 

좌파 신자유주의

 

  '좌파 신자유주의',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의 추진필요성과 참여정부의 경제, 무역정책을 간단하게 압축한 말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해 진보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김상조(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스스로 정체성을 잃고 좌초되는 과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정책의 핵심인 작은 정부, 시장의 자율성 등 이 경제의 민주화라고 표현되는 고용보장, 노동의 정당한 대우 등에 직접적으로 상반되는데 어떻게 좌파의 경제적 성장모델로 삼을 수 있냐는 반문이 핵심일 것 이다. 최장집 교수는 보다 강한 표현으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민주당)이 진보적인 정권이 아닌 보수적인 정권과 정당임을 그들의 경제 정책"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는 한미FTA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한 정치적 구호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추진한 성장과정의 정책이 신자유주의 학파의 산실이자 고향인 워싱턴 켄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학자들의 성향과 일정부문 일치하기에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제정책 하나만을 가지고 그 정의의 좌표를 신자유주의 혹은 보수정당의 집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책위원장이었던 홍종학 교수(경원대 경제학)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용어사용을 거부하며, "클린턴 행정부도 참여정부와 비슷한 비판과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며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가 과감한 성정정책을 사용한 것이 맞지만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미국사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많은 사회제도의 개선을 이뤄내는 것을 지적하며 "21세기의 진보도 '성장친화적 진보'로 변화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가지고 정부의 성격규정을 하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호칭할 만큼 성장과 무역의 촉진을 위해서는 과감한 정책을 사용했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대외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 경제구조의 특성상 무역의 확대를 통해 중산층과 서민에게 보다 그 혜택이 돌아가기를 바랐다. 이를 위하여, 노동자의 동기부여와 소득보조를 위해 '근로소득장려세제', 사회적 취약계층의 보호를 위해 '노인연금' 등 정책을 함께 구사하며 성장친화형 진보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또한, 열심히 일한 시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중산층이 될 수 있도록 집값 안정화와 공교육 강화 등을 위해 임기 5년 동안 보수정당, 언론과의 거친 논쟁과 감정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에 대한 평가처럼 엇갈리고 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뒤로하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이제 그를 기억하고 기리는 우리들의 몫은 과연 노무현의 가치와 그가 추구했던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장점을 계승하는 것이다. 더 이상 특정정책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판단과 과정의 오류 혹은 성급한 추진 등의 문제로 노무현이라는 사람과 그가 제시하려고 했던 가치가 훼손당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지역구도 타파

 

  '노무현'이라는 브랜드의 대표적인 상징성 중 하나는 바로 '낡은 정치의 타파' '지역구도 탈피'일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여 대통령에 되기까지의 좌절과 시련은 현실의 커다란 벽인 '지역감정'과 억척스럽게 맞서싸웠기에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바보'노무현이라고 불리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대통령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제안 및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 등 때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만큼의 파격적 제안을 하였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386세대의 무능력함이 드러나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보수세력과의 공통점을 인정하며 연합정부를 공식제안 한 것이라 평가했다.  물론, 참여정부가 금융허브와 FTA추진 등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을 구사했지만 그로 인해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인정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에게 노동유연화와 시장만능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맹신자로 일순간 변신했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노무현의 시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손호철 교수(서강대 정치외교)는 "대한민국 정치현실의 문제는 다양한 사회각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고루 분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들 정당이 원내로 진입하여 시민들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규정했다. 또한, "주요 정당간의 경제정책상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념적 문제로 인해 더욱 치열한 정쟁이 발생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하지만 한 학자와 평생 지역감정에 맞부딪쳐 싸워온 한 정치인의 처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손호철 교수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탄생하고 지지를 얻어야 현재의 지역구도가 해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처방은 그러한 시도 또한 지역감정이라는 거대한 벽을 결코 넘지 못할 것 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경제적 민주화의 이행을 위한 좋은 정책과 공약을 가지고 유권자에게 다가가도 지역감정이라는 커다란 벽에 무너지는 현실을 정치인생 내 경험하였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회확립을 위해 지역감정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해체하여 미래의 대한민국에 '정치-경제적 민주화'가 공고히 뿌리 내릴 수 있는 터전을 조성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49재를 사흘 앞두고

 

물론,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평생의 경험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수도 있고 그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톨릭 대학교에서 열렸던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 콘서트에서 삭발을 하고 나타난 NEXT의 리더 신해철씨가 말한 것처럼 "그를 떠나 보낸 것이 내 책임이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자신보다 부족했던 사람을 위해 한 평생 치열하게 살고 우리 곁을 떠나간 그의 가치와 행동을 이제는 부디 이데올로기, 지역감정, 피해의식 등의 편견 없이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노무현이 지향했던 이념적 가치뿐 아니라 실질적 유산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500만 명의 대선 표 차이가 아니라 500만 명의 조문행렬이고 영결식 날 서울광장과 광화문 세종로 거리를 메운 시민들의 눈물이다.


태그:#노무현, #좌파 신자유주의, #지역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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