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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네, 며칠 전 목동으로 이사 갔다."
"그래?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재주 좋다. 그동안 돈 많이 모았나 보네."
"지들이 돈 모아서 갔나.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야 한다면서 보태주었단다."
"몇 평으로 갔대?"
"여기서 살던 평수(50평)하고 비슷한가 봐."
"할아버지가 돈이 많긴 많은가 보다."
"많지. 너무 많아서 비밀금고가 있는 안방에는 보안시스템까지 해놓고 식구들도 아무나 못 들어간단다."

며칠 전 친구들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웃에 사는 그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 자신이 왠지 작아지고 아이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목동이 학군이 좋다고는 하지만, 집값은 또 얼마나 비싼가 말이다.

부자 할아버지의 끝없는 '물질적 지원'

한 초등학교의 방과후 모습.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러 가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한 초등학교의 방과후 모습.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러 가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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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할아버지는 집을 옮기는 데에만 돈을 보태준 게 아니다. 쌍둥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에도 원비는 물론 하다 못해 장난감이나 옷 등도 수시로 사주고 용돈도 주곤 했다. 그동안 손녀들한테 들어가는 돈을 꾸준히 보태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으로 봐서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인다. 

쌍둥이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아빠는 자영업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쌍둥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돌아오는 몇 시간의 공백 시간 동안 아이들을 봐주는 사람을 따로 두기도 했었다. 물론 그 비용도 할아버지가 준다고 했다. 그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 또한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 직접 이야기를 해줘서 그렇게 알고 있다. 

맞벌이 하는데도 시부모들이 그렇게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도와주는 그 집 아들며느리는 아이들 키우는 데 큰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을 양육에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게 교육비다.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뒷바라지를 해준 아이들이 공부도 잘 하고 좋은 대학도 간다고 하지 않던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잊혀진 지 오래다.

두 손자 한달 사교육비만 120여만 원

그런 집을 볼 때면 힘들게 맞벌이를 하는 딸아이가 더 안쓰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딸아이가 맞벌이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도움이 필요해서다. 내 손자들의 교육비 내역을 대충 따져보았다.

이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 손자는 영어학원 50만 원, 피아노·태권도·방문학습지(수학· 국어·한자) 30여만 원, 주말 축구교실 3만5천 원, 컴퓨터교실 2만 원 등으로 부대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상태에서 85여만 원이다. 여기에 작은 손자에게도 어린이집과 수영 비용으로 42만 원이 들어간다.

두 녀석의 순수교육비 127만 원에 간식비, 견학비, 교재비, 준비물, 학용품 등(때에 따라 태권도 심사비, 피아노경연대회 비용)을 포함시키면 한 달에 평균 150여만 원 정도가 늘어가는 셈이다. 웬만한 집 한달 생활비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사위가 자영업을 하고 있지만 마이너스 통장도 쓰고 대출도 받아쓴다. 그럴 때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어 손자들 학원비라도 보태준다면 큰 힘이 될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잘 꾸려가고 있는 딸아이가 새삼 대견스럽고 고맙기까지 하다.

"욕심 같으면 둘은 있어야 되는데 교육비 무서워서 낳으라 못하지"

요즘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는 교육비의 비중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뒷바라지를 잘하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도 간다고 하지 않던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잊혀진 지 오래다.
 요즘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는 교육비의 비중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뒷바라지를 잘하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도 간다고 하지 않던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잊혀진 지 오래다.
ⓒ 오마이뉴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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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아이들을 자신보다 더 잘 키우는 것이다. 나도 학원을 한두 군데 줄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부도 중요하지만 체력도 중요하니까 운동을 시켜야 한단다. 태권도는 기본이고 축구는 손자가 무척 하고 싶어한 것이라 몇 달 전에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축구시간을 손자는 손꼽아 기다린다.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일주일 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을 풀어버리는 듯했다. 큰손자는 고맙게도 잘 따라하고 재미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지금만큼만 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손자만 그렇게 여러 군데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학교 앞에서 다른 할머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보통 2~3군데는 다니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의 할머니들이 하는 말은 한결 같이 "혼자 벌어서 아이들 교육 제대로 못 시켜요. 그러니 어디 둘을 낳을 수가 있어. 욕심 같으면 둘은 있어야 하는데"다. 그러니 학원을 줄이라는 말도 선뜻 못하는 게 사실이다. 

아직 미혼인 아들아이가 조카들 교육비 이야기를 듣더니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한다.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말이다. 나 역시도 손자들 사교육비를 보면서 이래서 요즘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에 공감이 간다. 거기에 아이들 옷이나, 아플 때 병원비 등이 들어간다면 혼자 벌어서 감당하기 힘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니 맞벌이를 해도 시댁이나 친정에서 도와주는 부모들이 앞으로 점점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을 것 같다. 오죽하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들의 앞날을 결정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자식들한테 용돈받기는커녕 '무능력' 소리 들으면 어쩌지?

친구 중에도 아들내외가 맞벌이를 하는데 손주(3살, 5살)를 낳으면 할머니인 자신이 도와준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손주를 낳고는 며느리가 "어머니가 아이들 봐주신다고 하셨지요?" 하더란다. 하여 기가 막힌 친구는 "얘, 나는 내가 키워준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비용을 내가 조금씩 도와준다는 뜻이었다"라고 했단다.

듣고 있던 친구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기가 그렇게 말했으면 키워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누가 돈으로 도와준다고 받아들이겠어?" 하니 "난 손주들은 절대로 못 키워줘" 한다. 하여 그 친구는 직접 키워주지 못하는 대신 한 달에 100만 원씩 꼬박꼬박 주고 있다고 한다. 참내 돈 없는 사람은 이젠 할머니 노릇도 제대로 못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도 걱정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 힘들게 공부시켜 결혼까지 시키고 나면 부모들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손주들이 생기면 조금은 여유 있는 노후를 보내면서 손자들을 사랑해주고, 가끔 작은 선물이라도 사주면 손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낙이 이젠 물거품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한푼 두푼 모아 목돈으로 만들어 그 자식이 너무나 힘들어할 때 슬며시 내놓지만 많이 주지 못하는 애틋한 부모의 마음, 그것을 죄송하고 참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자식들의 흐뭇한 모습은 이젠 정말 볼 수 없는 것일까?

예전에는 빽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죽을 때 '빽~~' 하고 죽는다더니, 앞으로는 '돈, 무능력'이란 소리를 지르면서 죽어야 하는 걸까?


태그:#경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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