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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태선기자] 노무현(63세) 전 대통령은 1946년 8월 6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진영대창초등학교(1959년)와 진영중학교(1963년), 부산상업고등학교(1966년)를 졸업했다.

 

1968년 3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으며 군 제대 후 고향에서 부인 권양숙씨와 1973년 1월 결혼해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를 낳았다.

 

가정형편 등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는 9년간 독학해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이듬해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인권변호사에서 청문회스타로

 

변호사로 승률 90%를 넘나들었다는 그는 81년 용공조작 사건을 맡으면서 재야 운동에 뛰어들었고 6월항쟁 뒤 정치권에 영입됐다.

 

1981년 제5공화국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釜林事件) 변론을 맡은 이후 학생·노동자 등의 인권사건을 수임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항쟁에 앞장섰다. 같은 해 대우조선사건 때 이석규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 구속돼 변호사 업무 정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88년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통일민주당)으로 당선됐으며, 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날카로운 질문과 정연한 논리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바보 노무현' 청와대까지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여로는 순탄치 않았다.

 

이후 부산에서 14대 총선(1992년), 부산광역시장 선거(1995년), 15대 총선(1996년)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확률이 희박했지만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연이어 출마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및 수도권 특별유세단 단장을 역임하고, 이듬해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0년 종로구의 지역구를 포기한 채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서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돌풍에 휘말려 또 한 차례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부산 북강서(을) 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그해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냈다.

 

2002년 국민경선과 사퇴 압력, 단일화의 곡절 끝에 그는 후보로 선출됐고, 결국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낡은 정치 청산,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등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전에 들어갔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물리쳤다.

 

당시 투표 하루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일방적인 지지철회로 후보 단일화는 깨졌지만 '노사모' 등 팬클럽의 지지를 얻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란만장 '정치여로'..서거로 마감

 

그러나 5년은 순탄치 않았다. 아마추어라는 비아냥과 원칙은 지켰다는 평가가 공존했다.

취임 직후부터 거침없는 언사로 야당과 언론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임기중 대통령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 비리 등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구에 대해 거절하자, 2004년 3월 국회는 본회의에서 193대 2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결은 56년 헌정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5월에 열린 탄핵심판 선거공판에서 기각결정을 내려 탄핵사건은 종결됐다.

 

재임기간 중에는 안희정씨와 최도술씨 등 386세대로 불려진 측근들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수감됐다.

 

청와대에서 집사로 불렸던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역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원과 노 전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이후 고향 김해에 머물며 나름의 활동 영역을 찾아가는 듯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청와대 기록물 유출 사건에 이어 박연차 사건으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최대 위기에 몰리게 됐다.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받아 피의자 신분으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후 조만간 검찰의 재소환을 앞두고 23일 오전 6시50분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자택 뒷산 언덕에서 투신, 뇌출혈상태에서 병원에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오전 9시30분 끝내 서거했다.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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