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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보호할 아무런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지렁이 나는 나를 보호할 아무런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위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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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보호할 아무런 장치가 없습니다. 남을 공격할 무기도 없습니다. 그 흔한 이빨도 없고, 발톱이나 독침도 없습니다. 뼈가 없어 꾸물거리며 기어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뼈만 없는 게 아니라 눈과 귀도 없습니다.

아마 낡아 끊어진 빨랫줄도 나보다는 더 화사할 것입니다. 쓰레기더미에서 꾸물거리는 나를 보면 대부분 사람은 기겁하지요. 비 오는 날, 숨이 막혀 숨이라도 쉬려고 땅 위로 올라오면 느려터진 걸음 때문에 밟혀 죽기도 하고, 햇볕이 갑자기 쨍하면 흙으로 들어가지 못해 처참하게 말라죽기도 합니다. 땅 위에 올라왔다가 개미와 맞닥뜨리면 나는 죽은 목숨이랍니다. 새들에게도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흙 속이라고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두더쥐의 별미가 되어버린 나는 그들의 밥이지요. 게다가 강태공들에게는 미끼로 사용되니 흙 속에 사는 것이나 땅 위에 사는 것 심지어는 하늘을 나는 새에게까지 나는 완전히 '밥'입니다. 만인을 위한 만인의 먹이, 그것이 나의 신세랍니다.

그러나 나는 내 신세를 비관하거나 절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밥'은 그냥 있어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먹힐 때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런 셈입니다. 아마 그렇게 내 삶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땅에서 이렇게 오래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 자랑을 조금만 할까요?

땅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내가 없었다면 온 땅이 사막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쓰레기는 또 어찌하고요. 음식물쓰레기는 내게는 최상의 식탁이고, 분뇨는 간식이랍니다. 혹시, 내 똥 냄새를 맡아보신 분이 있으신가요? 내 똥에서는 흙냄새가 난답니다. 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 최상의 흙이랍니다. 보들보들해진 흙은 온갖 식물들을 건강하게 자라게 합니다.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면 열매도 실하지요. 아주 오랜 세월, 이 땅이 생긴 이래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들도 살고 나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고 알아주지도 않고, 징그럽다고 기겁을 할 때는 조금 서운하지요. 이게 솔직한 내 심정입니다. 그런 서운한 마음도 없이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 큰 욕심이겠지요.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갔다면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토룡이 아닌 진짜 용이 될 수 있는 복을 주셨을지도 모르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나를 보호할 아무런 장치가 없습니다. 남을 공격할 무기도 없습니다. 그 흔한 이빨도 없고, 발톱이나 독침도 없습니다. 뼈가 없어 꾸물거리며 기어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뼈만 없는 게 아니라 눈과 귀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누군가 나를 공격하거나 밟았을 때 꿈틀거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부림입니다.

내 안에는 두 가지 성, 남성과 여성이 다 들어 있답니다.

아버지이며 동시에 어머니가 된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님의 마음을 다 품을 수 있기에 이 땅에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묵묵히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혼자서 자손을 퍼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만 비로소 알을 낳을 수 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인간이 자기의 편리를 위해 만든 것 중에는 도저히 내가 분해해 흙으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이 생긴 것이지요. 만인의 밥인 나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밥으로 주셨는데 내 식탁에 올리지 못할 것들이 생겼다는 이야깁니다. 심지어 어떤 것은 내 몸을 녹여버리기도 하고, 숨구멍을 죄다 막아버려 질식사시키기도 했습니다. 제초제 같은 것들이 그랬고, 시멘트 혹은 아스팔트라는 괴물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그들이 뿌려지는 곳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고, 그들로 포장된 길에서 사람들은 쌩쌩 달렸지만 나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떠난 곳은 점차로 황량해졌지요.

황량해진 들판을 푸르게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은 가상했답니다.

제초제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게 된 흙에 화학비료를 버무려 푸른 생명을 내는 비법을 발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이 내는 열매는 건강할 수가 없었답니다. 죽은 땅에서 맺힌 열매는 생명 없는 열매, 그 열매를 먹은 사람들의 마음은 돌덩이처럼 차가워졌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 지렁이 아름다운 세상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 위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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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여 년 전, 예수라는 사나이가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 보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이유를 사람들은 간과한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의 땅에서 맺힌 생명 없는 열매를 먹은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풀을 먹어야 하는 초식동물들에까지 육식하게 했고, 심지어는 같은 동족의 고기와 뼈를 갈아 먹이기도 했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질병이 나타나 인간에게 경종을 울렸지만,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었답니다.

나는 그들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두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쓰레기더미에서 풀꽃 한 송이 피어 낼 수 있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난 네게 그것을 나눠주겠다."

그 따스한 말 한마디에 감동한 나는 지금도 인간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물론, 잘 보이지 않겠지요. 간혹 비 오는 날, 숨 쉬러 나온 나를 보거나 자동차 바퀴에 깔려 껌처럼 납작해진 나를 보는 것이 전부겠지요.


태그:#지렁이,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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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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