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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반대하며 재협상을 촉구합니다!! 가족의 건강과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미주 한인주부들은 금번 미국 쇠고기 협상으로 앞으로 광우병 위험에 노출될지도 모를 한국동포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에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1년 전인 2008년 5월 7일, 미국 발 성명서 한 장이 국내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장담하며 대대적 수입 결정을 내리고, 일부 한인 단체장들이 카메라 앞에서 쇠고기 시식을 선보이던 상황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230만 한인 전체에 대해 대표성을 갖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미국에 사는 평범한 한인 주부들은 그 분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주지역 한인 주부모임. 이 엄마들의 용기 있는 '증언'은 국내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물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안전성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미주지역 한인 엄마들의 활약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미주지역 평범한 한인 엄마들의 반란

 

"미국에서 유통되는 소의 90% 이상이 24개월 미만 소라고 알고 있는데, 이런 소와는 다른 소가 한국에 들어간다면서 어떻게 미국 소비자들과 똑같이 안전한 소고기를 먹는다고 주장하는지, 전혀 논리에 맞지 않고 당혹스럽습니다. 솔직히 미국 사는 우리들은 그 24개월 미만의 소고기조차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채식주의나 유기농 소고기를 찾아 나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5월 8일,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주부 이선영씨가 MBC <100분토론>에 전화로 참여해 쏟아낸 말이다. 이씨도 미주지역 한인 주부모임 회원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외교통상부, 학계, 법조계 대표들이 3시간 넘게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두고 갑론을박을 거듭하던 찰나에 나온 이선영씨의 위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국의 정치 사회 문제에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많은 한인 주부들이었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과 이웃의 밥상을 위협하는 한국정부의 졸속 결정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이 미국과 쇠고기 수입협상을 하던 당시는 미국 축산업계에 우호적인 미 농림부(USDA)와 미 식약청(FDA)조차 연일 소고기와 소고기 제품에 대한 리콜 조치를 발표하던 때였다. 2008년 1월부터 토론회가 있던 5월까지 이콜라이 균 오염과 SRM(특정위험물질)의 미제거 문제로 리콜조치를 받은 제품만 10개가 넘었다.(참고: http://www.fsis.usda.gov/fsis_recalls/Recall_Case_Archive_2008/index.asp)

 

이선영씨를 비롯한 엄마들도 미국에서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미국산 쇠고기는 이렇다 할 추가 안전장치 없이 매달 한국으로 수천 톤씩 수입되고 있다. 2008년 촛불의 주역 중 하나였던 미주 한인 주부들은 지난 1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공부하고, 촛불 들고, 조중동 압박하고... '선수'가 되다

 

4살, 5살, 10살짜리 아들 셋을 둔 주부 이선영씨. 한국에서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가 불거졌을 무렵, 선영씨는 한 인터넷 주부 동호회를 통해 미국 전역의 많은 주부들과 '스터디'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미 정부의 쇠고기 협상안 내용을 분석하고, 미국산 쇠고기의 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모으는 한편, 소시지 같은 가공육이 어떻게 제조되는지도 배웠다고.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부들끼리 역할을 분담해서 주제별로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을 했다. 의문이 생기면 FDA(미 식약청)에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냈고, 해답을 얻으면 한인 주부들은 물론, 한국의 언론사와 일반 시민들과도 공유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인 단체장들의 쇠고기 시식 '이벤트'가 결정적 계기가 되어 여러 주부들이 의견을 모아 '쇠고기 수입 재협상 실행을 요구하는 미주 한인 주부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성명서 발표 이후, 미주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은 각자 살고 있는 도시에서 촛불 모임을 조직하거나 참여했고, 리본을 만들어 옷과 차에 달고 다녔다. 또 한국의 촛불 시위대를 위해 김밥과 생수 구입을 위한 모금활동을 벌였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등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조중동 광고주 설득을 위한 전화 걸기 운동에도 많이 동참했다고 한다. 리본 만들어 달기 운동은 동영상으로도 제작되어 많은 주부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변해있을까. 2008년 한국의 촛불 운동은 과연 성공한 것일까.

 

이선영씨는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적어도 일부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패한 것은 아니며, 변한 게 없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촛불, 성공한 거예요... 요즘 한국이 걱정"

 

촛불이 있기 전 그녀는 많은 한인 주부들처럼 한국 뉴스, 특히 정치 뉴스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언제나 각별한 애정이 가는 고국이었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만큼은 아니었다고. 더욱이 미국 사회에 속해 살고 있으니,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관심의 거리감도 컸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정치가 바로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자신도 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2008년 촛불 이후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2002년 미국으로 온 이후, 한국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다는 선영씨. 언론 탄압, 집회 탄압 등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오늘도 여전히 많은 미주 한인 주부들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안전한 먹을거리와 환경 문제로 정보를 공유하는 그녀. 미국의 먹을거리엔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점을 짚어내는 국가 기관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며, 미국의 육류 제품은 물론, 수입산 각종 양식 어패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GMO(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분석이 한창이라고. 뉴욕, 남가주, 캐나다 밴쿠버 등의 한인주부들 '안전한 먹을거리 찾기' 지역모임도 지속되고 있다.

 

"예전부터 이렇게 먹고도 건강하게 잘만 살았다"며, 식품 안전 문제에 관심을 쏟는 주부들을 "배불러서 유난떠는 여자들"로 모는 일부 사람들에게 선영씨는 "그 분들이 말씀하시는 예전의 환경과 우리아이들이 사는 지금의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명란젓, 오징어젓갈도 집에서 담가 먹고, 각종 야채도 집 텃밭에서 키워 먹는다.

 

5월 4일(현지시각), 미국 농림부 산하 식품안전검역서비스(Food Safety and Inspection Service)는 뉴욕 소재 한 쇠고기 도매업체의 이콜라이 균에 오염된 간 쇠고기 4663파운드(약 2.1톤)를 리콜 조치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2009년 들어서만 벌써 19번째 육류 제품의 리콜발표다.(*아래 참고)

 

짐작컨대 아마도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때가 온다면 분명 미주 한인 여성들의 촛불은 전보다 더 크고 화려한 불꽃을 보여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 참고
http://www.fsis.usda.gov/News_&_Events/Recall_019_2009_Release/index.asp
http://www.fsis.usda.gov/Fsis_Recalls/Open_Federal_Cases/index.asp
http://www.fsis.usda.gov/Fsis_Recalls/Recall_Case_Archive/index.asp


태그:#미국산 쇠고기, #미주한인주부모임, #이선영,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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