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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3일 오전 '비정규직 대량해고·임금삭감·민주노총 죽이기 중단 촉구 현장 비정규직 노조 간부 100인 기자회견'이 민주노총의 과오를 이용해서 민주노조운동을 무력화시키려하는 보수언론에 항의하는 뜻으로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금속비정규투쟁본부 주최로 열렸다.
 지난 3월23일 오전 '비정규직 대량해고·임금삭감·민주노총 죽이기 중단 촉구 현장 비정규직 노조 간부 100인 기자회견'이 민주노총의 과오를 이용해서 민주노조운동을 무력화시키려하는 보수언론에 항의하는 뜻으로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금속비정규투쟁본부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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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아직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는 것이 어째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영문을 몰라 갸우뚱거리는 내게 옆의 동료가 묻는다.

"이야기 들었어요?"
"뭐를요?"
"회사 게시판에 연차휴가 사용 촉진제라는 것이 올라와 있던데, 휴가비와 연차수당을 안 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회사 재무가 안 좋은가?"
"에이, 설마요.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산데. 현금 많기로 유명하잖아요. 게다가 휴가비를 안 주면 그건 법에 걸리지 않나?"

대답은 위와 같이 했어도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비록 회사가 보수적인 경영으로 정평이 나 있고 현금이 많아 IMF 당시에도 오히려 재계 순위가 올라갔다고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본새'를 보면 그와 같은 지적도 분명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밀린 채권회수에 열을 올리고, 이면지 사용, 안 쓰는 형광등 끄기 등도 모자라 그 뻔한 원가절감을 외치는 것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관리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징검다리 휴가 등을 이용하여 안 쓴 연차를 어서 빨리 소진하라는 것이었다. 명목은 '연차사용 활성화를 통한 개개인 재충전 및 조직의 활력 제고'였지만, 그 뒤에 연차수당 공제와 모든 연차 의무사용 등을 운운하는 것을 보니 수상쩍은 건 사실이었다.

세계 경제 위기와 함께 온 연봉 삭감 바람

누가 쓰기 싫어서 연차를 쓰지 않는가. 바쁜 업무에 시간이 없어서 연차를 못 쓰는 게지. 현장에서 자리 비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물류업처럼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업종에서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원도 계속 줄여온 터라 업무를 대신해서 봐 줄 여유인력도 부족하지 않은가.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겠다고 해도 눈치가 보이는 터에 연차휴가는 언감생심일 뿐이었다.

이와 같은 현장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리팀은 계속해서 연차 계획서를 내라고 종용했고 우리는 휘뚜루마뚜루 연차 계획을 세워 제출했다. 언론에서는 세계경기가 나빠지면서 강제로 휴가를 주는 기업들이 많아졌다고 보도했지만 우리 회사는 일괄적으로 업무를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있는 연차만큼 마음 편히 쉬기라도 하면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연차수당과 휴가비 삭감은 예고에 불과했다. 11월 들어 세계 경제 위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더니 회사의 움직임 역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태부족한 인원을 더욱 감축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와 함께 진행되는 각 개인별 업무현황 파악. 지금도 사람이 이렇게 모자란데 설마.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사가 공개적으로 연봉삭감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경기 악화와 함께 회사 사정이 나빠졌으니 상여금은 물론 본봉까지 합해 전체 연봉에서 일정부분 삭감하자는 것이었다. 회사가 있어야 개인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낯익은 논리.

'힘 모아 버티자'는 회사 말은 공허함만 주고

회사는 직원들에게 IMF를 상기시켰다. 그때도 직원들이 연봉삭감을 감내했고, 덕분에 IMF를 견디어 낼 수 있었던 회사가 이후 그만큼의 대가를 직원들에게 지불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요번에도 모두들 회사를 믿고 이 어려운 시기를 조금만 버텨내 그만큼의 보상을 받자는 이야기.

그러나 팀장급들을 통해 들은 회사의 이야기는 공허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직원들에게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하기에는 그동안 회사가 보여준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지 휴가나 연차, 연봉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신뢰의 문제, 즉 회사가 직원들을 단순히 조직의 부품으로 보느냐, 아님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 보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미 작년 지현씨와 관련된 기사 ''비겁한 정규직'이 '힘없는 비정규직'을 떠나보내며'에도 썼듯이, 회사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계약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을 내보내는 회사에게 누가 얼마나 희생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이들을 배신했던 회사.

아마도 이는 우리 회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들을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은 뒤 그 숨 막히는 경쟁을 통해 최대의 이익을 누리려는 자본들. 최근 비정규직의 계약 기간을 기존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이려는 정부의 시도는 결국 그들의 몰염치한 속내다.

월급은↓, 업무는↑... 전형적 88만원 세대로 추락

참혹한 현실
▲ 각서 참혹한 현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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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연봉삭감에 대해 사전작업을 충분히 펼쳤다고 판단했는지 12월의 어느 날 HR팀을 통해 전 직원 모두에게 한 장의 각서를 내려 보냈다. 그것은 각 개인들이 모두 연봉삭감에 동의한다는 각서였다. 추후의 연봉삭감에 대한 개인들의 반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인 듯. 회사는 그와 함께 이 각서에 대한 사인이 어디까지나 개인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고, 다만 사인을 하지 않을 사람은 면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려운 회사를 위해 나를 희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쳐야 하는 거룩한 순간이었지만, 막상 사인을 하려고 하니 내 자신이 구차하고 처량하다는 생각이 앞설 뿐이었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지만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각서에 사인을 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

예상했던 대로 연봉삭감은 모든 직원들에게 꽤나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회사 조직에 있어서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직 여직원들의 불만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급여가 박하기로 유명한 물류업계에서 그마저도 삭감을 당하느니 차라리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 하는 게 낫다며 고민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88만원 세대로의 추락. 연봉이 줄어드는 만큼 업무량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며, 게다가 그 영속성마저 보장되지 않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누가 기꺼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더 큰 비극은 멋있게 회사를 박차고 나와도 정작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취업 빙하기 속에서 각자의 경력과 능력을 살릴 곳을 찾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가서 백수로 전전하든지, 아님 조용히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각서에 사인하고 열심히 일하든지. 2008년 경제위기는 월급쟁이 개인에게 이와 같이 무력함이란 상처를 아로새기고 있었다.

이 불황에 고위공직자들은 어떻게 재산을 늘린 걸까?

비록 연봉삭감을 당했지만 그것이 우리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그것이 이 어려운 세태에 어쩔 수 없는 대세이거니 생각하며 살아가던 요즘, 뉴스에서 속 터지는 소식을 한 꼭지 전했다.

고위공직자들의 평균 재산액이 12억 9700여만원으로 전년보다 2.2% 증가하여, 고위공직자들의 60%는 그 수익을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행정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이 작년보다 4억 4천만원이 늘어난 35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무위원 중에서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16억원, 광역 단체장은 정우택 충북 지사가 55억원으로 가장 많은 재산을 신고했다고 한다.

물론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욕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그들이 지닌 부를 모두 비리를 통해 축적했다고 매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사회의 많은 이들이 그들의 부를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며,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천문학적인 재산 증식이 바로 요즘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나 같은 월급쟁이들은 구조조정 당해 길거리에 내앉거나 연봉삭감으로 인해 오히려 재산이 줄어드는 요즘,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재산을 증식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이 경제위기 속에서 무슨 수로 재산을 증식하는 것일까?

아, 월급쟁이들은 무슨 낙으로 살아가야 하나

그것은 바로 부동산과 상속이었다. 경제위기를 핑계로 건설경기부양을 위한다며 부동산에 걸려 있었던 모든 규제를 풀고, 시장의 거래 활성화를 위한다며 상속세, 증여세, 양도세 등을 모두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그들.

정부는 비록 공공적인 이유를 앞세웠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파렴치한이라는 소리를 들으나마나 묵묵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매진하는 그들의 낯두꺼움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과연 누가 정직한 마음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 할 수 있겠는가. 항간에 떠도는 그 유명한 카툰대로 개미처럼 일한 월급쟁이는 10년이 지나도 사글세 방 한 칸을 벗어나기 힘들고, 베짱이처럼 놀고먹는 부모 잘 만난 이들은 가만히 있어도 재산이 증식되는 이 참혹한 현실 속에서 과연 나와 같은 월급쟁이들은 어떤 낙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정부는 규제만 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냥 고장 난 축음기처럼 중얼거리고 있다. 부디 그들이 그들의 부동산이나 회원권, 보석뿐만 아니라 월급통장에 찍힌 숫자도 보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월급쟁이,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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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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