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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 실제 판매는 어떨까?

중국에서는 한 달에 많아야 2~3질 정도 팔리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영 신화통신과 각종 매체에서 이슈로 다룰 정도다. 마르크스의 고국 독일에서는 자본론 판매량이 이미 지난해보다 3배나 늘었다고 한다.

국내에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칼럼니스트들이 마르크스를 자주 입에 담았고 마르크스 해설서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흐름을 관찰하던 중, 인터넷 서점에서 자본론 관련 서적들을 검색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9년에 출간된 <자본론> 시리즈(총5권)은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초에 출간된 자본론 해설서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는다. (조사일 : 2009년 3월 17일)
 1989년에 출간된 <자본론> 시리즈(총5권)은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초에 출간된 자본론 해설서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는다. (조사일 : 2009년 3월 17일)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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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직후인 1989년 초에 출간된 비봉출판사의 <자본론> 시리즈가 아직도 심심찮게 팔리고 있었다. 인문분야 독자가 많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7천 대의 세일즈 포인트(sails-point)를 기록했다. 세일즈 포인트(알라딘), 판매지수(예스24)란 인터넷 서점이 각자의 산출방식으로 매출실적으로 표시하는 지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판매지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출판영업의 관점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1권과 나머지 권의 판매가 도서구매자들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호기심으로 첫 번째 권이나 두 번째 권을 펼쳤지만 도저히 다섯 번째 권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혹은 처음부터 한 질을 모두 구매했을 수도 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출간된 지 불과 3~4개월도 안 된 두 권의 책이 20년간 누렸던 '원전' 자본론의 기세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출간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임승수, 2008년 12월),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지승호, 2009년 1월)는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묵직한 원전을 들고 있을 만한 여유가 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입맛을 달래주는 패스트푸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원전보다 해설서가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원전보다 해설서가 각광받는 시대

자본론 1-1권에 부딪힌 독자라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1~6강을 훑고 재도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자본론 1-1권에 부딪힌 독자라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1~6강을 훑고 재도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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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를 오랫 동안 연구해온 세미나 공간에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윤독과 발제를 번갈아 가며 힘들게 진도를 따라간 지 3개월 정도 됐다. 특히 1-1권에 있는 1편~4편이 자본론의 정수이자 가장 건너기 힘든 '대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수 차례 도하를 시도했지만 끝내 넘지 못했던 첫 번째 권은 오랫동안 자본론을 읽어온 대학원생들에 의해 설명을 들으며 일독 정도 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3월 12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장소 : 신촌 아트레온 토즈)은 많은 독자들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효용 가치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자본론 1-1의 주요 개념들을 '선행학습'할 수 있다. 그리고 원전의 무게를 견디지 않고서도 어디 가서 마르크스에 대해서 '아는 척' 할 수 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작가 임승수 씨가 80여 명의 대중들 앞에서 책의 앞 장부터 끝장까지 차근차근 개념을 '강의'하고 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작가 임승수 씨가 80여 명의 대중들 앞에서 책의 앞 장부터 끝장까지 차근차근 개념을 '강의'하고 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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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임승수씨도 "내가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할 정도로 이 책은 철저히 자본론 원전 이해에 충실하고 있다. 자본론 1-1권에 부딪힌 독자라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1~6강을 훑고 재도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자본론 서두에 등장하는 난해한 개념을 작가는 아주 쉽게 설명하는 범상찮은 기술을 선보였다.

"상품이라는 녀석의 특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쓰기 위해서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상품이 아니다. 상품은 팔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이 때 팔 수 있는 상품은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상품의 사용가치에 해당하며, 그것에 값을 매길 수 있을 때 이를 교환가치라고 한다. 두 개의 전제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상품이 성립된다."

상품과 사용가치, 교환가치 같은 어려운 개념을 간단하게 설명하며 화폐와 노동, 자본에 대해서도 곧잘 정리했다. "수많은 상품 중 하나가 튀어나와 화폐 역할을 하게 되는데, 거래가 늘어나고 재화가 발생하면 화폐의 등장은 필수적이다"라는 설명은 화폐가 상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자본론의 요지를 온전하게 설명했다.

강연장에는 80명 넘는 인파가 몰려 뒷자리 보조좌석과 바깥까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나이는 대학생부터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강연의 콘셉트는 책의 기획의도에 충실했다. 강사는 1강~15강까지의 챕터를 리플레이해주었다. 현장에서 강연의 분위기와 내용을 지켜보며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지만, 약간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60석 남짓한 좌석에 빈틈이 없었다. 이것은 앞칸의 모습에 불과하다. 뒤쪽에는 보조의자를 긴급투입했으며 옆방에서까지 강연내용을 지켜볼 정도였다.
 60석 남짓한 좌석에 빈틈이 없었다. 이것은 앞칸의 모습에 불과하다. 뒤쪽에는 보조의자를 긴급투입했으며 옆방에서까지 강연내용을 지켜볼 정도였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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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린 마르크스의 기억, 씨앗은 언제 꽃필까?

"자본론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공감하려면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책은 단지 거기에 사다리를 하나 놓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임승수씨는 자신의 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겸손하기보다는 당당한 멘트로 이해됐다. 구체적인 양태나 방법이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는 것은 미래를 위해 유의미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것이 현실의 고질적인 모순을 분쇄하는 무기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대중강연장이 아니라 '헌책방'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현재의 전방위적인 위기상황은 현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천년에 걸친 모순들이 엉키고 설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단지 대중적인 담론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지성을 통해서 전승된 맑은 담론, 거친 음식과 같은 원전을 힘겹게 소화해야만 미래의 문이 열린다.

요컨대 우리 사회가 마르크스에게 시사점을 얻기 위해서는 젊고 노련한 지성에 의해서 연구되고 비판되어야 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류의 해설서는 철저히 기능서로 분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상황이다. 우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본론 원전 이해를 위해 헌책방에서 발굴한 책들이다. 자본론의 오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론'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 때 이영협의 <경제학>이 쓸모가 있고, 자본론의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제사적 관점을 길러야 하는데 일반경제사요론을 구할 수 있으면 좋다. 마르크스가 특히 공을 들이던 주제는 '소외'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포함해 소외에 관한 전반적인 담론을 살펴보고 싶다면 정문길의 <소외론연구>를 권할 만하다.
 자본론 원전 이해를 위해 헌책방에서 발굴한 책들이다. 자본론의 오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론'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 때 이영협의 <경제학>이 쓸모가 있고, 자본론의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제사적 관점을 길러야 하는데 일반경제사요론을 구할 수 있으면 좋다. 마르크스가 특히 공을 들이던 주제는 '소외'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포함해 소외에 관한 전반적인 담론을 살펴보고 싶다면 정문길의 <소외론연구>를 권할 만하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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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

임승수 지음, 시대의창(2016)


태그:#자본론, #마르크스,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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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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