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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1일 이른바 '가계 주거부담 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환매조건부 미분양 주택 매입'에 2조원, '건설사가 분양받은 공동택지 계약금 환불'에 2조원, '건설사 보유 토지매입'에 3조원, 기타 2조원 등 총 9조원의 세금을 건설위기 극복을 위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지원 대책과 관련해 언급되는 경제관련 용어들이 어려워 신문 기사며 관련 자료들을 공부해보니, 결국 미분양 사태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건설사들의 자금난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계 주거부담 완화'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서민들의 집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것인지 그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

 

가계 주거부담 완화? 진짜 '가계' 위한 것 맞어?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매달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나로서는 내가 낸 세금이 서민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건설사들이 저지르고 수습 못하는 일들 뒤치다꺼리 하는 데 쓰이는 것 같아 속이 쓰리다.

 

게다가 매일 아침 출퇴근 길에 회색빛 알몸을 드러낸 채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들이나 입주를 안해 텅 비어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를 곳곳에서 봐야만 하니 그 쓰림은 더하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만 해도 시내 외곽을 막론하고 큰 도로를 끼고 있는 안쪽 공간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파트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거침없이 아파트를 지어대니 자연히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더 많아져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아파트가 남아돌다보니 오래된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은 사람들이 빠져 나가기만 하고 들어오지를 않아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건설사들은 계속해서 아파트를 짓고만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민들의 집 장만이 쉬워진 것도 아니다. 건설사는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 은행은 대출 금리를 높이다 보니 우후죽순처럼 아파트가 올라가도 수입이 빤한 서민들에게는 그림에 떡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왜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목맬까

 

평범한 월급쟁이의 입장에선, 아파트 공급이 넘쳐나는데도 당장 돈이 될 것 같으니 계속해서 아파트를 지어대는 건설사들보다 이런 건설사들을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도와주겠다는 정부가 더 밉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10·21 대책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냈었다.

 

얼마 전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이 종부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증여세·상속세' 등에 대한 감세정책을 내놓은 것도 따지고 보면 부자들의 부동산 소유와 거래를 보다 쉽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또 국토해양부가 서울과 인천, 수도권 일부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을 투기과열지역에서 해제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부동산 시장을 좀 더 넓혀보겠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해 지금의 경제위기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확고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법적·제도적 지원도 모자라 9조원에 달하는 금전적인 지원까지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는 나 같은 월급쟁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 같다. 왜냐하면 아파트건 집이건 땅이건, 대부분의 서민들은 돈이 없어 부동산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10·21 대책도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능력이 있는 부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정책'인 것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유동성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하려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하지만 10·21 대책처럼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마치 급전으로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젠 희망의 끈도 놓아버리고 싶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늘 단기 처방만 내놓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진 문제점은 어떤 것이 정말 급한 불인지 잘 모른다는 것과 그걸 언제 어떤 방법으로 꺼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령, 환율이 급등해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할 위기에 처했는데도 정부는 "시장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그때서야 뒤늦게 이런저런 대책들을 내놓았다. 그 사이 피해 중소기업들은 흑자를 내고 있었음에도 '기업회생절차(과거 법정관리)'를 신청해야만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언제나 '언발 오줌 누기'식 아니면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고 있는 것 같다. 매번 그러니 이제는 지린내가 진동할 지경이고, 가래도 남아나질 않는 듯하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지갑을 가진 나와 같은 월급쟁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걸핏하면 외치는 '잃어버린 10년'보다도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 불안과 걱정이 쳇바퀴 돌다보니 이제는 희망의 끈마저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이명박 정부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판타지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아,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싶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게 된다. 그래도 굳이 바람이 있다면 국민들이 힘들게 일해서 낸 피땀 어린 세금을 대기업, 부자들 뒤치다꺼리 하는 데 쓰지만 않았으면 한다.  


태그:#10.21대책, #부동산, #세금, #월급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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