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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글날을 맞이하여 필자는 우리 나라 정치인 이름에 영문 첫 글자(이니셜)를 사용하지 말 것을 제안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썼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자긍심을 갖자"란 제하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약 30여 년 전, 한 일간지에서 뜬금없이 김종필씨를 JP로 표현한 것을 시발점으로 시차를 두고 거의 모든 신문에서 김대중씨를 DJ, 김영삼씨를 YS, 박태준씨를 TJ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국민이면 누구나 보는 신문에서 이런 영문 첫 글자를 따서 인명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기자들의 양식을 의심하면서, 나는 그렇게 표기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취지의 글을 한 신문사에 투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필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이제는 한 수 더 떠서 이명박씨를 MB로 새롭게 표기하는 것을 보면서 허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미국인들조차 George W. Bush 대통령을 칭할 때 영문 첫 글자(initial letter)를 따서 GWB로 사용하지 않는데 우리는 영어권 국가가 아니면서도 DJ, MB 등의 영문을 격에 맞지 않게 남용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그냥 김대중씨, 이명박씨로 표기하면 훨씬 더 보기에 좋을 텐데 말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쓸 때는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이었으므로, 지금처럼 대통령의 영문 첫 글자 MB에 기자들과 국민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의 이니셜 MB에는 멋진 수식어가 하나 둘 붙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은 기자들이 붙여준 것이긴 하지만.

 

미국의 경제호황을 이끈 레이거노믹스를 본뜬 엠비 노믹스(MB economics: 명박 경제), 실용성을 앞세운 모바일 불도저(Mobile Bulldozer: 기동력 있는 불도저)란 긍정적인 수식어 등이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따라붙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엠비(MB)"로 부르는 건 합당한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기자들이 자신을 리건(Ronald Rea-gan)으로 부를 때, 자신의 이름을 리건으로 부르지 말고 레이건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만큼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원했던 거다. 타인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준다는 건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대통령 당선자란 용어 대신에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대통령 당선자'라는 용어 자체가 대통령을 낮추어 부르는 듯한 어감이 있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당시 필자는 헌법 67조에 규정되어 있는 '대통령 당선자'란 용어를 구태여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바꾸어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인수위의 행태에 대해 놈 자(者)자의 참뜻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대통령을 MB로 부르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게 국민 정서상 더 긴요한 일이라 여겼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자들이야말로 그냥 부르기 쉬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우기 위해  MB로 불렀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러한 호칭이 국민 언어정서의 파괴행위이자 일국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어몰입식 교육, 인선파동, 대운하논란, 광우병파동을 겪으면서 이 대통령의 이니셜 MB가 2MB로 불리면서 극기야는 2메가 바이트(Mega Bytes), 2매드 불스(Mad bulls)로 불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기세등등하게 영어몰입식 교육을 강조하던 인수위에서 '대통령 당선자'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고쳐 부르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영문 이니셜 MB를 그대로 놔두는 바람에 지금은 그 명칭이 조롱거리로 전락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소통을 원한다면서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여선 안돼

 

지난 5월 10일 이대통령과 박근혜 씨와의 청와대 대담 이후, 두 당사자 간의 대화 내용이 서로 다르게 발표되었다. 한 일간지에서는 이를 두고 "화성서 온 MB, 금성에서 온 근혜"라며 이들의 의사소통의 부재를 꼬집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이 처음 발생했을 때 이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찌꺼기를 설거지했다"는 말을 했다가 노 전 대통령 측의 반박이 있자, 며칠 전에는 "노 대통령이 다 해놓고 간다더니 지금은 말이 좀 다르더라"라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5월 13일, 이대통령은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에 대해 "국민과의 의사소통에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다"며 "그것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15일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말로 이대통령이 이런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국정에 임한다면 현재의 혼란도 수습되고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추락한 지지율도 반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반전의 기색이 보이질 않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앞선다.

 

독도 포기 괴담, 광우병 괴담을 퍼뜨린 네티즌에 대하여 내사중이라느니,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대운하를 일부 수정하여 재추진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 대통령이 그의 이니셜인 '엠비노믹스'를 염두에 두고 '모바일 불도저'처럼 정말로 몰아붙일 작정인지 심히 염려될 뿐이다.

 

MB가 의사불통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현실 부끄러워 

 

영어 몰입식 교육, 한반도운하, 혁신도시 등에 대한 문제만 하더라도 애드벌룬을 띄워놓은 상태에서 국민의 심한 반대에 부닥치면 "한다, 안 한다"라든지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 "국민이 오해한 거다"를 반복하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결국 국민이 오해해서 서로의 의견교환이 불통되었다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과거사에 대하여 사과할 뜻이 전혀 없는 일본한테 "더 이상 과거 문제를 거론 않고 용서하겠다"는 이대통령의 성급한 발언에 대하여도 국민은 화를 내고 있다. 국민의 잠재적 동의마저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일본을 관대하게 대하겠다는데 대해,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며 뒤통수를 치고 있으니 국민인들 왜 화가 안 나겠나.

 

"국민이 오해한 거다"라는 대통령의 변명에 대해서는, 앞으로 의사소통이 잘 되어 선정을 베푼다면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쇠고기 협상과 과거사 문제를 두고 미국과 일본한테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느니 "미국과 일본 당신들이 오해한 거다"라고 말한다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2메가바이트 정부라서 국민과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사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셈틀(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가 2메가바이트 용량밖에 안된다면 통신을 주고  받을 수 없고 당장 불통이 되고 말 것이다. 수뇌부가 286셈틀의 용량에도 못 미친다면 어떻게 하의상달이 잘 될 수 있겠는가.

 

국민과의 대화 통로를 막아버리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펼쳐 나간다면 하의상달이 잘 될 리가 만무하다.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과의 의사소통을 원한다면 실제로 몸을 낮추어 낮은 데로 임하는 섬김의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1980년대에 레이거노믹스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의사소통의 달인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엠비노믹스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되는 마음속의 전봇대는 혹 없는지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태그:#의사소통, #이 대통령, #MB, #모바일 불도저, #소통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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