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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성곡미술관에서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행복한 동화책 여행 - 존 버닝햄 + 앤서니 브라운과 함께 떠나요'는 아이들에게 친숙한 두 작가의 원화 그림과 다양한 설치 그림들을 함께 볼 수 있고, 전시장 한 편에 마련된 공간에서 포스트 잇으로 작가들에게 쪽지를 쓰거나 전시회에 등장했던 그림책들을 편안하게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때 제 딸아이 쿠하(태명)는 8개월 된 아기였기 때문에 그림책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책보다 크게 인쇄된 그림들과 물이 잘 번진 수채화 그림들을 보여줄 수는 있었습니다(좋은 그림책 원화 전시회는 자치단체 도서관 같은 곳에서 상설로 전시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버지와 아이들은 웃는 표정인데 가족을 업고 있는 엄마는 너무 힘겨워 보이지요?
▲ 앤서니 브라운 <돼지책> 표지 아버지와 아이들은 웃는 표정인데 가족을 업고 있는 엄마는 너무 힘겨워 보이지요?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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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은 세심한 구성과 따뜻한 색감, 마음에 쏙 드는 내용으로 한 권 한 권 모으게 되는 책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돼지책>은 꼭 쿠하 아빠더러 읽어주라고 하는 책입니다.

주인공 피곳씨와 아이들은 '아주 중요한 회사'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녀오느라 집안일은 하지 않습니다. 피곳 부인은 침대를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하고, 그리고 나서 일을 하러 갑니다.

저녁에도 마찬가지지요. 아빠와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피곳 부인은 설거지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그리고 나서 또 음식을 만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곳씨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텅 빈 채 엄마가 보이질 않습니다.

수도꼭지도, 전등갓도, 벽지도, 전화기도 모두 돼지가 되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귀엽고 참신해서 자주 보게 됩니다.
▲ 세심한 묘사가 돋보이는 책 수도꼭지도, 전등갓도, 벽지도, 전화기도 모두 돼지가 되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귀엽고 참신해서 자주 보게 됩니다.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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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곳 부인이 없는 집에서 아빠와 아이들은 점점 돼지처럼 변해갑니다. 벽지의 꽃도 돼지 프린트가 되고, 수도꼭지도 돼지 모양이 되지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수도꼭지까지 신경 쓰는 세심한 구성 때문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세요? 엄마가 돌아오자 아빠와 아이들은 잘못을 빌고, 엄마도 반성하는 가족들을 위해 집에 있기로 합니다. 아빠와 아이들이 요리를 돕고, 엄마도 엄마가 하고 싶은 자동차 수리를 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남편에게 읽어주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섬뜩해지는 책이다"라고 하더군요.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치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아빠와 아이들에게 <돼지책>을 건네주고 싶습니다.

옥슨버리의 <곰 사냥을 떠나자>

수채화와 흑백 처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그림책 입니다.
▲ 헬린 옥슨버리 <곰 사냥을 떠나자> 수채화와 흑백 처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그림책 입니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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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으로 유명한 존 버닝햄의 부인 헬린 옥슨버리가 쓴 <곰 사냥을 떠나자>는 비슷한 대사가 계속 반복되는 책입니다.

온 가족이 곰을 잡으러 풀숲도 지나, 강물도 건너고, 눈보라도 헤치며 찾아 나서지만, 정작 무서운 곰 앞에서 도망쳐 달아나 침대 속으로 숨는 귀여운 내용의 그림책 입니다.

대사 가운데 의성어나 의태어는 점점 커지는 글씨로 쓰여 있는데, 아빠가 목소리를 크고 작게 조절해 가면서 읽어주면 아이가 좋아합니다.

하루종일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쿠하에게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또 다른 재미가 있는가 봅니다. 엄마가 읽어줄 때는 시큰둥하던 책인데도, 아빠가 읽어주면 똑같은 내용에도 반응이 달라지거든요.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이 피곤해 하면서도 아이의 반응에 덩달아 신이 나는지 리듬을 타며 반복되는 문장들을 랩송처럼 읽어주곤 하는 책입니다.

반복되는 문장들은 쉽게 아이들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 <곰 사냥을 떠나자> 일부 반복되는 문장들은 쉽게 아이들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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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익숙한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그림책이라 짧지 않은 분량인데도 끝까지 집중해서 보는 책입니다.
▲ 존 버닝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익숙한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그림책이라 짧지 않은 분량인데도 끝까지 집중해서 보는 책입니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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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은 다양한 재료를 한 화면에 담아서 그런지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그림입니다. 그만큼 자주 읽어줘도 지겹지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책의 첫 대목에 "이 아저씨가 검피 아저씨"라고 소개하는데, 처음 읽어줬을 때, 쿠하가 "이 아저씨가 검피 아저씨구나~"하면서 이름을 확인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책들은 주인공 이름을 정식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책 내용을 읽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 책을 본 뒤로 아이한테 처음 보는 책은 주인공이 누군지 이름을 먼저 설명해 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강가에 사는 검피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어주면 쿠하는 늘 "우리도 강가에 살아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책을 쳐다보며 대답을 합니다(저희 집은 '소양강 처녀' 동상이 있는 의암호 앞이거든요. 중도 뱃터에 살아서 매일 배를 봅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이 배를 타도 되느냐고 물으면, 검피 아저씨는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모두에게 조건을 답니다. "OO하지 않는다면~"배에 타도 된다고 말이지요. 

차 마시는 시간이 되자 배에 함께 탄 이웃들을 모두 초대합니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들고 온 듯한 의자가 참 정겨운 그림입니다.
▲ 동물들과 차를 마시는 검피 아저씨 차 마시는 시간이 되자 배에 함께 탄 이웃들을 모두 초대합니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들고 온 듯한 의자가 참 정겨운 그림입니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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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배가 뒤집힌 뒤 강기슭으로 기어올라와 햇빛에 말린 뒤, 아저씨네 집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입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쿠하는 검피 아저씨의 티 타임에 자기도 꼭 끼어듭니다. 검지와 엄지손가락 두 개로 케이크 위의 빨간 열매도 집어 먹고, 접시 위의 사과도 한 알, 엄마 입에 쏙 넣어줍니다.

아이들은 책과 현실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금세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존 버닝햄의 그림책에는 유독 더 빨리, 더 오래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검피 아저씨와 아이들, 동물들의 대화체로 쓰여 있어 엄마보다는 아빠가 읽어주면 더 좋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성대모사를 열심히 해도, 아빠가 흉내 내는 검피 아저씨보다 잘할 수 있을까요?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엄마를 '정말 정말 멋진 우리 엄마'로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 앤서니 브라운 <우리 엄마>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엄마를 '정말 정말 멋진 우리 엄마'로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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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입니다.

이 책은 유학 간 친구가 "백인 엄마로 읽어주지 말고, 주인공을 너로 바꿔서 직접 그려주는 게 어때?"라고 해서 한동안 구입을 미루다가 쿠하의 두 돌 선물로 시누이에게 사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책 속 주인공 엄마처럼 굉장한 요리사도 아니고, 놀라운 재주꾼도 아니고, 영화배우나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고이 접어두고 몇 년간 오로지 '엄마'로 살기로 작정한 '전업 육아맘'인 건 분명합니다.

엄마는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코뿔소처럼 든든하고, 안락의자처럼 편안한 존재라는 걸 아빠가 읽어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이 없지 않지만 우리 아기들을 위해 잠시 꿈을 접어둔 엄마라는 걸 아빠들이 잊어버리지 않게 이 책도 꼭 아빠들에게 읽어달라고, 기왕이면 양가 가족들 모두에게 돌아가면서 읽어달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천사처럼 노래하거나 사자처럼 으르렁 댈 수도 있는 우리 엄마, 놀라운 재주꾼이자 요리사인 우리 엄마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우리 엄마>의 한 장면 천사처럼 노래하거나 사자처럼 으르렁 댈 수도 있는 우리 엄마, 놀라운 재주꾼이자 요리사인 우리 엄마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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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2001)


태그:#그림책, #앤서니 브라운, #존 버닝햄, #돼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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