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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션하우스 .
ⓒ 카노 세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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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의혹이 제기됐던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에 낙찰된 박수근(1914∼1965) 화백 작품 ‘빨래터(72×37㎝)’가 재감정 끝에 진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위작 비율이 40%라는 천경자 화백 작품. 특히 ‘미인도’는 작가가 위작이라고 하는데도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가 나오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고, 이중섭 화백 그림은 아들이 위작 유통에 가담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자 네덜란드 경찰은 베르메르 국보급 작품을 히틀러 후계자인 헤르만 괴링에게 빼돌렸다며 무명화가 한스 반 메헤렌을 체포한다.

메헤렌이 가짜를 그려줬다고 하자 평론가들은 베르메르를 모독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메헤렌이 위조했다고 한 작품들은 평론가들이 베르메르 초기 양식 작품이라고 격찬한 것들이었다. 이에 메헤렌은 재료와 시간만 주면 베르메르 새 작품을 보여주겠다고 맞섰고 그는 정말 보여준다.

그럼 왜 이렇게 위작은 끊이지 않는 걸까? 요즘 세간에 이야깃거리인 리히텐슈타인(1923~1997) 작품 ‘행복한 눈물’에서도 알 수 있듯 작품 한 점당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그렇다. 그래서 이른바 명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 몫이거나 박물관이 사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실정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를, 커서는 아내까지 잃어 늘 복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슬픈 남자 류우소겐.
▲ 옥션 하우스 어렸을 때는 부모를, 커서는 아내까지 잃어 늘 복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슬픈 남자 류우소겐.
ⓒ 카노 세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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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위작과 미술계 어두운 면을 다룬 만화 두 편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사실과 상상력을 적절히 섞은 작품으로 미술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코이케 카즈오 글에 카노 세이사쿠 그림인 <옥션하우스>.

런던에 있는 미술 경매회사 에드몬드 올리버사 M.D(매니지먼트 디렉터) 류우소겐. 여덟 살 때 부모가 베르메르 작품 ‘레이스 뜨는 소녀’ 때문에 살해당하자 복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슬픈 남자다.

그는 위조 작가로 이름 높은 한스 반 메헤렌 아들 아담스 메헤렌에게 키워져 위조품 작가로서 실력뿐 아니라 위작을 가려내는 놀라운 솜씨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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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페이크 .
ⓒ 서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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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서는 미술품 경매를 둘러싼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다루며 단순히 값어치로만 미술품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잘 녹여내는 건 글 작가인 코이케 카즈오 힘이 아닐까 한다.

재밌는 건 1996년에 해적판으로 유통된 이 작품에서 남자주인공을 괴롭히며 그림에 집착하는 여자주인공 회사가 삼송이라는 것이다.

호소노 후지히코 작품으로 복제 화랑이란 뜻인 <갤러리 페이크>(서울문화사).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 큐레이터였던 주인공 후지타 레이지가 모작들만 전시 판매하는 일본 도쿄 화랑을 배경으로 암시장에서 장물이나 위조품 따위를 거래하며 미술품에 관련된 비밀들을 하나하나 파헤쳐나간다.

유명 서양화에 얽힌 얘기와 화랑가에서 벌어지는 미술품 거래에 관한 뒷거래에 관한 얘기까지, 미술전문가도 감탄할 만큼 풍부한 지식을 담고 있다. 또 이 만화에선 모네, 피카소, 고흐, 모딜리아니, 미켈란젤로 같은 유명 화가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온갖 변칙과 상황판단이 뛰어난 주인공 후지타 레이지.
▲ 갤러리 페이크 온갖 변칙과 상황판단이 뛰어난 주인공 후지타 레이지.
ⓒ 호소노 후지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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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을 사고파는 아트마켓 규모가 5000억 원대에 이를 만큼 국내 미술품 투자 열기가 뜨겁다.

모 그룹 미술품 창고에는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미술품이 있는데, 기업들이 이렇게 미술품을 사들이는 건 감상보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 탈세 목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갤러리 페이크> 1편에 보면 아파트 수위가 끌로드 모네 작품 ‘볏집’을 5만 엔(한화 44만원)에 산다. 그러나 그건 주인공이 진정 그림을 좋아하는 아저씨를 위해 그 가격에 준 것이다. 그 그림이 실제로는 50억 엔(한화 440억 원)이나 한다는 걸 모르는 아저씨는 부담 없이 방에 걸어놓고 감상한다.

돈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면 그림이 눈에 들어올까. 우리가 명화라고 부르는 값비싼 작품들을 그린 화가들은 정작 가난하게 살다 죽어갔다. 그들이 그림을 돈으로 생각해 그렸다면 아마 명화로 불리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림을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사람, 그것이야말로 그림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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