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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들에 의해 역대 최고 작품으로 선정된 <간판 스타> <부자의 그림일기> <목긴 사나이>. 이런 단편만화를 작가주의, 또는 리얼리즘(사실주의) 만화라고 한다.

그동안 국내 만화시장은 독자를 핑계로 질보다 양을 선호해왔고, 작가들도 거기에 부화뇌동했다. 책 한두 권 낸 작가들은 만화가로 불리기도 뭐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1985년 12월에 창간된 <만화광장>에는 이현세, 허영만은 물론 이희재, 오세영, 박흥용, 김광성이 들려주는 단편 작품이 많았다. 그들 단편들은 현실적인 소재와 주제가 균형을 이룬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만화광장과 같은 잡지를 꿈꾸며 새로운 잡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
▲ <간판스타> 한 장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
ⓒ 이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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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스타> 만화가 이희재를 이야기할 때 몇백만 부가 팔린 <만화 삼국지>를 그린 작가라 하지 않는다. 그를 이야기할 때 꼭 따라다니는 작품인 <간판 스타> 이희재라 한다. 1972년에 처음 단행본이 나왔지만 그나마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초반에 나온 <억새>였다.

1980년대에 나왔던 이희재 단편들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무명만화가 이희재란 이름을 알리게 한 작품 <악동이>와 <간판 스타>.

성인만화지에 연재되었던 <간판 스타>는 집이 가난한 여자가 꿈을 안고 상경하지만 결국 술집에서 일한다는 어찌 보면 뻔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다른 것은 술집에서 일한다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저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는 주인공을 보여주기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작품 끝에서 반전 효과를 노림으로써 단편만화 묘미를 한껏 살리고 있다.
작품 마지막 장면으로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일기는 작가가 딸이 그린 그림일기를 보면서 그렸다고 한다.
▲ <부자의 그림일기> 작품 마지막 장면으로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일기는 작가가 딸이 그린 그림일기를 보면서 그렸다고 한다.
ⓒ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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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림일기> 얼마 앞서 박경리 원작인 <토지>를 만화화한 오세영 화백. 만화계 고수가 된 현재도 데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낸 단편집 <부자의 그림일기>는 도시 빈민인 한 가족을 초등학교 아이 눈으로 말하는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이름만 부자인 아이는 힘들게 사는 엄마가 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아버지가 없고 가난하지만 이름만은 ‘부자’인 아이는 주인집 아들에게 가난뱅이라고 놀림을 당한다. 운동회날 입을 단체 무용복을 살 돈이 없어 선생님 꾸중을 듣고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 자주 울던 엄마는 이번엔 울지 않고 기운내서 이에 항의한다. 이 장면이 이 작품의 백미다.
그림일기에서 화난 엄마와 그 손에 이끌려가는 부자의 모습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아픔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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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긴 사나이 .
ⓒ 글논그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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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긴 사나이> <목긴 사나이>는 시사만화가로 이름이 알려진 박재동 화백 작품이다. 콩트 형식으로 연재한 만화를 모은 것으로 고위관료나 있는 자들만을 위한 사회에 짓눌려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만화였다.

<박흥용 작품집> ‘만화광장’ 1회 신인 현상 공모전 극화부문 대상을 받고부터 작가 박흥용에게 따라다니는 별명이 공모전 헌터다. 그만큼 공모전에서 상을 많이 탔다는 것인데 그 작품들은 하나같이 명작으로 불린 만한 단편들이었다.

박흥용은 1982년 이서방 문고에서 주최한 만화공모에 <어린 왕자의 노래>로 특별상을 받으면서 등단해 같은 해에 <무인도>라는 작품을 낸다. 박흥용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미소년 미소녀들과 거리가 멀다. 박흥용뿐만 아니라 작가주의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그렇다.

박흥용 작품엔 힘없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육체적인 강함을 추구한다. 시속 200km로 달리는 배달부 청년이 나온 단편 작품과 또 다른 작품 <호두나무 왼쪽 길로>에서는 오토바이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 자신이 오토바이를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이는 속도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다.

작가 이름이기도 한 제목으로 월간 ‘만화광장’과 ‘주간만화’에 발표했던 단편들을 모았다.
▲ 박흥용 작품집 작가 이름이기도 한 제목으로 월간 ‘만화광장’과 ‘주간만화’에 발표했던 단편들을 모았다.
ⓒ 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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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초기 작품은 물론이고 최근 작품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제와 자아 성찰과 같은,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고집하고 있다.

이현세 화백은 단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단편만화는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한 복잡한 인물구성이나 의도적인 복선을 깔지 않아도 좋고 무엇보다 작가 의도가 분명하게 살아서 뛰쳐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쓸데없는 말이나 사건 잔치 속에 독자와 독자 자신을 현혹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때문에 나는 단편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비오는 날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로 여름을 얘기하고, 폭풍이 몰아치는 가을날 억새 위에 앉아 있는 산란기의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만으로도 가을을 그려낼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장편 속에 들어가면 여름이나 가을은 소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단편의 멋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로지 여름만을 얘기하는 것. 오로지 잠자리 한 마리만을 그려내는 것. 오로지 하나의 진실만을 토해내는 것이 바로 단편의 매력이다.

한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로 만화를 넣고 있고, 또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단편만화들이 나오긴 하지만 예전 작품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명작은 시간이 흘러도 그 감동엔 변함이 없다. 명작이라 부르는 단편만화는 시대 아픔과 함께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보듬어주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 편인 만화. 이제 충분히 기다렸으니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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