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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쓰시마)는 독도·간도와 함께 한국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땅입니다. 그리고 대마도는 간도와 함께 외교적 문제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는 곳입니다. 한국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곳 대마도를, 1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집중적으로 여행했습니다.

그 기행의 소감을 몇 편의 기사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양속(兩屬)이란 한 나라가 동시에 두 개의 강대국에게 조공을 하고 그로부터 책봉을 받는 상태를 가리키는 역사용어입니다. 대마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양속의 땅이었습니다…<기자 주>

대마도 남부의 이즈하라항 앞바다에서 바라본 대마도. 섬 전체가 산 혹은 산맥이다.
 대마도 남부의 이즈하라항 앞바다에서 바라본 대마도. 섬 전체가 산 혹은 산맥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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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관광객 발길 끊어진다면?

대마도 경제는 전통적으로 한반도에 의존해 왔다. 이 점은 과거는 물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간 4만 명 정도에 달하는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지는 순간, 대마도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마도는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열도와도 그러한 관계를 맺어 왔고 또 맺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반도에 대한 대마도의 의존도는 과거에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높은 편이었다. 대마도가 조선과의 무역관계에 공을 들인 일이나, 혹은 그 무역이 원활하지 못할 때 그곳이 왜구의 소굴이 된 일에서 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마도는 19세기 후반에 일본국에 정식으로 편입되면서부터 한국과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소원해지게 되었다.

수많은 섬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아소만의 모습. 대마도의 중앙 부분이다.
 수많은 섬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아소만의 모습. 대마도의 중앙 부분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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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산 사이에 얼마 안 되는 평지 자리잡아

그럼, 대마도는 왜 그처럼 한반도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을까? 왜 과거의 대마도인들은 왜구가 되어서라도 한반도의 물산을 확보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섬이니까 육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부분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대마도가 섬이라기보다는 산 혹은 산맥이라는 점에 있다. 대마도는 섬이기 때문이 아니라 산 혹은 산맥이기 때문에 한반도 경제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에 속이 울렁울렁하면서 3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대마도 남부의 대표적 항구인 이즈하라항이 나온다. 배 안에서 창문 너머로 이즈하라항을 보는 순간 ‘이곳은 섬이라기보다는 산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섬들처럼 섬 중앙에 산이 자리 잡고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냥 산 혹은 산맥 자체가 섬을 이루고 있는 구조다. 산과 산 사이의, 얼마 안 되는 평지에 도시가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대마도 최북단 한국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마도의 촌락구조. 산과 산 사이의 좁은 평지에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대마도 최북단 한국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마도의 촌락구조. 산과 산 사이의 좁은 평지에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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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는 132km, 부산은 50km

이것을 보는 순간, 역사 속의 대마도가 왜 그처럼 조선과의 무역을 간절히 희망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면적이 제주도의 40%이므로 농사를 하기에 아주 좁은 곳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면적의 88%가 산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외부 그것도 가까운 조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대마도는 일본 규슈에서는 약 132km인 데 비해 한국 부산에서는 약 50km다. 16일 정오 무렵에 대마도 최북단의 한국전망대에 가보니, 육안으로도 부산 영도구를 뚜렷이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대마도는 일본보다는 한국에 더 가까운 곳이었다. 농사지을 땅은 없는 데다가 한반도는 가깝고 하니, 더욱 더 한반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마도에 논밭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무리 산지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땅은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마도에서도 약간이나마 농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는 산을 깎아 농경지를 조성하는 계단농법을 구사하고 있다. 한겨울인데도 하우스 없이 파나 무가 재배되고 있었다. 무가 유난히 크고 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싱싱했다.

대마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계단식 농법(왼쪽). 계단식 농법으로 재배되는 무. 한겨울인데도 싱싱한 무가 밭에서 자라고 있다(오른쪽).
 대마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계단식 농법(왼쪽). 계단식 농법으로 재배되는 무. 한겨울인데도 싱싱한 무가 밭에서 자라고 있다(오른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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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사절이 가장 원했던 것은 쌀

하지만, 계단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이 과연 시장에 내다팔 정도의 양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물로 그것을 한 집에서 다 소비하기는 힘들다 해도, 시장에 전문적으로 내다 팔 정도는 아닌 듯했다.

그리고 비교적 넓은 평지에는 논이 조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만제키다리(대마도 남북을 잇는 다리) 남쪽에는 북쪽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논이 있었다. 실제로도 대마도 남쪽이 북쪽에 비해 더 부유한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논에서 생산된 벼로는 대마도 인구(한때는 6만 명이었다고 함)를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이처럼, 농경지가 적은 산지라는 점 때문에 대마도는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여전히 한반도나 일본열도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조선 수도 한성에 들른 대마도 사절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 다름 아닌 쌀이었다는 역사기록은 대마도의 척박한 자연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마도에는 식량 자원만 부족한 게 아니다. 도로에 가로등이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도 석유도 모두 부족하다.

대마도에서는 대형 버스의 정면에 특별한 전등장치가 따로 갖추어져 있다. 야간에 가로등 불빛이 없기 때문에, 차량에서 자체적으로 도로 양 옆을 식별하기 위한 불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또 석유의 경우에는, 외국에서 일본열도에 들어온 석유를 다시 대마도로 수송해야 하기 때문에 석유가격이 특히 비싸다고 한다.

기름이 부족한 곳이라 그런지, 대마도의 교통비는 비싼 편이다. 택시의 경우에는 기본료가 500엔(원화 약 4500원 정도)이다. 버스를 탈 경우에도 거리만큼 요금이 계산되기 때문에 상당히 비싼 편이다. 웬만한 곳을 가게 되면 버스 요금이 한국 돈 5천원을 금방 넘는다고 한다.

산지가 많기 때문에 겪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경제적 불편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매우 느리다는 점이다. 도로는 보통 1차선이고, 넓다고 해도 2차선에 불과하다. 3차선인 곳도 몇 군데 있지만, 그 길이가 100미터도 안 되기 때문에 3차선 도로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차선 도로에서 두 대의 대형 차량이 서로 마주칠 때면,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대가 뒤로 약간 물러서서 반대편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양보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두 대의 대형 차량이 몇 밀리미터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좁은 1차선 도로를 겨우겨우 통과하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모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도로 옆은 대개의 경우 낭떠러지였다. 까딱 하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데도, 다들 운전 기술이 탁월했다. 대마도의 운전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모험 영화를 연출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깊은 산 속에 경찰이 도착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경찰이 도착하려면 누군가가 신고를 해줘야 하는데, 차량 충돌이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그나마 신고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교통환경이다.

그리고 대마도에서는 단순히 차로가 좁을 뿐만 아니라 커브길이 매우 많기 때문에, 차량이 속력을 내기가 더욱 더 힘들다. 도로의 평균 속도는 시속 40km이고, 가장 빠른 곳이 시속 60km다. 시속 60km를 낼 수 있는 도로는 매우 짧다. 커브가 많은 곳에서는 속력을 20~30km로 유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마도 북쪽 항구인 하타카쯔항 앞의 2차선 ‘대로’. ‘대로’인데도 시속 40km로 제한되어 있다. 중앙선이 이처럼 흰색 점선인 경우가 많다.
 대마도 북쪽 항구인 하타카쯔항 앞의 2차선 ‘대로’. ‘대로’인데도 시속 40km로 제한되어 있다. 중앙선이 이처럼 흰색 점선인 경우가 많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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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환경탓에 언제라도 왜구로 돌변

그래서 대마도에서의 이동은 더욱 더딜 수밖에 없다. 불과 몇 십 미터만 가면 새로운 커브길이 나오기 때문에, 그 산속에서 시속 50km 정도의 속력을 냈다가는 바로 추락사로 이어질 것이다. 대개의 경우, 커브 길 바로 옆은 낭떠러지다.

대마도에 오토바이가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오토바이는 일정 정도의 속력을 유지해야만 똑바로 설 수 있는데, 조금만 가면 커브길이 나와서 바로바로 속력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오토바이가 쓰러지기 십상이라고 한다.

또 대마도에서는 툭 하면 터널이 나오기 때문에, 자동차들은 이래저래 속력을 제대로 내기가 힘들다. 대마도에는 현재 총 48개의 터널이 있다고 한다. 산지가 많은 특성을 반영한다.

도로는 매우 협소하고 커브길이 많은 데에다가 터널을 자주 만나는 대마도의 교통환경에서 한국인 운전자가 차량을 몰았다가는 아마도 무사 운전을 기약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운전자들이 이곳의 도로를 장악하는 순간, 대마도의 양보운전 풍토는 그날로 종지부를 찍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소개한 대마도의 자연환경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대마도는 그 대부분이 척박한 산지라서 식량 생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교통이 매우 ‘원시적’이라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마저 원활하지 못한 곳이다.

이렇듯 대마도는 섬이라서가 아니라 산지라서 경제가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처럼 청정환경이 중시되는 시대가 아니라면, 대마도는 그나마 이 정도의 경제 가치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청정환경을 이용해서 관광사업을 벌일 수 없었던 과거의 대마도는 그래서 더욱 더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무역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그들이 언제라도 왜구로 돌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처럼 열악한 경제환경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그:#대마도, #쓰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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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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