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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오후 모 대학의 학술행사에 초대된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
 12월 17일 오후 모 대학의 학술행사에 초대된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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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가 탈민족주의자인 한양대 임지현 교수 등을 상대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임지현 교수가 지난 9월 14일자 <경향신문> 기사인 ‘역사는 어떻게 씌어야 하는가’를 통해 자신의 금년도 저서인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을 강도 높게 비판한 데에 대한 대응이다.

12월 17일 오후 모 대학의 사학과 BK사업단이 주최한 저작비평회(유명 도서의 저자를 초대하는 행사)에 초대된 송기호 교수는, 임지현 교수를 포함해 서강대 이종욱·김한규 교수 등 탈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는 일군의 학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논리도 결국에는 민족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논쟁의 발단은 이러하다.

지난 9월 3일 발행된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이란 책에서 송기호 교수는 고구려사 소속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측의 이중적 기준을 비판하면서 “고구려사는 한국사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송 교수가 지적한 중국측의 이중적 기준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역사 귀속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이 어떤 때에는 영토론을 내세우고 또 어떤 때는 속성론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중국은 만주에서 전개된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서는 ‘현재 우리 영토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영토론)라는 입장을 취하는 한편, 한반도에서 전개된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서는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 그 유민의 다수가 중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고구려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속성론)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 역사 귀속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이 어떤 때는 지배자 주체론을 내세우고 또 어떤 때는 피지배자 주체론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기자조선 및 위만조선과 관련하여서는 ‘지배층이 중국 출신이므로 중국의 역사’(지배자 주체론)라는 입장을 취하는 한편, 거란족이 지배한 요나라와 관련하여서는 ‘피지배층의 다수가 한족이었으므로 결국엔 중국의 역사(피지배자 주체론)’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송기호 교수는 역사 귀속문제에 관한 중국측의 입장이 일관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임의로 바뀌는 것을 비판하면서, “고구려사는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고구려사를 어느 나라의 역사에 소속시킬 것인가를 두고 송 교수가 제시한 기준은 이른 바 ‘계승의식’이란 것이다. 즉 어느 나라가 전통적으로 고구려 계승의식을 갖고 있었는가를 기준으로 고구려사의 소속을 판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이란 책에서 송 교수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는 고구려와 신라가 고조선에서 나왔다는 계승의식을 갖고 있었다’면서 “반면에 이 계승의식을 중국사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사에서는 고구려가 계승되고 있지 않은 데에 반해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뚜렷한 계승의식이 존재했으므로, 고구려사는 한국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송기호 교수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송기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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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계승의식을 기준으로 고구려사의 귀속문제를 판단하는 송 교수의 책에 대해 임지현 교수가 9월 14일자 <경향신문>을 통해 비판을 퍼부었다.

“(송기호 교수의) 돋보이는 해박한 지식과 학문적 정직성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인식체계라 할 수 있는 민족주의의 현상학에 대한 비판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저자가 ‘민족과 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같은 기사에서, 임지현 교수는 송 교수가 민족을 해체하지 않는 것을 두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국사의 동시 해체를 이상론으로 차치하고 국민국가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간다면, 역사는 다시 현실을 정당화하는 순응주의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비판을 덧붙였다. 고구려사를 한국사에 편입시키는 송기호 교수의 태도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순응주의적 태도라고 비판한 것이다.

12월 17일의 저작비평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어느 학자가 임지현 교수의 기고문을 제시하면서 그에 대한 견해를 묻자, 송기호 교수는 “한국사에서 고구려사를 제외하자고 하는 이면에는 신라 정통사관이 존재한다”라고 한 뒤에 “이는 신라를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민족주의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며 임지현·이종욱 교수를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고구려사는 한국사도 중국사도 아닌 제3의 요동사”라는 서강대 김한규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요동의 범위에 대한 김한규 교수의 주장은 일관성이 없다”면서 “요동이라는 독립된 공동체에 집착하는 것 역시 일종의 민족주의적 태도”라며 비판을 가했다.

송 교수의 주장은, 고구려사를 한국사에서 제외하려는 것은 신라 중심으로 한국사를 쓰는 것이고, 고구려사를 요동사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요동이라는 또 다른 공동체를 상정하는 것이므로 양쪽 다 또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에서 고구려를 배제하면 신라를 ‘주어’로 하는 한국사를 쓸 수밖에 없고, 고구려사를 요동사에 편입시키면 요동을 ‘주어’로 하는 한국사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이는 결국 신라나 요동을 주어로 하는 또 다른 민족주의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한편, 송기호 교수는 한국이 동해 표기문제 등과 관련하여 자국에게 불리한 일부 사실들을 숨기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민족주의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자국에게 유리한 기준만 내세우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한 뒤에, “하지만, 민족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민족을 해체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하는 태도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열린 민족주의’로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야지 학문적으로 민족 그 자체를 해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지론을 강조했다. 통합된 유로체제 하의 유럽에서도 이민자 차별이 문제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단계의 인류는 민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태그:#고구려사, #역사분쟁, #동북공정,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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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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