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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책 표지
ⓒ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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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과 이철수. 이 두 분이 쓴 책은 제목을 몰라도, 내용을 몰라도,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두 분이 지은이와 그린이로 만나서, 담담한 수채화처럼 쓰고 그린 책이 있다. 바로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다. 책을 손에들고 마음으로 읽으니, 지난 5월 수수꽃다리 피는 계절에 푸른 하늘이 되어버린 선생님의 음성이 가만가만 들리는 듯 하다.

이 책은 15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생쥐 한 마리와 개구리, 토끼, 참새, 붕어 등 아주 작은 동물들과 벗을 삼아 살아가는 총각이야기다. 그 총각은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아랫마을 구멍가게에서 라면 두 봉지 외상 갖고 온 것도 못 갚는 가난한,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다.

초판은 1985년 6월에 나왔고, 2007년도 9월에 신정판으로 찍은 9쇄가 나왔다. 초등학생들이 읽기에는 이해가 힘들 것 같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살아 온 어른들이 읽어야 지은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글씨체와 한 컷 만으로도 작품인 이철수의 그림은 글과 어우러져 읽는 즐거움을 준다. 아니 사실 즐거움이라고 하기보다는 책을 덮을 즈음엔 잔잔한 감동으로 눈물 한 방울 눈가에 매달리는 그런 책이다.

15가지의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나아가는데, 지은이의 인생을 그대로 풀어놓은 느낌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려고 하는 부모라면 권정생 선생님을 모를 리 없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자.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가게의 점원노릇을 하며 고생스럽게 일했다. 폐결핵을 비롯한 갖가지 병에 걸려 줄곧 아파하며 살았다. 1967년 서른 살 무렵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마을에 정착하여 예배당 종지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교회 뒤 빌뱅이 언덕 밑 작은 흙집에 살면서 글을 쓰다가, 2007년 5월 하늘로 돌아갔다.'(책에서)

예배당 종지기 총각아저씨는 생쥐 한 마리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생쥐는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고, 이불빨래가 힘들다며 투덜거리는 아저씨에게 오줌 싼 변명을 하는데, 내용이 바로 아저씨 장가가던 꿈 이야기다. 자기 꿈도 아니고 생쥐 꿈일지라도 장가갔다는 말에 좋아서 아저씨는 얼굴까지 붉어진다. 생쥐는 신이 나서 꿈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려준다.

"아저씨하고 어떤 이쁜 색시하고 팔짱끼고 결혼예식장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점잖게 혼인식을 합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한 전등 불 밑에서 주례의 이야기를 듣고, 따앙땅 피아노소리에 둘이 발 맞춰 걸어 나왔어요. 아저씨는 점잖게 걷고 색시는 이쁘게 사뿐사뿐 걸었고요. 택시 타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이라는 것을 떠났대요. 제주도에 도착해서 호텔 8-6호실에 갔는데, 그만 꿈에서 깨 버렸어요."

더 꾸지 못하고 오줌 싸 버린 생쥐를 꾸짖으며 아저씨는 밥 냄비와 된장찌개 냄비 두 개를 놓고 아침을 먹는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발 속에서 참새가 날아와 뚫린 문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자, 구멍이 더 커지면 추워진다고 아저씨가 한마디 하자 장가갔으면 덜 추웠을 것이란 참새 말에 어젯밤 장가갔다고 자랑을 한다. 생쥐 꿈에서란 것을 안 참새는 크게 웃으며 날아가 버리고 부끄러운 아저씨는 공연히 방귀만 뀌었다.

밤중에 소나기가 내린 날엔 문 열고 자다가 개구리 동지들만 잔뜩 방 안에 들이고 만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개구리와 아저씨는 뜻이 맞아서 동지라고 한다. 개구리 동지들과 밤새 울다가 새 벽 네 시에 책상 위의 사발시계가 울면, 종을 치러 나간다. 종을 친 후 교회당에 불을 켜고 마룻바닥에 꿇어앉아서 기도를 드린다.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 기도를 마치고 생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개구리와 동지라고 하니 생쥐는 자기도 동지가 되겠다며 아저씨 말씀을 안 듣고 나가버렸다.

며칠 후에 개구리와 부딪친 생쥐는 개구리에게 배꼽이 없는 것을 보고 아저씨에게 촌수 이야기를 한다. 배꼽 있는 것과 배꼽 없는 것은 동지고 뭐고 아예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자 아저씨는 생쥐에게 촌수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촌수가 가까우니 뭐니 하며 따지는 것이 제일 싫다. 촌수 따지는 사람치고 도둑놈 아닌 게 없더라. 한자리 해먹으려고 사돈 팔촌까지 찾고, 재판 걸어놓고 이기려고 아저씨 찾아가고, 김씨 박씨 장씨 끼리끼리 한통속이 되어 파벌싸움하고…. 아저씨는 촌수 때문에 혼자서 부글부글 끓었다.

종지기 아저씨 친구 생쥐
▲ 생쥐 종지기 아저씨 친구 생쥐
ⓒ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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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꽃잎이 사뿐사뿐 떨어지는 좀 쓸쓸한 봄날에는 생쥐하고 둘이 함께 꼬리 따기를 한다. 생쥐가 한마디 하면 아저씨가 받고, 아저씨가 한 마디 하면 생쥐가 받고.

“저 건너 여엉감./ 나무하러 가세./등이 굽어 못 가겠네./등 굽은 건 길마가지./기르마는 동시루./동시루는 껌투./껌투는 까마귀./까마귀는 너푸지./너푸면 무당./무당 두들기지./두들기면 대장간./대장간은 집지./집는 건 가재./가재는 붉지./붉은 건 대추./대추는 달지./ 단 건 엿./엿은 붙지./ 붙으면 첩./내 첩./네 첩.”

밖에는 비가 내리고 처마 밑으로 아직 맨 흙바닥 같은 꽃밭에선 원추리랑 상사초의 싹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아저씨와 생쥐는 점점 더 어려운 이야기도 나눈다. 한국기독교 일백 주년에 대해서, 평등주의와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대해서, 소쩍새 우는 밤에는 친일한 기독교 이야기와 나라가 둘로 나뉘어 전쟁한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날 밤에는 하늘나라에 가서 천사를 만나 높은 보좌위의 하느님도 만나러 간다.

천사는 한국에서 왔으니 한국의 하느님을 만나시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서울 하느님이 계시고, 시골 하느님이 계시고, 서울 하느님도 수백이 넘는데 어느 하느님을 만나려고 하느냐며 묻는다. 그 중 XX교회에서 만든 하느님은 성도들이 밤낮으로 몰려와서 졸라대어 몹시 시달리고 계시다고 한다. 사람들이 만든 하느님이 아닌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지만 천사는 없다고 한다.

진짜 하느님은 어디 계실까? 생쥐는 아저씨에게 말해준다. 우리 생쥐는 하느님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안 한다. 하느님은 그냥 이렇다저렇다 하지 않아도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아름답게 보살피신다고 한다. 온 우주를.

예배당 앞 우차길로 아랫마을 당당골 댁 할머니의 상여가 지나가고 난 사흘 뒤에 눈물 흘리는 아저씨 등 뒤에서 생쥐는 말한다. 눈에서 땀이 흐를 때 어떻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막 가슴이 아프고 온통 텅텅 빈 것 같고, 그리고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있는 것 같고, 목 안이 찡하고, 또 머리 꼭대기까지 아득하고….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아저씨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식구가 되어주던 생쥐는 어느 날 죽는다. 죽어서도 아저씨에게 편지를 쓴다.

“아저씨는 예수쟁이라서 착한 체 하지만 진짜 예수쟁이 노릇하시려거든 착한 체하지만 말고 한 번 눈을 딱 부릅떠 보세요. 진짜 쟁이는 무엇인가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산산이 망가지고 부서지는 생쥐 곁에, 아주 조그만 꽃다지가 노랗게 피어나고 있어요.”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는 생쥐의 편지를 읽었을까? 꽃이 피어난다는 생쥐의 편지를 읽으며 <강아지똥>을 생각했다. 권정생 선생님이 강아지 똥이 되고 싶으셨구나. 종교는 다르지만 나 역시 권정생 선생님과 뜻이 통하는 동지니, 생쥐 옆에 피어난 꽃다지가 내 마음 속에도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고 있음을 본다.

덧붙이는 글 |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분도출판사/ 값8,500원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 신정판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분도출판사(2007)


태그:#권정생,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이철수, #도토리예배당,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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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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