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사극이 예외적으로 많이 방영되는 추세인 것 같다. 전투장면은 사극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의외로 고증에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대조영 관련 사극에서 고구려 지역에서 자생하지 않는 대나무로 만든 죽창이 등장한다거나, 연개소문이 안시성에 나타나는 등의 오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구려는 대나무가 생산되지 않아 화살도 싸리나무를 사용했다) 

 

모든 사극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오류로는 야전(夜戰)의 빈발을 꼽을 수 있겠다. 명령체계가 시각과 청각으로 제한되었던 과거에 밤에 싸우는 것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어둠으로 인해 주변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데다 깃발 신호를 볼 수 없어 진퇴가 불가능한 밤에 싸우는 것은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가급적 피했을 것이다. 전력의 우세를 발휘하기 어려운 야전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의 공성(攻城)이거나 우연히 마주친 조우전(遭遇戰), 상황을 반절시킬 목적의 야습(夜習)이 아니라면 야전은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던 노량해전도 야전이었다. 이순신 역시 절대 야전을 회피했었는데, 그만 최초의 야전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먼저 지적한 대로 야전에서 명령체계가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기 때문에 충분히 거리를 벌려 조선수군의 장점인 원거리 포격을 발휘하지 못하고 적과 뒤섞여 근접전을 벌인 결과였다.

 

전쟁의 귀신인 이순신이 왜 야전을 받아주게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약간 복잡하지만 야전을 걸어온 일본군을 섬멸하기 위해 적의 장기인 조총의 사거리 이내로 근접한 것이 전사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백전백승과 무적불패로 역사에 길이 추앙되는 이순신마저 야전에서 전사하였는데 다른 지휘관들은 오죽하였겠는가,

 

그럼에도 사극에서 야전이 빠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내가 만일 제작자의 입장이라면 부족한 인원과 빈약한 장비를 감추기 위해서 야전을 택할 것 같다. 어둡기 때문에 쌍방의 병력 규모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데다 불화살을 쏘아 시선을 끌어주면 아주 효과 만점이다, 인원과 장비를 적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전봇대나 철탑 등의 현대적 시설물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도 큰 메리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였을 때 사극에서 애용되는 야전은 제작자들의 입장이 충실히 반영된 오류가 아닐까 한다. 우리 이웃의 일본이나 중국이 제작한 사극에서 야전이 드문 것과 비교하면 쓴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고증과 전혀 맞지 않는 오류도 대단히 심각하다. 대규모로 벌어지는 전쟁에서 장군의 고함으로 일사불란하게 지휘되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자, 조선의 마지막 시대를 묘사한 ‘명성황후’에서까지 조총이 심지가 타들어가야 발사되는 무기로 나타나는 데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런 형태의 무기는 총통(銃筒)으로 분류되는데, 조선의 제식무기(制式武器) 목록에서 총통이 사라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였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군이 보유했던 개인화기인 조총은 조선의 총통과 크게 달랐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발사 방식이었다. 조선의 총통이 심지가 완전히 타들어가 화약에 닿아야 비로소 발사되는 것에 비해, 일본의 조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방아쇠와 연결된 집게에 물린 심지가 내려가 화약을 점화시키는 방식이다. 총통이 심지가 타들어가 화약에 닿아야만 발사가 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긴 데다 갑자기 표적이 숨어버리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에 비해 조총은 사수가 원하는 타이밍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총통과 조총이 실전에서의 활용도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조선도 전쟁 중에 노획한 조총을 복제하여 실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광해군 시대에 이르러서는 전원 조총으로 무장한 강력한 부대를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민간에서야 총통을 보유할 수도 있겠지만 조선 말기의 정규군이 어찌 그런 구식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조총의 발사방식이 본래 그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지 못한 실무자들의 잘못에 의한 것이다.(KBS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을 조준하는 일본군조차도 총통 방식의 조총을 가지고 있다)

 

사극에 등장하는 총이 황당했던 또 하나의 사례는 ‘다모’에서 목격했다. 다모에 등장하는 총 가운데 손으로 노리쇠를 밀어 장전하는 볼트액션방식의 소총이 보이는 바, 탄피가 발명되려면 아직도 수백 년을 기다려야 할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시대를 앞서간 고증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조선 초기 이전의 시대에 임진왜란 이후에나 제식무기가 된 삼지창이 등장한다거나 무관들이 검을 띠에 휴대하지 않고 손에 잡고 다니는 등의 일상적 오류가 적지 않다.

 

사소한 것 가지고 괜히 시비를 건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시대를 묘사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공중전화를 건다거나 인터넷이 없어서 직접 편지를 부치는 장면이 나온다면 몇 사람이나 공감할 수 있겠는가, 사극 역시 그리 다르지 않으며 그릇된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무자들이 보다 신경 쓰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극 , #고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