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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1년여동안 끌어왔던 사측과의 줄다리기를 끝내며 편집국 현판 앞에 모인 기자들은 "굿바이~ 시사저널!" 을 외치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굿바이~ 시사저널'이라고 이름 붙인 당신들의 '결별식'을 보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묘하게도 울고 나니 훨씬 개운해졌습니다. 1년 전 당신들 얼굴에서 언뜻 본 희망의 빛을 다시, 아니 더 강렬해진 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집행부의 일원으로 당신들의 천막을 찾았을 때 보았던 분노·허탈·불안과 피로 속에서도 당신들의 얼굴엔 웃음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취재현장을 누빌 때는 볼 수 없었던 참언론에 대한 갈망이 그 웃음 속에서 '반짝'하고 빛을 발했고, 꼭 쥐어잡은 손을 통해 제 가슴까지 전해졌습니다. 그 때부터 이미 당신들의 몸부림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된 것입니다.

'눈물의 결별식'을 마치고 '굿바이~ 시사저널'이란 펼침막 앞에 모여 당신들은 '활짝 웃자'고 외쳤습니다. 정말 당신들은 웃을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웃을 자격이 있음에도 웃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웃음을 나눠주기를 바랍니다. '울다가 웃으면 몸이 변한다'고 당신들은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몸이 변해야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꼭 그 변화에 성공해야 합니다.

어떻게 변할 것인지도 이미 당신들이 밝혔습니다. 분명 힘든 일이 될 테지만 희망이 생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리는 일.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싸워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말 당신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리는 소명을 다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려줘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생각처럼 녹녹하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시각'과 '입장'이 중요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비틀고 정치·경제권력의 입맛에 따라 변형시켜 기사가 아닌 배설물을 내놓는 권력화된 기성언론과 당신들을 비교하는 것은 모독입니다.

독자들이 당신들에게 바라는 것, 당신들의 지향점은 '진보'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진보도 '시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서구화·백인화'라는 속내를 숨기고 들어오는 '문명화·근대화'는 그 백인들의 입장에서만 진보입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풍요로운 삶을 침탈당하는 원주민들에겐 문명·근대·계몽, 그 자체가 폭력이고 파괴입니다.

부와 편리함이란 슬로건으로 밀어 붙이는 개발이 얼마나 많은 환경과 지역주민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까.

'개발'이라고 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은 지역경제, 경제적 이익이란 관점에서 보면 진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따져보면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환경과 지역의 고유한 문화, 삶의 질이란 관점에서 보면 퇴보인 것이지요. 결국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당신들의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몸부림에서 그 '시각'의 건강함을 발견하기에 저는 당신들을 마음껏 지지합니다.

당신들은 직장폐쇄를 알리는 종이에다 '사랑한다, 시사저널. 조금만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라고 쓸 줄 알고, 파업기간 내내 영화 <미션>을 떠올리며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킬 줄 알기 때문입니다.

<미션>은 노예와 종교·경제적 이익을 위해 서구 유럽인들의 눈에만 '야만인'인 남미 원주민 과라니족을 야만적으로 침탈하는 포르투갈에 맞서 '교황에 대한 순종'맹세까지 버리고 원주민과 함께 죽음으로 항거하는 신부들을 그린 영화입니다. 원주민과 신부들의 죽음 앞에서 바치는 알타미라노의 한 마디는 만인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신부들은 죽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자는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시사저널 기자였던 당신들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통해 당신들은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영원불멸하는 것이 아니라 끝임 없이 죽음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로드리고 신부처럼.

의식적으로 부와 권력 거부하는 언론이기를

제 책상 위 한 켠엔 안과 밖, 두 갈래로 비틀어진 가지를 뻗고 말라죽은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항상 부족하게 살기 위한 소박한 상징입니다. 권력과 부의 속성을 알기에 그것들과 거리를 두기 위함입니다. 화려한 꽃과 싱싱한 이파리의 아름다움에 현혹당해 시뻘겋게 말라버린 고사목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섭니다.

솔직히 이런 태도를 평생 지킬 수 있을지 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 불안함이 저를 지켜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도 그 불안감을 갖기 바랍니다.

자금을 모으고, 지원자를 모아 조만간 건물을 구하고, 바라고 바라던 취재활동을 시작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잘 되면 부도 얻고, 힘·영향력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때 부와 힘을 버릴 줄 알았으면 합니다. 의식적으로 성공하기를 거부하는 언론이기를 기대합니다. 소수자를 위한 언론이기를 기대합니다. 약자를 대변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취지라면 거침없이 기사를 내보내기 바랍니다.

그래서 소송을 당한다면 저희가 감당하겠습니다. 당신들이 보여준 희망의 빛에 감명받아 법무법인 덕수의 변호사들이 팔을 걷고 나서기로 했습니다. 수많은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미 검증받은 바 있는 언론전문팀 변호사들이 당신들의 뒤를 바쳐줄 것입니다.

1년 동안 당신들을 위해 무료변론을 해드리겠습니다. 무료변론을 위한 고문계약 약정서를 여기 함께 보냅니다.

태그:#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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