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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짓기 모습으로 자동차 지붕에 산란하는 잠자리 한 쌍과 햇볕을 덜 받아 체온을 떨어 뜨리고자 물구나무(?) 선 잠자리
ⓒ 정광수
"잠자리의 눈은 정지된 사물에 대한 형체 판단이 잘 안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사진에서처럼 자동차의 매끄러운 면을 물로 착각하여 그 곳에 산란을 하기도 한다."-책 속에서

<한국의 잠자리 생태 도감>에서 자동차 지붕위에 산란을 하고 있는 잠자리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돌탑이나 불상, 꽃 등 아무 곳에나 알을 낳아 우담바라를 피우는 '풀잠자리'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는 풀렸다.

▲ <한국의 잠자리 생태 도감>겉그림
ⓒ 일공육사
물론 풀잠자리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잠자리가 아니기에 이 책에서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수면으로 착각하고 자동차 위에 산란을 하는 잠자리와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곤충들은 숫자는 다르지만 비슷한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의 눈길을 끄는 또 한 장의 사진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잠자리 모습이다. '잠자리는 왜 물구나무서기를 할까?' 어린 시절 냇가에서 자주 보았지만 그 이유를 모르던 터라 기억에 남아있고 늘 궁금했었는데, 이 책에서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땀을 배출하여 체온 조절을 할 수 없는 잠자리가 해를 향해 물구나무서기를 함으로써 햇볕이 닿는 면적을 최대한 줄여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한국의 잠자리 생태 도감>은 이처럼 풍부한 화보로 일반인들도 읽기에 좋도록 만든 잠자리 도감이다. 책을 펴는 순간 먼저 놀란 것은, 책 앞부분에 실은 잠자리 125종의 암컷과 수컷의 실제 크기 사진들이다.

'이렇게 잠자리 종류가 많았나?' 많아 보았자 15종 정도나 있을 것 같았던 잠자리 종류가 많은 것도 놀랍지만, 아무리 커보았자 10cm가 되지 않는 잠자리를 구분해내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다.

비전문가로서 전문가들도 쉽게 내지 못하는 <한국의 잠자리 생태 도감>이란 책을 내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정광수(46)씨를 지난 11일 서울 연신내 물빛공원에서 만나 그의 잠자리와의 6년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국내에 잠자리 전문가가 단 한사람도 없다면 믿겠는가?"

▲ 잠자리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저자와 가족.
ⓒ 김현자/정광수
-잠자리는 어떤 곤충인가?
"곤충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잠자리는 좋아할 만큼 사랑받는 곤충이다. 굳이 구분하라면 익충이다. 간혹 양어장과 같은 시설에 알을 낳아 잠자리 유충이 어린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나, 그에 비해 훨씬 많은 해충을 잡아먹어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곤충이다. 잠자리가 나는 원리는 비행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관찰거리가 된다."

-전 세계 잠자리는 몇 종이며 화석으로도 발견되는가?
"현재 보고된 전 세계 잠자리 종류는 5574종이고 남북한 합하여 125종, 그중 국내에서 발견되는 것은 101종이다. 북한에는 70여종이 서식하는 걸로 추정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계속 새로운 종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잠자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3억 5천만 년 전의 원시 잠자리의 날개는 1m 가량인데 2억 5천만 년 전에 이미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진화했기 때문이다."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잠자리를 선택하였는가? 아니면 생물 관련 일을 하기 때문에 이런 책이 가능한가?
"지금 하는 일은 잠자리와는 전혀 상관없다. 어린 시절에도 잠자리를 거의 모르고 자랐다. 산을 좋아하다보니 산에 자주 가는데 6년 전 거금을 들여 사게 된 디지털카메라에 찍힌 잠자리 사진이 무척 신기했다. 그때부터 잠자리만 보이면, 아니 잠자리를 만나러 쉬는 날마다 산과 들을 찾았다. 좀더 많은 잠자리를 찍기 위해 관심을 두고 쫒아 다니다보니 잠자리의 다양한 종류와 생태적인 특징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잠자리 연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잠자리가 사랑을 받는 것에 비해 연구는 매우 미약하다. 잠자리만 연구한 사람도, 잠자리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현재 국내에는 없다. 일본이나 유럽 여러 선진국에서는 30~40년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자료는 다 정리해 둔 상태이며 잠자리 연구가 활발하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 보급이 활발하여 나와 같은 많은 일반인들이 생물에 관심을 보이는 반면 국내 자료는 너무 미약하다. 잠자리만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도 마찬가지다. 생물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이 아쉽다."

-국내 잠자리 전문 연구자가 없다면 이와 같은 잠자리 도감이 이전에도 없었나?
"몇 년 전에 잠자리 관련 책이 두 권 나왔다. 한권은 메뚜기와 함께 잠자리에 대해 비중을 어느 정도 두었고, 다른 한권은 잠자리만 다루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전식이라 일반인이 참고하기에는 불편하다는 평이 많다. 게다가 이 두 권은 같은 잠자리를 두고 상반적인 내용도 있고 오류도 많이 보인다는 것이 잠자리관련 동호회 회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밖에도 생물 관련 책마다 잠자리에 대해 언급하지만 40년 이전의 것을 순서만 다르게 베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 국내에 잠자리 도감이 없다는 이유가 책을 낸 동기인가?
"그렇다. 6년 전 잠자리에 빠져 쫓아다니기 시작할 때 마땅히 참고할만한 책이나 자료가 없어서 무척 답답했다. 6년 전의 나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잠자리 연구를 한다면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125종의 한반도 서식 잠자리, 게다가 종류마다 암컷과 수컷이 모두 다르고 보면 250종을 구분해야 한다. 관심을 두면 쉽게 구분이 될 만큼 잠자리마다 특성이 뚜렷한가?
"아니다. 구분이 쉽지 않다. 작게는 1.5cm정도부터 커보았자 7~9cm의 잠자리를 쫒아 다닌 지 3년 정도 되니까 비로소 구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잠자리가 많을 것이다. 계속 새로운 종이 발견되니 말이다. 잠자리에 관심이 있다면 일단 사진을 찍어 잠자리 도감들을 찾아 비교해보는 방법이 일반인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잠자리,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더 쫒아 다닐 것

▲ 짝짓기 전에 정자를 옮기는 잠자리 수컷(왼쪽)과 짝짓기 중에 정자를 옮기는 잠자리 수컷
ⓒ 정광수
▲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 하트
ⓒ 정광수
-앞으로 관찰하거나 연구하고 싶은 곤충이 있다면?
"앞으로 10년 정도는 잠자리를 더 쫒아다닐 것이다. 이 정도의 성과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잠자리와 관련하여 꿈이 있다면 북한에 사는 잠자리를 관찰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는 것이다. 생물 생태계 관련 연구는 남북한 공동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의미를 말해 달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하기 좋도록 사진을 최대한 많이 넣었다. 사진만 1천 여 장이 넘는다. 사진 중에는 현재 국내에서 전혀 발표된 적이 없는 자료들도 많다. 잠자리 해부 사진이 그렇다. 성형 의사인 친구가 책을 위해 해부를 해주었다. 10,000~28,000여 개에 달하는 잠자리의 낱눈과 시신경을 찍은 사진은 국내 어디에도 없는 자료로 전문가들도 감탄하는 것이다. 또한 국내 미 기록 종 2종을 실은 것도 의미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만족하는가?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니다. 아직 멀었다. 마땅한 잠자리 도감이 없어서, 6년 동안 잠자리를 쫓아다니고 관찰, 공부한 것을 정리하여 우선 출판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이 보충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좀더 세분하여 계속 책을 낼 계획이다. 독자층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책을 내자고 제의해 준 출판사와 잠자리를 해부 해 준 친구(성형외과 전문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외국 출장을 나갔다 오는 길에 공부에 도움이 되라고 표본을 구해다 주신 분들께도 고마움이 크다."

▲ 짝짓기 후 나뭇가지에 산란을 하는 잠자리 한 쌍
ⓒ 정광수
▲ 저자는 2005년 서울대공원 개관 20주년 한국의 잠자리 특별전을 열었다.
ⓒ 정광수
비전문가가 냈는데도 전문가들이 감탄하고 있는 것이 <한국 잠자리 도감>이다. 이 책을 낸 정광수씨는 2005년에 서울대공원 개관 20주년 초청 '한국의 잠자리 특별전'을 열만큼 전문가들이 이미 인정한 상태다. 저자는 늦깎이 생물 생태계 공부와 연구로 늘 바쁘다. 쉬는 날마다 잠자리만 쫓아다니기 시작할 때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부인과 아이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쫓아다니며 잠자리에 관심을 보여서 기분 좋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 보아서는 독자층이 한정될 것 같다. 하지만 제목의 딱딱함과는 달리 생물을 좋아하는 모든 일반인이 좋아할만한 내용들이 주제다. 전문가들이 인정한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풀어 썼으며, 에피소드를 풍부하게 넣었기 때문이다.

잠자리는 왜 하트를 만들면서 짝짓기를 하는 걸까? 잠자리가 짝짓기를 하면서 산란을 하는 이유는? 잠자리를 눈앞에서 놀리면 잡기 쉽다는데? 잠자리도 필요에 따라 색을 바꾼다는데 정말 그럴까? 잠자리도 매미처럼 허물을 벗는다는 말은 사실일까? 모든 잠자리는 앉을 때 날개를 펼까? 10,000~28,000개의 눈을 가진 잠자리가 알을 왜 아무데나 흘리는 걸까?

덧붙이는 글 | <한국의 잠자리 생태 도감>은 2007년 5월에 일공육사에서 나왔으며 값은 4만 8천원이다.


한국의 잠자리 생태도감 - Odonata of Korea

정광수 지음, 일공육사(2007)


태그:#잠자리, #짝짓기, #도감, #정광수, #일공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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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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