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은 '야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선수다.
ⓒ 삼성라이온즈
야구를 좋아하는 세 친구가 있다. 요즘 야구장 가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운 세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야구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먼저 '오'라는 친구는 기록 신봉자다. 야구 선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기록과 통계라고 그는 생각한다. 야구가 만들어내는 기록의 세계에 심취한 이 친구는 야구 통계학자인 빌 제임스의 열렬한 팬이다. 이와 반해 친구 '마'는 '야구는 정신력의 스포츠'라고 못을 박는다. 플레이 하나 하나의 결과(기록)보단 그 과정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개인 기록보다는 선수가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중요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기록의 출발 역시 정신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같은 야구라는 종목을 좋아해도 성향이 각기 달라 '오'와 '마'는 대화 중에도 자주 논쟁을 벌인다. 야구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쟁의 '오프라인 버전'이랄까. 그러자 친구 '이'가 급하게 중재에 나선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쳐진 사람이 아니라 '오'와 '마'의 빈번한 논쟁 속에서 항상 중립을 지킨다. 그런데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보니 현기증이 났는지 결국 '이'가 마지막 한 마디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냥 양준혁으로 통일해라" 성향이 다른 두 친구 '오'와 '마'도 양준혁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양준혁이 어떤 선수이기에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 같던 이 두 친구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일까. 기록 마니아도 인정하는 타자, 양준혁 야구에서 기록이란 참으로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록 작은 기록이라도 역사의 밑거름이 되는 것은 물론 그것이 누적됐을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000안타를 달성한 양준혁도 같은 맥락이다. 양준혁은 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대망의 2000번째 안타를 터뜨려 누적된 기록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양준혁의 말마따나 타석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이 2000안타란 대기록의 원천이 되었다. 양준혁이 위대한 선수라는 증거는 기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프로 선수의 생명은 꾸준함인데 양준혁 특유의 꾸준함이 기록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양준혁은 개인 통산 안타·루타·2루타·타점·득점·사사구 등 거의 전 부문에 걸쳐 1위에 올라있다. 통산 타율은 .318로 '타격의 달인' 장효조(.331)의 뒤를 잇고 있다. 개인 통산 기록이 전부가 아니다. 1993년 데뷔 후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과 '9년 연속 3할 타율'이란 금자탑을 세웠다. 전성기 때 '거꾸로 방망이를 잡아도 3할은 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 윤욱재
야구팬들 중엔 '기록에 미친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 이른바 숫자로 나타나는 통계에 '환장'하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타자의 타율, 투수의 평균자책점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OPS(출루율+장타율), WHIP(이닝당 출루허용율) 등 범위를 점점 넓히고 있다. 야구팬들의 시야가 넓어진 것도 '통계의 다양화'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엔 타자의 수준을 따지는데 OPS란 통계가 자주 나온다. 4할 이상의 출루율과 5할 이상의 장타율을 기록하면 정상급 타자로 통하는데, 두 기록을 더한 OPS가 10할이 넘으면 '최고 타자'라 봐도 무방하다. 양준혁을 이에 대입하면 어떨까. 양준혁은 지난해까지 14시즌 중 10시즌에 걸쳐 4할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했고 올해도 12일 현재 .434로 전체 6위에 올라있다. 올해 양준혁은 OPS 1.033을 기록 중인데 이는 데뷔 첫 해인 1993년의 1.034와 가장 높았던 1997년의 1.082와 비교해 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OPS도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며 GPA((출루율X1.8+장타율)/4)란 통계로 보완하기도 한다. GPA는 OPS의 단점을 보완하고 출루율에 더 무게를 둔 통계다. 어찌 됐든 양준혁은 GPA에서도 정상급 타자임이 드러난다. GPA가 0.3 이상이면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단 뜻인데 양준혁은 올해 0.345를 기록 중이며 지난해엔 0.320으로 이대호(롯데 자이언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다소 생소하지만 이런 기록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타자를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양준혁은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 삼성에서 뛸 때 가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결코 2인자에 머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기록 마니아들은 기록을 놓고 선수를 평가하기 때문에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가운데 양준혁은 기록 마니아들이 치켜세우는 선수 중 하나다. 다양한 기록에서 양준혁의 위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이런 기록을 꾸준히 내는 선수 역시 드물기에 양준혁은 '기록의 왕'이라 불릴 만하다. 내야 땅볼에도 전력 질주하는 '정신적 지주'
 불혹을 앞둔 양준혁이 내야 땅볼에도 전력질주하는 모습은 이채롭다.
ⓒ 삼성라이온즈
양준혁은 '노장'이란 단어를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의 나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39세. 분명 노장이 맞다. 양준혁이 데뷔했을 땐 지금은 팀에서 코칭스태프로 모시고 있는 선동열 감독과 한대화 수석 코치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분명 오래된 선수지만 양준혁은 결코 낡고 빛바래지 않았다. 그에겐 아직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동력이 존재한다. 언젠가 양준혁이 내야 땅볼을 친 적이 있다. 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갔고 누가봐도 아웃이 되는 타구였다. 그런데 양준혁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전력질주를 했다. 결과는 아웃이었지만 관중들은 격려의 박수를 쳐줬다. 그가 내야 땅볼을 치고 죽기 살기로 뛰는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또 한편으론 귀감이 가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전력질주를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 선수를 보면 혀를 끌끌 차는 팬들이 적지 않다. 팬들은 프로 선수가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혹에 가까운 양준혁이 20대 선수 마냥 전력질주를 하고 있으니 팬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양준혁은 분명 천부적인 소질을 갖춘 선수다. 그러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영원할 순 없다. 나이를 먹게 되면 몸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계속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준혁이 고비를 넘고 부활에 성공할 때마다 남긴 말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뭔가 끊임없이 갈구해야 한다. 요즘 후배들은 그런 면이 부족한 것 같다.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할까. 야구는 끝이 없다. 잘 하면 더 잘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양준혁은 스타 선수를 넘어 전설로 우뚝 섰다.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될 순 있지만 전설이 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가 한국 야구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 남아주길 기대한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며 '정신력의 스포츠'다. 양준혁은 야구의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다.

양준혁 OPS 전설 2000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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