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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상상플러스 Old&New>] 교육과 참여의 그 오묘한 경계선

"틀렸습니다. 공부하세요!"

교육방송에서 나오는 수탐Ⅱ 사회선생님이 학생들 답안을 확인하며 하는 말이 아니다. 화요일 저녁 11시 황금시간에 방송되는 한 프로그램에서, 네 명의 유명 MC와 A급 게스트들이 한데 모여 앉아있는 가운데, 정갈한 표정의 여자 아나운서가 자주 하는 말이다.

@BRI@그녀는 올바르게 한국어를 읽는 방법을 연예인에게 지도하고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을 문제로 낸 뒤, 정답 여부를 알려준다. 그러한 정보는 비단 출연진뿐 아니라 그 프로그램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방송이 끝난 직후 순우리말 정답은 항상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상위에 랭크된다.

<상상플러스>라는 예능프로그램의 출발은 지금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여타의 토크쇼와 다름없이 게스트를 모아놓고 그들에 대한 신변과 소문, 혹은 연애사와 같은 기타 흥밋거리를 주제로 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 주였다. 하지만 곧 시청자가 직접 인터넷에서 글을 올려 물어보는 '댓글'이라는 나름의 신선한 형식을 이끌어냈고, 이것은 곧 '연예인 닮은꼴'이라는 대박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었다. 팽배한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수요와 맞물려 당시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당시 <상상플러스>는 시청자들의 참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프로그램의 진행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시청자 의존도가 매우 높은 특이한 포맷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고 했던가. 당시 제작진은 여기에 '올드앤뉴(Old&New)'라는 프로를 더한다. 세대간 언어단절을 극복하기 위하여 순우리말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말과, 인터넷 신조어로 대변되는 10대들의 말을 알아맞히는 형식이었다. 이로 인해 <상상플러스>는 게스트,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스타플러스'와 노현정 아나운서와 함께하는 'Old&New'로 양분되었다.

▲ <상상플러스>. 정보와 오락을 결합한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 KBS
Old&New에는 <상상플러스>가 없다?

<상상플러스>는 한자어 상상(想像)과 영어 플러스(plus)의 합성어다. 이것의 의미를 풀어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상상'으로 불리는 '댓글'과 '플러스'로 불리는 '참여'로 풀이가 가능하다. 즉 <상상플러스>란 시청자들의 참여가 주가 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그것이 인기의 명맥을 이어주는 주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에 가장 크게 부합하던 과거 '스타플러스'는 어느새 사라졌고 대신 'Old&New'에 편입됐다. 식상한 토크쇼의 형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오락과 교육을 아우르는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의 최고점을 노리는 전략. 동시에 우리말에 대한 재조명과 전 세대에 골고루 환영받는 프로그램의 탄생을 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숭고한(?) 뜻과는 반대로 이것에 대한 반작용 역시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과거 '스타플러스'와 달리, 'Old&New'에서는 시청자 참여라는 대원칙이 더이상 절대적인 의미가 아니다. 'Old&New'에서 시청자 참여로 대변되는 댓글은 겨우 '시청자 별명'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나마 그것도 이제 재미라기보다는 MC들에게는 웃겨야 한다는 부담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식상한 말장난 정도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요약하자면 'Old&New'에서는 더 이상 상상플러스, 즉 댓글플러스나 참여플러스는 없는 것이다.

사실 시청자들의 참여라는 것이 언제나 꾸준히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것에 대한 질(質)의 문제 역시 빼놓기 어렵기에 시청자 참여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Old&New'는 <상상플러스> 전체를 포괄하는 존재가 아닌, <상상플러스> 안에서 존재하는 부분집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점에 비춰본다면 'Old&New'를 보는 시청자로서 과거와 단절된 듯한 알지 못할 박탈감은 꽤나 섭섭하다.

그런 생각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Old&New'의 문제 정답이 화면으로 미리 유출되고 난 뒤 시청자의 항의소동은 그러한 감정 표출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시청자가 'Old&New'에서 그나마 느낄 수 있는 일방적이고도 단편적인 참여란 결국 그날 문제의 정답을 대충 유추하는 것이 유일한 방식인데, 그것마저 없다면야.

그러나 'Old&New'가 가지는 인기는 지금도 유효하여 2년 연속 시청자가 뽑은 KBS 최고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인기의 절대적 척도라 할 수 있는 시청률 역시 과거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입장에서 'Old&New'가 지금과 같이 특별한 변화를 꾀하지 않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인기를 유지할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그램 포맷 자체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실 게스트의 의존도만 높이고 시청자는 배제한 모습은 교육과 오락을 포괄한다는 의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 '스타플러스'에서 얻었던 지혜를 다시 한번 적용시켜 적절히 배합할 시점이다.

'Old&New'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필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Old&New는 분명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잊혀져 가는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아울러 간과하기 쉬운 우리말의 우수성을 재조명한다. 입담 좋은 MC들은 지금도 유쾌하며, 단아한 백승주 아나운서 역시 그 진행의 기준선을 적절히 유지시켜 준다. 하지만 이미 굳혀진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매너리즘에서 마치 무너진 부분만 땜질하는 지금과 같은 프로그램 모습에서 MC들의 이러한 고군분투가 왠지 안쓰러워 보이는 게 나만의 착각일까.

▲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코너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 MBC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 무릎팍 도사는 신해철도 춤추게 한다!

강한 카리스마로 게스트 위에 군림하지만 시청자 앞에서는 한없이 낮출 줄 아는 천하장사 5번 백두장사 7번, 단체전 무패를 자랑하는 MC계의 막강파워 강호동과 최근 예능프로그램의 '마이더스의 손' 여운혁 PD의 밀실 단합의 산물인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 강호동이 도사로 분장, 스타들의 고민을 상담해준다는 설정으로 콩트와 토크를 섞었다.

'대국민 고충처리반'이라는 <황금어장>의 원래 취지와는 거리가 있고 첫 방송 이후 존폐마저 위험했던 코너가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꿰찼다. 게다가 <황금어장>에서 튀어나와 독립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의견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렇다. 지금 그 코너가 뜨고 있다. 아니, 떴다. 수요일 밤 11시. 일주일 중간에 끼어있는 평일인데다, 프라임타임을 벗어나는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무려 15%.

사실 나는 <황금어장>을 1회부터 본 열혈 시청자는 아니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만큼은 최민수씨 편부터 최근의 신해철씨 편까지 단 한 회도 예외 없이 보고 있다. 본 방송을 못 본 날이면 인터넷이나 케이블을 통해 재방송으로라도 본다. <무한도전>과 아울러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다. 보기에 정신없고 흔히 말하는 비호감 MC들이 모여 있고, 그 흔한 미녀연예인 한 명 안 나오는 그들에게 난 무슨 매력을 가지는가? 그리고 이토록 빠지게 하는가?

예능 프로그램의 새 패러다임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

최근 '방송에서 꾸미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말을 쓴다. 이 합성어가 과연 여론의 지지를 얻어 학문적 혹은 영향력 있는 단어가 될지, 아니면 그저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시답잖은 말장난에 불과한 어휘가 될지 지금 이 시점에서 예측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어휘가 최근 예능프로그램이나 여타의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객관적이고도 명확한 의미가 없어 조심스럽지만 일단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의도되지 않은 즐거움을 가능한 시청자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연출되지 않은 상태로서, 시청자들이 보고 웃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다시 말해 촬영상황이나 현장의 분위기. 출연자의 실수나 소소한 장난 등이다. 이런 것들은 출연자와 시청자들만 통하는 은밀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고, 그러한 비밀 아닌 비밀은 시청자들이 수용 가능한 선인 '양해'를 이끌어내며 결국 '충성 시청자'들을 만든다.

그들이 순수하게 모든 것을 보여주었기에, 시청자 역시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다가간다. 따라서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는 과거 정보와 유익함, 오락을 아우르는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를 밀어내는 예능프로그램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할 만하다. 실제 KBS의 <스펀지>, <위기탈출 넘버원>, <상상플러스>, <비타민> 등 전성기를 구가하던 인포테인먼트 예능프로그램 대신 MBC의 <무한도전>, <황금어장>등의 프로그램들이 주목받는 모습은 그러한 움직임을 뒷받침한다.

▲ 연출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MBC <무한도전>
ⓒ MBC
아귀가 맞아갈 때 일어나는 그 효과

무릎팍 도사에 MC는 세 명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메인 MC인 강호동을 위시하여 유세윤, 올라이즈 밴드로 구성되어 있다. 여타 거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MC들에 비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참으로 초라한 라인업이다. 어째서 신정환이 아닌가? 어째서 김종민이 아닌가?

유세윤의 경우 실제 정형돈을 제외하고는 그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공개코미디에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옮긴 보조MC. 그것도 처음으로 나서는 상황이었고 올라이즈 밴드의 경우 인디 무대, 혹은 라디오를 즐겨듣는 사람이라야 알 수 있는 지명도밖에 되지 않아 TV에서 성공 여부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기대 이상으로 발휘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성향과 프로그램의 성향이 100% 맞아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제작진이 프로그램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출연진의 성향이 적절하게 맞으면 그 시너지는 참으로 엄청나다. 출연자들이 가진 지명도나 호감, 비호감이니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릎팍 도사' 제작진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원했고 올라이즈 밴드와 유세윤. 심지어 강호동까지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진짜 이야기, 진짜 모습'을 게스트 혹은 시청자들에게 거침없이 쏟아냄으로써 그러한 방향에 보답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다행히도 올라이즈 밴드와 유세윤은 아직 방송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상태 그대로였고, 강호동은 특유의 과감성과 대담함으로 이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MC였던 것이다.

제작진 역시 이러한 컨셉트가 빚을 수 있는 특유의 비정형성 혹은 난잡함을 웃음으로 적절히 편집하여 더 큰 즐거움을 자아낸다. 어찌 보면 참으로 완벽한 조화이다.

방송에서 '100% 리얼'이란 없다, 그렇다면?

무릎팍 도사의 성공이유를 제작진이 추구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방향성과 거기에 부합하는 MC들에서 찾긴 한다. 그러한 실험성 덕분에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하는 데 약점이 발생한다. 또한 무릎팍 도사의 게스트 의존도는 생각 외로 높다.

이처럼 무릎팍 도사가 이제껏 보지 못한 신선함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끈 것은 사실이지만,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출이 필요하다. 방송에서 게스트나 MC가 오로지 리얼한 모습만 추구하다 보면 이전보다 더 센 발언이나 상황, 혹은 이전보다 더 쇼킹한 사건이나 모습을 뱉어내야 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결국 시청자 외면으로 귀결된다. 그 적절한 선을 지키고, 소위 말하는 '치고 빠지는' 것을 지휘하며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연출자의 몫이다. 사실 이러한 연출이야말로 방송의 70% 이상을 차지하지 않는가.

아직까지는 그 선을 지키고 있어 시청자로서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조만간 그러한 위기가 한번쯤 올 것이라 예상한다. 원래 방송이 추구하는 방향성이란 - 그것이 '즐거움'일 경우에는 더욱 더 -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괴리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한 스스로의 위기를 얼마나 지혜롭게 헤쳐나갈지 그 역량을 기대해보며, 그때까지 무릎팍 도사의 인기가 계속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금처럼 즐겁게 시청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TV리뷰 시민기자단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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