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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뒷표지를 펼친 상태. 중앙 아래 녹색 스티커는 똘망이가 읽었다는 표시로 붙여 놓은 동그란 스티커임.
ⓒ 정민숙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림이 얼마나 재미있고 멋지고 섬세한지, 보는 순간 나이에 상관없이 빠져들 것 같다. 우리집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다. 조카(초등2학년) 방학숙제 필독서인데, 2학년은 적당한 친구를 구하지 못해서 우리집 아이들끼리 모여 토론하기로 했다.

태권도학원에 다녀온 후 시작하기로 하고, 공부방으로 꾸민 안방에 토론회 준비를 해 놓았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하면 모두들 책을 한권씩 각자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그냥 한권을 가지고 해야 한다. <도서관> 책 한 권, 지은이 나라를 찾을 <어린이 세계 지도책>, 지구모형, A4용지 여러 장. 그리고는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오늘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생각을 정리한다.

아이들은 이 독서토론을 무척 즐거워한다. 조카 역시 우리집에서 하는 사촌형과 동생의 독서토론을 보고 자신도 무척 하고싶어 했다. 그런데 오늘은 저학년이 모두 모였고, 토론능력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 조카를 주인공으로 하면서 어떻게 진행할지가 문제인 것이다.

@BRI@'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주니 아이들이 와르르 들어온다. 그 와중에 태권도학원에 같이 다니고 있는 밤톨이 남자친구도 놀고 싶다고 함께 왔다. 보낼 수도 없어서 함께 참여시키기로 하고, 그 친구네 전화해서 좀 늦은 시간이 되더라도 토론이 모두 끝난 다음 보내겠다고 허락을 얻었다.

책상을 가운데로 양쪽에 둘씩 앉고 엄마가 책상 중앙에 위치했다. 그림책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책 표지부터 한 쪽씩 펼쳐가며 이야기를 한다. 책 표지엔 주인공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손수레에 책을 가득 싣고 걸어가면서 얼굴에 책을 바짝 붙여서 걸어가며 읽고 있다. 책 뒤표지까지 펼쳐 보여주며 주인공 상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집 아이들 셋은 이 책을 미리 다 읽었고, 밤톨이 친구는 처음 만난 책이다.

"나니아 읽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엄마: "얘 이름이 누굴까?"
아이들: "엘리자베스 브라운!"

엄마: "그래. 이 책 주인공 엘리자베스 브라운이야. 그런데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수레에 책을 가득 싣고 책을 보면서 걸어가고 있어. 수레에서 책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상태는 지금 어떤 상탤까? 혹시 너희들도 이런 상태를 경험한 적 있니?"
똘망이(3학년): "책 보는데 집중하느라고 다른 것을 생각 못해요. 책 내용이 재미있어서 계속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상태."

엄마: "오호라. '집중'이구나."
똘망이: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 <나니아 연대기>는 7권을 합쳐놓은 책이잖아요? 그런데 그 책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계속 읽느라고 엄마가 다섯번이나 나를 불렀는데도 나는 듣지 못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전투'가 제일 재미있었거든.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어. 나중에 책 읽은 시간이 30분 정도 된 줄 알았는데, 3시간이 지났더라고."


큰 형님의 솔선수범한 이야기를 들은 동생들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다는 얼굴로 서로들 이야기를 쏟아낸다.

밤톨이 친구(1학년): "저는요. <삼국지>를 읽고 있었는데 다음 편이 너무나 궁금해서 계속 읽느라고 양치하라는 할머니 말을 못 들었어요. 다 읽고 양치했어요."
조카(2학년): "컴퓨터게임을 하는데 재미있어서 엄마가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못 들었어요."
밤톨이(1학년): "나는 아침에 엄마가 일어나라고 하는데도 듣지 못하고 계속 잠을 잤어."
엄마: "모두들 엘리자베스 브라운처럼 집중하거나 한 가지 일에 몰입한 상태를 경험했구나. 그런데 밤톨아, 잠을 더 자고 싶은 상태가 집중은 아니야. 집중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겪는 일이어야지."


밤톨이는 책을 읽거나 만들기를 할 때 곧잘 몰입한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그런 상태가 몰입인 줄 모르고 있다. 엄마는 스스로 알아채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오늘 토론 끝나면 좀 알려나?

미국에선 황새가 아기를 데려다주네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또 넘겨도,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공원에서, 비 오는 날 우산 쓰면서 책 읽는 그림만 나온다. '글없는 그림책'이지만 수많은 이야기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세 장을 넘겨서야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마르고 눈 나쁘고 수줍음이 많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학교 기숙사에서는 책을 너무 많이 침대 위에 올려 침대가 부러지기도 한다. 책 읽기만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여행을 떠났다가 길을 잃는다. 그래서 아예 그 마을에 집을 구해 살아간다.

책을 사서 계속 읽으니 집안에는 더 이상 쌓아둘 수가 없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전 재산을 마을에 헌납한다. 그 마을에는 엘리자베스 브라운 도서관이 생겼다.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긴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데이비드 스몰은 그림으로 몇 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인인 사라 스튜어트는 짧지만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단어로 시처럼 글을 써 놓았다. 두 사람이 부부라서 그런지 마치 한 사람이 만든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 이야기 부분.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정자와 난자, 출생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아직 순수한 맑음이 있어 상상력이 그대로 발휘된다.

엄마: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네? 아래 그림 좀 봐. 황새가 보자기를 물고 있지? 우리나라에선 아기를 삼신할머니가 보내준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황새가 보자기에 싸서 데려다 준다고 한대. 만화영화에서도 본 적 있지?"
똘망이: "맞아, 귀 큰 코끼리 이야기 있잖아요. '덤보'에 황새가 보자기에 싸서 데려다 주잖아."


수업시간에 딴 짓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부분에서 모두들 "그러면 안 돼"라고 한다. 그러면서 수업시간에 딴 짓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쏟아낸다. 잠시 이야기가 산으로 올라가지만 그것도 즐겁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도서 대출증을 여러 개 만들어 친구들에게 대출 부탁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 모두 도서관에서 만든 대출증이 있어 내용 이해가 더 잘 된다.

"우리가 엘리자베스 브라운이야!"

어느 날 첫 번째 문제가 생긴다. 여행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문제 해결을 '하는 수 없이'라고 했지만 멋지게 결정을 내린다. 그 곳에 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아이들은 모두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되었다. 책을 사러 책방에 가서 말하는 부분을 모두 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읽었다.

엄마: "이제 우린 엘리자베스 브라운이야. 책방에 왔어. 모두들 같이 크게 읽어보자."
아이들: "이 책 주세요."(아이들이 책을 읽는 소리는 음악소리 같다. 합창하듯이 읽고는 모두들 깔깔거리며 얼굴엔 웃음꽃이다.)


앞부분에서 벽에 '버지니아 울프'와 '톨스토이'의 얼굴이 그려진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어린지라 슬쩍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리스 여신'들에 관련된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문설주를 들이받는 부분이 나온다.

엄마: "그리스 여신들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어떤 책일까?"
똘망이: "그리스 로마신화." (아이들도 모두 그렇다고 한 마디씩.)
엄마: "그렇지. 우리 집에도 있고 친구들 집에도 다 있잖아. 만화긴 하지만. 우린 모두들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랑 같은 내용을 읽은 거네." (모두들 책 속 주인공과 같이 나누게 된 동질감이 좋아 신들 이름을 이야기하느라 잠시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엄마: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청소하면서 책 읽다가 문설주를 들이받았대. (방문으로 가서 문설주와 문턱을 설명한다.) 무지하게 아프겠지?"


"책으로 성도 만들고 집도 지을래요"

책은 자꾸 쌓여서 큰 책은 찻잔 받침대가 되고, 작은 책은 어린 친구들의 장난감이 된다. 아이들 모두 어릴 때 책을 가지고 놀아 본 경험이 있는지라 이 부분에서 또 눈들이 반짝인다.

똘망이: "나는 책을 쌓아서 성도 만들고 집도 만들었어. 기차 길도 만들었어. 비디오테이프도 쌓았는데 한 번은 천장까지 닿을 뻔 했어."
조카: "저는요 책을 한 권 한 권 쌓아서 도미노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밤톨이: "나도 책 가지고 집짓기 놀이하고 그랬어."
밤톨이친구: "저는 책 던지기 놀이를 했어요."


책으로 가득 쌓인 집에서 고민하던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마을에 전 재산을 헌납했고 마을에는 '엘리자베스 브라운 도서관'이 생겼다.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그녀는 언제나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이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이라 모두 한 목소리로 읽었다.

아이들: "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서관을 찾았어요. 걸어가면서도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또 넘기면서요."

정리 시간에 책을 읽어보지 못한 밤톨이 친구는 이 책을 읽어 보고 싶다고 하고, 똘망이는 재밌다면서 다음에 또 하잔다. 친구들과 하는 것과 동생들과 하는 것이 차이가 있고, 자기가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다며 기분 좋다고 한다. 동생들을 어리게만 봤는데, '저런 생각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보이기도 한다나? 조카는 방학숙제를 잘 끝내서 좋고, 밤톨이는 잘하지 못했다면서 울상이다.

모두들 다음을 또 기대하니, 엄마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진짜 토론을 벌일 정도가 되면 그 땐 끝나는 시간을 정하지 말고 해 보고 싶다. <도서관>은 빌려읽기보다는 소장하여 아이가 읽고, 읽고, 또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도서관>
데이비드 스몰 그림/사라 스튜어트 글/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7,500원


도서관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1998)


태그:#도서관, #책, #독서의 즐거움, #몰입의 즐거움, #사라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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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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