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본. 비슷한 것 같지만 틀리고,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나라가 일본이다. 여러 번 일본에 다녀왔지만 이번에 '2006 한국·일본 시민 친구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 일본의 첫 느낌은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이었다. 서울 한 지역을 다녀온 느낌이다. '친구 만들기'라는 행사 타이틀은 행사 기획을 설명하고 교류와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대명사다. 그런데 나에게 실질적인 친구만들기가 현실로 나타났다.

일본에 다녀 온 며칠 후 일본을 떠나면서 받은 이메일 주소로 안부편지 한 통을 보냈다. 타이틀에 맞는 친구 만들기를 위한 시도였다. 그런데 내 메일함에 비슷한 시간에 보내 온 메일 한 통이 있었다. 발신인은 'Ryoko Tsurumaru'. 이색적인 것은 우리나라 브랜드 이메일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BRI@나관호님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한일 교류회에서 만난 츠루마루 료코입니다.
한국에 잘 돌아가셨어요?
저는 유기야채를 잘 먹었습니다 (^-^)
blog도 봤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츠루마루 료코


츠루마루 료코는 이화여대와 연세대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런 배경 때문에 한국어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녀와 편하게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츠루마루상과는 같은 취재조에서 만났다. 그녀는 친절했고 한국문화와 한국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다. 그녀는 특히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더구나 처음부터 대화가 잘 되었던 것은 한국역사를 전공한 츠루마루 료코와 역사신학을 전공한 내가 '역사'라는 공통분모를 찾아서다. 세계 역사와 한국역사 그리고 역사 관련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지나고 나서 보니 작은 관심과 나눔이 친구를 만드는 공통분모인 것을 알게 된다. 1989년 일본 삿포로에서 알게 된 일본인 친구가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나에게 '한일사전'을 사준 적이 있었다. 당시 2700엔이었으니 큰돈이다. 나는 그 선물을 받고 감동해 떠나올 때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었다. 쉽게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 일본문화 속에 내가 받은 선물의 의미는 컸었다. 당시 다른 일본인들도 그 친구의 행동을 놀라워했다.

츠루마루 료코와 몇 시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진지하게 진심을 나눌 수 있었다. 요코하마가 집인 료코는 그곳에서 재일 한국인들을 접하면서 살기 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료코와 같은 조에서 '일본의 유기농 산업'에 대한 취재를 나갔을 때 그녀는 나에게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일본인들이 가진 형식적인 친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배려하는 한국적인 친절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 친구들 손에는 유기농 야채 선물이 들려 있었다. 나는 가방과 비닐 봉투를 들고 있는 료코의 짐 하나를 들어주었다. 역시 일본인답게 거절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들 습성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친절맨들 아닌가. 내가 질 수 없었다. 결국은 몇 번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내가 짐을 들어주었다.

나는 삿포로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에게 빚진 것이 생각나 츠루마루상에게 작은 것이지만 보답하고 싶었다. 그녀는 도착해서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가며 나의 친절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하루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작은 섬김과 배려와 대화 속에서 친구의 싹이 텄다.

그날 츠루마루 료코는 나에게 주소를 적어주었다. 한국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내가 책을 보내주고 싶다고 해서 받은 주소다. 삿포로에서 만났던 그 일본인 친구에게서 받은 빚을 갚고 싶었다. 둘째 날 일본인 시민기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있었고, 헤어지는 시간 료코는 걸어가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도 나에게서 한국인 친구의 싹을 본 모양이다.

이메일을 받은 날, 료코의 주소지에 내가 쓴 책과 작은 선물을 보냈다. 다음날 어김없이 이메일이 왔다. 감사를 전하면서 무척 책이 기대된다는 메일이다. 그렇게 몇 번의 안부 이메일이 오고 갔다. 그리고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는 료코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는지 문의하는 등 짧은 글이지만 안부 이외의 내용도 오기 시작한다. 친구의 싹이 자라고 있다.

이젠 매일 이메일 체크를 할 때 츠루마루상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류지만 츠루마루상이 모르는 한국, 알고 싶어 하는 한국에 대한 부분을 말하려고 한다. 작은 민간외교관이랄까.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서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를 얻고 싶다.

'한일 시민기자 친구만들기'를 통해 만들어진 친구 츠루마루 료코.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고 다른 국적을 가졌지만 비슷하게 생긴 얼굴과 식성 그리고 양국 문화를 서로 알려고 하는 공통분모를 통해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이 관계를 유지시키고 작은 불씨지만 서로 이해하고 도움이 된다면 반일, 반한 문제의 두꺼운 거죽 0.1%를 희석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는 다른 부분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부분을 찾아가는 것이다. 똑 같은 퍼즐을 맞추지만 먼 쪽의 그림을 오고가며 맞추는 것보다 이웃하는 그림을 찾아 퍼즐을 맞추는 것이 쉬운 방법인 것처럼 인종과 문화를 초월한 친구 만들기 인간관계도 이웃하는 같은 색깔을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도 츠루마루 료코의 이메일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과속운전은 살인무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