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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외인간> 겉그림.
ⓒ 해냄
어느 날 달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외수 장편소설 <장외인간>의 '나(이헌수)'는 하늘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외친다. "하나님, 지금 저하고 장난치시는 겁니까"라고.

춘천 봉의산에서 달을 찾던 헌수는 분명히 보름달이 걸렸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사람들에게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물어본다. 그런데 아뿔싸! 아무도 '달'을 모른다. 황당한 헌수는 시시콜콜할 연예계 소식까지 시끌벅적하게 등장하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이곳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달'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다. 달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애당초 달이란 것이 없었던 것이다!

헌수는 사람들에게 달이 들어가는 노래를 들려준다. 하지만 다들 처음 듣는다고 말한다. 헌수는 달에 관한 추억들을 말한다. 다들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반문한다. 그러더니 헌수에게 조심스럽게 권유한다. 정신병원에 가보자고. 헌수는 펄쩍 뛰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상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부터 원래부터 달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자신이 정말 미쳐서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헌수는 달이 사라졌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닭갈비집에서 일하던, '달빛증독자'라고 말하던 소요가 사라진 것이 그것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또한 이 세상이 타락해가는 것, 아니 종말을 향해 치달아 가는 것도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회에서 정치인들은 이종격투기하고, 대학생들의 정신은 빈곤해지고, 여중생들이 영계라는 품목으로 업소에 나가고, 경찰관은 민중의 곰팡이가 되고,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돈에 미쳐 날뛰는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는 것도 필히 달의 실종과 관련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헌수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달을 그리워하고 소요를 찾는다.

<장외인간>의 시작은 도발적이다. 세상에, 달이 없다니! 더욱이 그것이 실종도 아니고 존재 자체가 부정 당한다는 것은 도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달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도발과 달리 <장외인간>의 내용은 어렵지 않게 쫓을 수 있다. 달은 물질과 대비되는 인간의 정신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음의 빛으로도 통한다. 순금 팔찌가 보이는 빛과는 성질부터가 다른, 달처럼 곱고 휘양 찬란한, 보면 볼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빛깔이다.

장외인간은 달의 존재를 아는 사람과 달의 존재를 의심쩍어하는 사람, 나아가 달의 존재를 믿는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쉽게 알아볼수록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데 전자는 헌수와 소요, 그리고 노인이다. 헌수는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무명시인이지만 세상이 찌들어가고 있다는 걸 안다. 비록 그것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결심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달을 기억하고 있다.

소요와 노인은 어떤가? 달빛중독자를 자처하는 소요나 달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술잔에 담아내는 노인은 더할 나위없다. 고고하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정신이 무엇인지를 몇 마디 언어나 단편적인 행동으로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헌수를 비판하거나 의심하는 것으로 달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은 어떤가? 팔도라는 친구는 헌수와 함께 무명예술가지만 점점 돈에 절어 가더니 결국 패가망신한다.

헌수의 동생 찬수와 그의 애인 제영은 어떤가? 돈을 쫓는 찬수는 자충수를 거듭한 끝에 집에서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되고, 명품중독증에 걸린 제영은 비참하게도 '인체자연발화'로 생을 달리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명품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것은 되레 그녀의 최후를 비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정신과 물질의 대립은 항시 비판을 낳는다. <장외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예외가 아니라 절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외인간>의 페이지 어느 곳에도 비판이 없는 곳이 없다. 물질에 찌든 인간, 돈에 날고 기는 사회는 <장외인간>에서 밑천까지 거덜 내고 쪽박 차고 만다.

요즘 소설 중에서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사회에 쓴 소리를 내뱉은 적이 있었던가? 어쩔 수 없다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다들 침묵하곤 했는데 이외수는 비껴가지 않고 '달'을 통해 그것을 과감하게 하늘을 꺼내 올렸고 현란한 언어로써 통쾌한 칼질을 선보였다. 그리하여 충만한 달빛을 기원했다. 그 달빛이 세상을 비출 수 있을 것일까? 눈부신 달빛을 기억하는 '장외인간'들이 많아진다면 그것이 가능해지리라.

'이외수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외인간>, 미쳐가는 세상일지라도 그곳에 달빛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나지막이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장외인간 - 개정판

이외수 지음, 해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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