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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이 나도록 매운 오삼 불고기
ⓒ 이효연
오늘은 우리집에서 일본 주부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홍콩이지만 아이 유치원 엄마들과 주로 어울리다보니 홍콩 주부들보다는 일본 주부들과 더 많이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집까지 왕래를 할 정도로 친해진 사이라서 한 번씩 돌아가면서 친구들을 초대해 각자 집에서 점심을 대접하곤 합니다.

지금은 부담없이 상을 차려내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요. 한국 요리 가짓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만한 범위 내에서, 너무 짜거나, 너무 매운 음식을 피해서, 그러면서도 정성스레 보이는 식탁을 꾸미는 일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한국 주부들끼리 모여서 먹는 점심이라면 늘 먹던 반찬에 별미요리 하나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아무래도 외국 주부들을 초대한 자리인지라 그리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더군요. 기왕이면 우리 음식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구요.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걱정을 덜게 되었느냐구요? 간단합니다. 바로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일본 주부들이 한결같이 좋아하는 요리는 일단 '매운 요리'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믿기지 않았어요. 웬만하면 싫은 내색을 안 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매워도 그냥 참고 먹어주는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한 달, 두 달 같이 지내다보니 정말 매운 음식을 잘 먹고, 게다가 즐기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운 떡볶이, 매운 양푼 비빔밥, 매운 비빔냉면에서 시작해서 급기야는 매운 오삼 불고기까지 '허허, 후후' 맵다고 연신 입을 불어가면서, 얼굴이 시뻘개져가면서도 정말 잘들 먹습니다. 반찬으로 내놓은, 젓갈에 고춧가루 듬뿍 넣어 만든 매운 파김치까지 척척 걸쳐서 말이죠.

오죽하면 옆에서 보던 제가 걱정이 되어서 "정말 괜찮으냐? 매우면 남겨도 된다"고 하면 "정말 괜찮다. 맛있다"고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먹습니다. 그렇게 제가 만든 요리를, 아니 우리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헤어질 때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과도 한 번씩 한국요리를 해먹으라고 갖은 양념 섞어 만든 비빔장이며 고추장을 한 봉지씩 싸주게 됩니다.

지난 번 냉면 비빔장에 파김치를 조금씩 싸주었는데 마침 오늘 점심에 다들 모였기에 슬쩍 물어봤습니다.
"맛이 있었어요? 남편들도 다 매운 음식을 잘 들 먹던가요?"
그랬더니 갑자기 '와아'하며 다들 큰소리로 웃더군요.

그러니까 공통점은, 집집마다 일본 부인들은 매운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는데 남편들은 하나같이 쩔쩔매면서 잘 못 먹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매운 비빔장과 파김치에 밥을 쓱쓱 비벼먹는 아내를 보는 일본 남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었구요. 모처럼 남편 앞에서 으쓱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주부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결 같이 입을 모은 말은 "역시 여자는 강하다"였고 이후 '강한 엄마, 강한 아내'를 주제로 한참동안 웃음 섞인 수다를 떨며 즐거운 점심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든 생각 역시 '우리는 강하다' 아니 '강해야 한다'였습니다.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외롭고 낯선 외국에서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 돌보면서 살림하려면 강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으니까요.

'강한 엄마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차원에서라도 앞으로 저희 집 점심상의 매운 한국요리 메뉴는 계속 등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다음에 만나면 나누어줄 오삼 불고기 양념장이나 넉넉하게 만들어야 할까 봅니다.

오삼불고기 만드는 법

재료

오징어 1마리
돼지 불고기 1근(항정살이나 목살, 삼겹살)
양파 1개
대파 2뿌리
그 밖의 준비 가능한 야채(한 입 크기로 썰어서)
올리브 기름 1-2큰술
양념장 (모든 재료를 섞어 믹서에 한 번 돌려주면 편하지요)

고춧가루 3큰술
양파 1/2개
다진마늘 2큰술
맛술 2큰술
고추장 2큰술
설탕 2큰술
참치액젓 1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생강즙 1큰술
후춧가루 약간

▲ 양념장에 고기를 미리 재워둬야 맛이 좋습니다.
ⓒ 이효연
1. 손질한 오징어와 고기, 야채를 한 입 크기로 썰어둔다.
2. 커다란 그릇에 양념장과 고기, 야채를 넣어 10-15분간 재워둔다(금방 먹을 경우는 야채와 같이 재우고, 나중에 먹을 경우에는 고기만 재웁니다. 야채를 미리 재워두면 물이 나오기 쉬우니까요).

▲ 고기를 볶기 전 프라이팬을 강불에 달구는 것을 잊지 마세요.
ⓒ 이효연
3. 강 불에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와 야채를 볶는다(고기를 먼저 볶은 후 야채를 볶으면 더 아삭한 맛을 살릴 수 있어요).

▲ 깻잎, 당면, 떡, 라면 등을 넣어도 맛이 좋죠.
ⓒ 이효연
떡, 불린 당면, 삶은 쫄면 사리를 넣어도 맛이 좋습니다. 오징어 대신 낙지나 주꾸미를 넣어도 별미가 되겠지요. 매운 맛을 좋아하는 경우는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서 넣으면 정말 눈물 나게 매운 오삼 불고기가 될 겁니다.

오삼 불고기 양념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1주일 정도 보관할 수 있습니다. 떡볶이나 여러 가지 매운 볶음 요리에 넣으면 맛이 좋아요. 한 번 만들 때 넉넉하게 만들어 두면 여러모로 편하더군요.

덧붙이는 글 |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일본 주부들은 오징어와 삼겹살이 내는 맛의 찰떡 궁합에도 무척 놀라워하더군요. 다음에는 '갈·낙·새'를 한 번 대접하면 어떨까 생각중입니다.


태그:#오삼불고기, #오징어,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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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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