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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업지구 1단계 100만평이 개발 중에 있다.
ⓒ 오기현
“운전자 빼고 다 차에서 내리시오.”

CIQ(출입국관리사무소) 인민군 장교의 말투가 불쾌했지만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이어서 두 명의 인민군이 차량을 샅샅이 검사했다. 발판 아래 습기 제거용으로 깔아놓았던 신문지는 압수당했다. ‘북한정부의 초청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바로 옆에서 100만 군중 퍼레이드를 관람했던 사람한테 너무 무례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의 위세에 주눅이 들었다. 개성공단지역은 북한의 군사지역이다.

7월 12일, 북한측과 방송제작협의를 위해 한 달 새 개성을 세 번째 방문했다. 원래 현대아산 측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휴전선을 넘을 예정이었으나 북한측에서 갑작스레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직접 차를 몰고 오게 된 것이다. 현대아산 차량 탑승자 명단은 적어도 일주일 전에 유엔사에 통보해야 하지만 차를 직접 몰고 올 경우는 기간이 오히려 단축되었다.

그러나 직접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만만치 않았다. 먼저 통일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방북신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차량을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은 따로 ‘출입통행계획서’를 통일부에 제출하고 ‘차량운행계획서’와 ‘자동차등록증사본’을 준비해 ‘자동차 운행승인신청’을 해야 한다. 자동차 운행승인이 떨어지면 관세청에 ‘남북접경차량등록’을 하여 등록증을 교부받는다. 북한세관 제출용으로 ‘출입통행계획서’, ‘방북자사진명단’, ‘총국제출용 출입계획서’를 별도로 준비한다. 이걸 모두 하루 만에 준비하느라 똥줄이 탔다.

SM5 자동차에 탄 우리 일행 다섯 명은 목동 SBS 본사에서 오전 7시 45분에 출발하여 8시 40분에 DMZ 남쪽에 있는 남측 CIQ에 도착했다. 서둘러 출국심사를 받고 나와 자동차의 번호판을 청색 테이프로 가렸다. 9시 정각, 주황색 깃발을 받아 차량에 매달고 우리 쪽 철책을 통과해 북으로 향했다. 평온해 보이지만 주변 모두가 지뢰밭이라고 하지 않는가? 긴장한 탓인지 일행 중 한 사람이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줄로 늘어선 50여 대의 차량들이 속도를 내는 듯하다가 7~8분쯤 뒤 멈춰 선다. 휴전선에서 겨우 5km, 북측 CIQ이자 개성공업지구의 입구이다. 인민군, 세관직원, 개성총국에서 함께 관리하는 북측 CIQ의 입국심사를 받는 시간은 20여 분정도 걸렸다.

민족화해협의회의 봉고차량을 따라 공사중인 비포장 도로를 달리자 거대한 공사장이 나타난다. ‘개성공업지구’ 시범단지이다. 굴삭기, 트럭, 레미콘차량, 깃발과 먼지, 난리판이다. 6번, 7번의 시내버스가 개성시내를 연결하고 사람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쏟고 있었다.

미리 입주한 여섯 개의 공장을 지나자 ‘우리은행’과 ‘훼미리마트’간판이 보인다. 훼미리마트에선 초코파이가 많이 팔린다고 한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은 ‘봉동관’ 개성공업지구의 작은 초대소 같은 곳이다. 우리가 도착하자 화장실의 화장지가 곧 ‘남측’제품으로 바뀌었다. 북핵문제로 남북당국간의 통로는 1년 이상 막혀 있었지만 개성은 자신의 고유한 추동력을 가지고 이렇게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 개성공업지구의 초대소격인 봉동각의 여성의례원
ⓒ 오기현
개성공업지구가 착공된 때는 2003년 6월 30일, 그 동안 진행이 느리다고 모두들 불만이었다. 남북한간의 공동사업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사람, 개성이 남북경협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공사현장을 한번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휴전선 바로 인근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일, 그리고 곧 닥쳐올 변화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성공업지구의 북한측 노동자들의 임금은 현재 미화 57.5달러, 우리 돈 6만원 수준이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사실 거저먹기다. 그러나 변화의 여파는 북한이 훨씬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에 일하는 북한근로자는 현재 3000여 명, 그 가족까지 합하면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북한 사람들이 직접 개성공단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목표대로 25만 명이 일하게 되면 적어도 북한 인구의 5%가 개성공단에서 지급하는 임금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 주변부 인구까지 감안하면 개성은 북한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는 것이다.

군사지역이라 장애가 많다.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긴장감을 주는 것도 군사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그것이 개성공단의 장점이다. 북한의 가장 보수적인 집단인 군부가 개방의 현장에서 그 공기를 생생하게 호흡하는 중이다. 휴전선 접경인 개성공단지역 2000만평이 군사적 완충지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번호판 가린 승용차가 개성시내의 통일거리를 지나 선죽교 쪽으로 달리자 길 가던 사람들이 아는 체 한다. 군용차는 몇 대 보였지만 승용차는 우리 것 한 대 뿐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교통순경이 신호위반 딱지를 떼겠다고 차를 세울 날도 이젠 멀지 않았다.

그 날 오후 목동 SBS 본사로 돌아온 나는 운행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출발시간: 오전 7시 45분, 도착시간: 오후 18시 15분, 운행거리: 왕복 159km, 목적지: 개성'

덧붙이는 글 | 방송교류협의를 위해 12일 개성을 다녀왔습니다. 이 원고는 7월 13일자 PD연합회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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