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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995년부터 주5일 근무제(五日工作制)를 실시해 오고 있다. 여기에 춘지에(春節, 7~10일, 길게는 15일), 노동절(勞動節, 7일), 궈칭지에(國慶節, 7일) 등의 연휴를 합하면 중국에서 법정공휴일은 110일에 달한다.

중국정부는 쉬는 날을 늘리는 것이 소비를 진작시켜 외자유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지난 95년 주5일 근무제를 조속히 도입 시행한 바 있다. 여기엔 갈수록 늘어나는 실업문제를 '일 나눠하기'로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연휴기간 동안 여행과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미리 일주일을 황금연휴로 놀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추가로 일을 하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장려하고 있을 정도다.

중국의 공휴일과 기념일은 중국공산당의 정통성과 혁명성을 고무시키기 위해 제정된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1949년 건국 이후 중국 정부는 추석, 단오와 같은 전통명절에 대해서는 경시하면서 여성을 혁명역량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해 3월 8일을 부녀자의 날(婦女節)로, 5·4운동을 기념하여 5월 4일을 청년절(靑年節)로, 공산당 창당일인 7월 1일을 건당절(建黨節)로, 건군기념일인 8월 1일을 건군절(建軍節)로 제정하여 공휴일을 정치적 이념의 선전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특히 5·1 노동절과 10·1 궈칭지에를 일주일 연휴로 제정하여 중시하는 것은 당연히 노동자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정권으로서 애국주의와 혁명사상을 고취하고자 하는데 그 숨겨진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 노동절을 맞이하여 주택 입구에 오성홍기가 걸려 있는 모습이다.
ⓒ 김대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기념일과 연휴가 본래의 정치적인 취지를 넘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큰 역할과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연휴조차도 중국정부가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경제건설'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논리가 흥미롭다.

중국의 휴일, '정치적 이념' 선전수단에서 '경제' 선전수단으로

표면적으로는 집집마다 게양되는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통해서 애국심과 혁명성을 제고하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 중시되는 것은 집집마다 얼마나 많은 '붉은 런민비(人民幣)'를 소비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휴일경제(暇日經濟)'란 용어이다.

백화점들은 황금연휴에 맞춰 대대적인 세일행사를 준비하고 여행사들도 각종 여행상품을 저가로 내놓으며 휴일경제의 소비를 부추긴다. 그리고 연휴기간에 얼마나 많은 소비활동이 있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국민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를 분석한다. 노동절 연휴가 끝나기가 무섭게 중국의 주요 언론들은 앞 다퉈 '휴일경제의 위력'을 보도한다.

▲ 노동절연휴를 맞아 지방각지에서 올라 온 관광객들로 톈안먼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 김대오
<중국뉴스신문>이 중국 상무부(商務部)의 발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노동절 연휴기간의 소비총액은 2400억 위안(31조원)으로 작년에 비해 17%가 증가했다. 또한 전국 116개 명승지에서는 174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렸는데 입장료 수입이 5.7억 위안에 달했으며 베이징 여행객은 416만 명으로 작년에 비해 14% 늘었다고 <신징바오(新京報)>가 보도했다.

황금연휴를 맞이하면 우선 바빠지는 것이 여행사다. 저가의 관광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돈 많은 사람들은 해외로, 중산층은 국내 각지로, 서민들은 가까운 근교로 나들이를 떠나기 때문에 전국의 유흥지는 어디를 막론하고 인산인해를 이룬다. 꾸궁(故宮, 자금성)과 롱칭샤(龍慶峽, 베이징 근교의 자연풍경구)는 몰려든 관광객으로 안전을 위해 입장이 제한될 정도였다.

<중국국제여행사(CITS)> 왕치옹잉(王瓊瑛) 경리의 소개에 따르면 해외여행객수가 작년대비 20% 늘었으며 신장(新疆), 지우짜이커우(九寨口), 궤이린(桂林) 등의 원거리 고가상품을 찾는 여행객이 많아 여행의 고급화 추세가 두드러졌다고 한다. 중국의 경제 급성장으로 부를 축적한 상류층들이 휴일경제를 주도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 노동절 기간에 할인판매를 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린 대중전기 상점입구.
ⓒ 김대오
인산인해를 이루기는 파격세일을 하는 백화점과 상점들도 마찬가지이다. 핸드폰, 전자제품에서부터 생활용품까지 싼 값의 물건을 사기 위해 몰려든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중국 최대의 전자제품 판매업소인 대중전기(大中電器)의 주안(朱安) 영업담장자에 따르면 노동절 기간동안 20~40% 할인판매와 다양한 경품행사가 있었는데 가장 많은 손님이 찾은 곳은 핸드폰과 가전용품점이었다고 한다. 주로 평면 벽걸이 TV, 고급 센서냉장고, 에어컨 등이 가장 많이 팔려 매출액이 작년 대비 20%가 증가했다고 소개한다.

혹시 최근 고조된 반일감정과 관련하여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감지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TV판매 순위를 소개하며 "이즈르워(抑制日貨, 일제불매운동)는 구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가 공개한 TV판매 순위에서 1위(SHARP), 2위(도시바)를 일본제품이 차지했으며 LG와 삼성은 각각 7위와 13위에 머물렀다.

'휴일경제' 주도하는 중국 상류층들

▲ 노동절 기간에 결혼식이 많아 도심 곳곳에서 꽃 단장을 한 차들이 자주 눈에 띈다.
ⓒ 김대오
노동절 특수를 누리는 곳 중 하나는 바로 결혼 관련업체들이다. 일주일간 연휴가 계속되기 때문에 그 중에 길일을 택하여 결혼하는 이들이 많다. 올해는 과부년(寡婦年, 설이 입춘보다 늦어서 입춘이 들어 있지 않은 해)이기 때문에 결혼하는 사람이 예년에 비해 적다고 하지만 시내 곳곳에서 화처(花車, 결혼 축하 카퍼레이드용 꽃단장 차, 보통 5대 이상이 동원되며 재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체면을 중시여기는 중국인들에게는 결혼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행렬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신화서(新華社)>의 보도에 따르면 노동절 기간동안 모든 고급호텔 예식장 예약이 만료되어 결혼식을 노동절 연휴 이후로 미루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음식문화를 중시여기는 중국인들에게 연휴기간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가족단위의 저녁식사다. 베이징 오리구이로 유명한 취엔취더(全聚德) 본점은 하루 93.6만 위안(1억2천만원)의 매상을 올려 역대 최고의 매출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최근에는 무공해 녹색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차를 타고 무공해농장에 가서 연휴를 즐기며 무공해채소를 직접 따서 음식을 해 먹는 고급 휴가촌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그 밖에도 각종 공원에서는 문화행사가 벌어져 기공체조와 춤대회가 펼쳐지기도 한다.

일주일의 황금연휴가 생산해내는 천문학적 소비액수가 대변해 주듯이 휴일경제는 중국경제를 움직이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휴일도 빈익빈 부익부?

그러나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춘지에에 비해 노동절과 궈칭지에의 경우 중산층 이상의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이뤄지며 빈부격차를 더욱 자극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하층노동자들은 이 기간에도 거의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으며 여행이나 고급가전제품 구입 등은 아직까지 꿈도 못 꿀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절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 김대오
<중국뉴스신문>은 5월 8일자 보도에서 올해의 노동절 소비의 특징으로 전국적인 균형소비를 뽑으며 중칭(重慶), 닝포(寧波), 산동(山東), 헤이롱장(黑龍江) 지역의 연휴기간 소비가 각각 26.9, 25.3, 25, 20%씩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하며 중국경제가 연안일부 지역에서의 과열양상을 넘어서 내륙지역에서도 균형있게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휴일경제가 연안중심 경제발전구의 내수 소비를 진작시켜 부익부빈익빈을 가중시킨다는 말로도 설명될 수 있다.

베이징의 왕징(望京)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산동(山東)출신의 민공(民工, 농민출신 도시노동자)에게 노동절 기간에 좀 쉬었냐고 묻자 그는 "5월 1일 하루 쉬었는데 자기는 그날도 야근을 해야 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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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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