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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이 2월 4일 자신의 홈 페이지에 ‘단식 100일? 기자들은 다 죽었다!’라는 글을 써 또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일부 불교계 인사들은 '정신이상자의 망언'이라고 맹렬히 성토하는 성명을 냈다.

나는 이 글을 다른 관점에서 본다. 기자로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확인하여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기자의 첫째 가는 사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갑제가 ‘기자론’을 설파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자 정신’을 왜곡하고 거짓말로 혹세무민하고 있는 곡필(曲筆)이 이 글의 핵심이다.

조갑제는 한때 유능한 기자였다. 기자로서의 자질과 성실성이 뛰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사주에게 충성 매진하고 이념적으로 투사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누구나 그렇듯이, 뛰어난 자질을 올바르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자질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잘못 사용하면 사회적 흉기가 되는 법이다. 지금 조갑제가 그렇다. 조갑제에게 기자로서의 기능은 수단일 뿐 기자 정신은 실종돼 있다. 조갑제의 기자론을 경청해보자.

“박정희 전두환의 권위주의 정부시절 기자들은 정부의 발표를 항상 의심하고 기사를 썼다.”
“요사이 젊은 기자들은 권위주의 정부시절의 기사들을 다시 읽어보고 선배들의 기자정신과 반골의식, 그리고 사실에 대한 집착을 배워야 할 것이다.”
“기자들은 사실과 說을 구별할 줄 아는 전문가이지 발표문을 베끼는 대서방 근무자가 아니다. 혹시 기자들 중에서 신념이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그래서 ‘나는 그 여승을 지지하니 100이든 1000일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이들은 하루빨리 직종을 바꿔야 할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홈페이지까지 뒤져서 문제를 삼는 방식에 대해서는 마땅치가 않다. 그저 많아야 2~3천명 극우분자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말 것을 사회적 이슈로 부각해 그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어쨌건 홈페이지 영역을 벗어났으니 바로잡기는 해야겠다.

세 번째 인용 내용은 부분적으로 기자들이 돼새겨볼 만한 게 있다. 사실이지 대서방 근무자들만큼 베끼기에 능숙하여 몸에 밴 기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번 경우도 뒤늦게 관심을 가진 후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사실 확인도 않고 숫자나 세고, 신념까지는 아니지만 감성적으로 접근한 점들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기실은 조갑제 자신이 “신념이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감추고 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일일이 예를 들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앞의 두 인용문은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 때 기자들이 언제 정부 발표를 항상 의심하고 기사를 썼단 말인가? 철면피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주장할 수는 없다.

조갑제는 1971년 김대중 후보 집 화재사건, 그리고 정인숙 피살사건 때를 예로 들었다. 적절한 예가 아니다. 기개를 잃지 않은 기자들은 1975년에 대거 쫓겨났고, 그 때 살아남은 양심적인 기자들은 1980년 대학살 때 거의 남김 없이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모른체 하고 “선배들의 기자정신과 반골의식, 그리고 사실에 대한 집착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후배기자들에게 훈계하는 모습은 블랙 코미디요 허무 개그다.

‘100일의 진실’에 대한 문제 제기도 사실은 기자로서 통상 할 수 있는 의구심에 그치지 않고 신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100일 단식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신념이다. 100일 단식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단정한 강한 불신의 표현과 ‘여승’이라고 비하하는 표현에서 그 내면을 읽을 수 있다. 이 표현은 또 남성 우월주의의 마초 근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조갑제는 뿐만 아니라 비겁하다. 그 자신은, 또는 부하 직원을 시켜 미리 취재하여 “이 여승이 과연 10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가를” 왜 알아보지 않았는가? 왜 “의사들에게도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물어”보지 않았는가? 그 결과 “언론들에 의한 국민들의 오판 유도”와 “기자들의 선전원화 또는 대변인화”로 귀결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가?

기자. 기록하는 사람이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도 기자라 불렀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언관(言官), 사관(史官)도 기자였다. 선지자와 언관, 사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건강한 비판정신을 갖고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고 기록하는데 진력했다는 사실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고 거짓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이게 오늘의 기자 정신으로 이어진다. 이 정신이 없으면 기자가 아니다. 조갑제는 기자인가? 2005년 2월3일 기자들이 죽기 전에 조갑제 기자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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