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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문사 논설위원들이 모든 사안에 대해 똑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를테면 논설위원이 칼럼을 쓸 때 다른 위원들이 모두 동의하는 방향으로 써야 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표필자가 합의된 내용을 쓰는 사설과는 달리 칼럼은 개인의 소신을 존중한다. 다만 논설위원 개인의 칼럼이라도 사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중앙일보 논설위원들의 칼럼은 그 범주 내에서라도 다양한 시각이 공존한다. 그러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엉뚱하게 빗나가거나 상반된 관점이 충돌하기도 한다.

먼저 객원 논설위원 정진홍의 경우. 문제의 1월 28일자 중앙시평 ‘노무현이 박정희를 이길 수 없는 이유’를 보자. 이미 여러 지적이 있었으므로 빠진 부분만 보자. 정진홍은 주장한다. “우리는 1980년대를 관통해 90년대 초반까지 철 지난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다”고. ‘우리’가 아니라 ‘나’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내가 기억하기로 1980년대를 관통해 90년대 초반까지 정진홍은 마르크스주의 언론학자였다. 그런데 아니었나보다. 그저 유행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다가 빠져나갔던 모양이다. 그렇다. 그 때는 마르크스주의가 유행이었다. 언론학 분야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비판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전성기를 맞았고, 마르크스 이론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인간들까지 비판이론을 전공한다고 설치던 때가 있었다. 언론학자였던 정진홍도 그런 부류였나보다.

소비에트연방과 동구권이 붕괴된 이후 서구에서는 그걸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떠벌였고, 국내에서는 비판이론 전공자(연 했던 자)들이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대신 포스트모더니즘이니 신사회운동이니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철이 지난 것이 아니라 철 없는 자들의 꼴불견 행태였다.

분명히 말하건대 마르크스 이론은 유행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유행을 위해 이론을 구축한 것이 아니다. 미디어와 공모하여 유행을 만들어내는 패션 자본가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마르크스 이론은 과학이지 유행이 아니며,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실천적인 이론이다. 마르크스 없는 사회과학이란 공허하다. 정진홍 객원 논설위원의 칼럼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다음으로 문창극 논설주간의 2월 1일자 칼럼 ‘부시 연설을 다시 본다’를 보자. 그는 ‘자유의 확장’을 강조한 부시의 취임 연설에 대해 “흠잡을 데 없는 연설”로서 “‘자유의 연설’이라 이름을 붙일 만했다”고 극찬했다. 그리고 그 ‘명연설(?)’에 토를 다는 비판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문 주간은 “미국이 북한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도와 “북한을 우리와 같은 민주의 나라, 자유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데 대해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화적인 방법인 한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문 주간의 인식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북한을 자주적인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체제전복을 획책하는 네오콘의 발언은 외면하면서 부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점이다. 순진한 걸까, 부시를 두둔하기 위한 것일까? 미국이 무슨 권리로 남의 나라의 자유 문제를 멋대로 재단하고 강제한단 말인가?

중앙에 이런 논설위원들만 있으면 조선일보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들이 있어서 김석환 논설위원의 가치가 더 빛나는 것인지 모른다. 김 위원의 1월 31일자 칼럼 ‘케네디의 자유와 부시의 자유’를 보자.

김석환 위원은 “부시의 자유 확산 혹은 자유 강제의 행위는 자유를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군사·정치적 목적의 하위개념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정확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자유의 확산은 강제가 아닌 매력에 더 의존한다”며 “미국이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에서 하드파워로 자유의 확산을 이루려고 한다면 미국의 매력은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 날카롭게 진단한다. 문 주간의 인식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객원 논설위원이야 있는 동안 신문의 가치를 약간 떨어뜨릴 뿐 큰 변수는 아닐테고, 중요한 것은 문 주간과 김 위원의 공존이 주는 의미다. 이것은 논설위원실 뿐 아니라 전체 편집국의 신구세대의 인식차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조선이나 동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앙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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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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