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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월25일자 4면은 '핫이슈'라고 하여 두 가지 주제에 세 꼭지를 다루었다. 지난 23일 열린 한국언론재단 이사회에서 재선임된 박기정 이사장이 정부의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 두 꼭지와 신문유통공사 관련 기사 하나다. 여기서는 신문유통공사 관련기사의 화끈한 왜곡의 실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제목부터가 작위적이다. '신문배달까지 정부가 관여하나'. 정부가 관여하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의 주장을 열린우리당이 입법과정에서 수용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한 바 없으며, 법이 통과되면 정부는 법에 따라 신문유통공사의 설립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문배달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하지만 운영은 공적 영역에서 책임지는 것이다. 원한다면 조선일보도 투자를 하고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진성호 기자는 "신문배달 전담 유통공사(公社)를 설립하자고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서두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기자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신문사) 자신이 논란을 만들고 있다. 정해 놓은 프레임에 따라 입맛에 맞는 전문가(?)의 멘트를 따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신문유통공사가 과연 효율성이 있는지, 해외 사례를 연구해 글로벌 스탠드에 맞는 제도인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 말자는 얘기다. 신문유통공사는 최후의 대안이다. 그러니 효율성이 있도록 만들어야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질 겨를이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 한국의 신문유통질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최악의 아노미 상태다. 이 마당에 무슨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해외 사례를 연구하거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논의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이 증세에 맞는 독자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유통공사인 것이다.

진 기자는 조선·동아의 단골 논객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의 말씀을 인용했다. "강제로 모든 신문사가 가입해 공동배달을 할 경우 독자의 구독권이 침해된다"는 말씀이다. 이는 신문법안을 읽어보지 않고 함부로 내뱉은 무책임한 주장이든지, 악의적으로 독자를 속이기 위한 야합의 결과이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신문법(안)에는 강제로 모든 신문사가 가입하도록 한 조항이 없다. 싫으면 그만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근거로 하여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언론인 출신이 이런 날조된 주장을 하다니. 게다가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닌가. 뿐만 아니라 진성호 기자는 신문법을 꼼꼼히 읽어보았으므로 남 교수의 주장이 황당무계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옮겨놓았다. 참으로 한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모든 신문사가 다 가입한다고 해도 독자의 구독권은 침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의 구독권을 신장시키게 된다. 신문유통공사가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추게 될 때, 전 국민 누구나가 보고 싶은 신문을 구독해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유통공사의 취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왜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거짓말을 하는가?

남 교수는 또 "무엇보다 정부가 공동배달회사의 주인이 되는 공사 형태를 띨 경우 친정부적인 매체에 유리하게 운영될 수도 있다"고 했단다. 오로지 할 수 있는 사고가 친정부냐 반정부냐에 있으니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친정부 신문을 보고 싶은데 배달이 안 돼서 반정부 신문을 볼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그게 독자의 구독권이 실현되는 현실인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 기자는 공동배달제가 실패한 사례를 들었다. 한겨레와 경향, 문화, 국민, 세계 등 5개 신문사가 2003년 과천지역에서 실시한 사례였다. 이 실패의 사례는 오히려 공사의 필요성을 웅변해준다. 자본이 취약한 신문사들이 한 지역에서 발버둥치다 실패했다는 사실은, 정부가 독자의 구독권을 위해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문유통공사다. 진성호 기자는 언제쯤이면 진실만을 기록하는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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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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