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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을 기다리고 있는 정동영 장관.
ⓒ 김대오
22일 올 겨울 들어 베이징에 처음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눈에 덮인 고풍스러운 베이징대학 캠퍼스의 서편 국제관계학원 홀에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강연이 열렸다.

강연에는 김하중 주중대사뿐 아니라 김기재,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설훈 전 의원 등이 참석하였는데 정동영 장관은 "한국에서 정치를 하다가 안 보이는 분들이 모두 베이징 대학에 와서 공부하고 계신 것 같다"고 말해 강연에 참석한 400여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동북아 평화공동체 건설 제안

'평화번영의 동북아 시대와 한반도'라는 제하의 강연에서 정 장관은 올해 800억 달러에 달하는 한중 경제교류와 활발한 문화교류를 바탕으로 한중 양국이 협력하여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제안하고 그 3가지 기본 개념을 밝혔다.

▲ 정동영 장관이 베이징대학 객좌연구원으로 있는 설훈 전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김대오
첫째는 개방이다. 국가간에, 지역간에 ‘폐쇄적인 소아’가 아니라 ‘열려 있는 대동’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제하고 한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당당한 구성원으로 참여하기를 희망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공존이다. 1955년 반둥회의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했던 ‘치우동춘이(求同存異-공통점을 추구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갈등을 해결해 나가자)’가 대학시절부터 정 장관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소개하며 어떤 나라도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체제와 문화를 변경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6자 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여국들이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환웨이스카오(換位思考)와 치우동춘이의 공존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셋째는 평화이다. 정 장관은 동북아의 평화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는 결코 위험을 일시적으로 피해보고자 하는 소극적인 평화가 아니라 군사적 신뢰구축을 넘어, 한반도에서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적극적인 평화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평화, 그리고 유럽의 안보 공동체와 같은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체계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협력과 지원을 통해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어 궁극적으로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의 변화를 돕는 것이 슬기롭다"

정동영 장관은 해방 60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5주년이 되는 2005년은 한반도에서 뜻 깊은 해라고 전제하고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느냐, 아니면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들어서느냐의 중대기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동영 장관이 베이징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 김대오
그러면서 북한과 미국 그리고 6자회담 참여국들의 ‘역사적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또 북한의 선택을 일방적으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외부에서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슬기롭고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 장관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은 바로 ‘평화적 해결 방법’이라고 역설하기도 하였다.

내년에 열릴 6자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중재 역할을 수행할 것과 평화적 해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목소리를 보다 분명히 내겠다는 뜻으로 보여진다.

"개성공단은 북한 개방 이끌 의미 있는 '점'"

끝으로 정 장관은 자신이 개성공단을 다녀온 일을 소개했는데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며 떠올랐다는 루쉰(魯迅) 소설 <고향>의 마지막 구절("희망이란 마치 땅 위의 길처럼, 원래는 없던 길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을 중국어로 읽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 장관은 냉전시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에 사람과 물자, 차량이 오가고 있고 냉전시대,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탈냉전의 역사적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개성공단은 단지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갈등을 녹이고 평화를 만드는 공장이며 처음 생산된 그릇은 평화를 담고 통일의 소망을 담는 그릇이라고 그 의미를 해석했다.

▲ 베이징대학 조선어학과 장훼이원(張惠文)군이 정 장관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 김대오
강연에 이어 베이징대학 조선어학과 장훼이원(張惠文)군의 개성공단의 의미와 6자회담이 봉착한 어려움과 해법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정 장관은, 개성공단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북한의 경제개방과 발전을 담보해 낼 ‘점’으로서 의미를 강조했다.

6자회담 질문과 관련해서 정 장관은 이번에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목적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그 과정에서 중국정부의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6자회담 전 참여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하지만 북한과 미국간의 불신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칠레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했던 “믿는 사람 사이에는 협상이 필요 없다. 믿을 수 없는 사람끼리 협상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의 토대를 쌓아 결국엔 믿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소개했다.

또 북미양국의 핵문제 해법으로 3가지씩을 서로 주고받으라고 제안했는데 북한에게는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 ▲NPT 가입 ▲IAEA 핵사찰 수용을, 미국에게는 ▲체제 안전 보장 ▲경제제재 철회 ▲북미국교수교를 요구했다.

재치 있는 말로 미래지향적 해법 제시

▲ 몰려든 한국유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대오
강연이 끝난 뒤 한국유학생들은 정 장관과 기념촬영을 위해 몰려들었으며 수준 높은 강연이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베이징대학 학생들도 질문시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강연을 통해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한반도평화정책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유일하게 질문을 했던 장훼이원(張惠文)군은 정 장관이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독일수상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었던 사진에 대해 언급하며 간접적으로 일본에 대해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깊은 사죄가 필요하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만족스러워 했다.

그리고 껄끄러운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서도 문화적 정체성과 확인된 역사적 사실을 서로 인정하자고 하면서도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어려움이 닥쳐야 억센 풀의 의미를 알 수 있다(患難知勁草)”는 재치 있는 말로 미래지향적인 해법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정동영 장관에 대한 한국 유학생들의 사인·사진 공세는 눈이 내리는 강연장 밖에서도 계속되었다. 정 장관은 23일 상하이(上海) 푸둥(浦東) 지구와 쑤저우(蘇州) 공단을 둘러본 뒤 24일 나흘간의 방중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 눈이 내리는 강연장 밖에서도 유학생들의 사진찍기 요구는 계속되었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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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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