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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섬, 노도에 오랜 세월 동안 잠들어 있던 서포 김만중이 다시 살아 숨쉬게 되었다.

언뜻 보기엔 다도해의 작은 한 섬 정도로 보일 수 있지만 이곳 노도의 동쪽 골짜기 '큰골' 어딘가가 서포 김만중이 유배 중에 지었던 <사씨남정기>와 <윤씨행장>의 산실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또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 서포 김만중의 영정
ⓒ 서포기념사업회
그런 이곳에 남해군이 서포의 한많은 유배 생활이 묻어나는 '초옥' 복원과 함께 유배문학관 건립, 명실상부한 유배문학의 성지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시작이 이번 서포 김만중 초옥 복원인 것. 이 사업을 시작으로 남해군은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2월 12일 시작하는 초원 복원공사는 수백 년의 세월을 담기에는 부족한 2개월의 공정이지만, 서포 기념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뜻 깊은 일이다.

지난 1988년 한 사회단체의 노력으로 노도에는 '서포김만중선생 유허비(西浦 金萬重先生 遺墟碑)'가 서 있다. 유허비에는 "김만중은 노도의 큰골 허리등 배미 자리에 지은 초옥에서 기거하였다"고 적혀 있다.

김만중이 기거한 초옥터로 추정되는 큰골 중턱에는 섬에서 보기 어려운 샘터가 있다. '서포 김만중 선생 초옥터'라는 작은 표석만이 그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런 이곳에 초옥이 복원되면 수백 년은 족히 됨직한 동백나무 사이에 그의 흔적이 담겨질 것으로 기대된다. 단순한 초옥 복원이 아니라 <사씨남정기>를 집필하는 생생한 모습, 조카인 죽천 김진규가 그렸다는 영정 그리고 서포 김만중의 친필 수찰, 많은 시들이 담겨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초옥 복원은 노도를 문학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남해군의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초옥터 복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서포기념사업회(회장 김성철)는 단순한 초옥 복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서포의 친필 수찰
ⓒ 서포기념사업회
서포기념사업회 김성철 회장은 "역사 기록물을 통해 확실하게 입증할 수는 없지만 노도는 분명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적거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런 저런 설이 있지만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하늘이 낳은 효자 김만중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머니의 부고를 받은 뒤 대부인의 행장을 짓고, <사씨남정기>를 지어 임금을 회개시키기 위해 앵강만 너머 섬으로 스스로 침잠했으리라는 추정은 수백년을 이어온 구전으로도 충분하다"고 초원 복원 사업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 회장은 그동안 서포 김만중의 생과 삶을 담은 책자를내년 2월경 발간할 예정이다.

한편, 오는 12일 오전 11시 노도에서 열리는 서포 초옥 복원 공사 착공식에는 서포 기념사업회 회원과 뜻 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서포 기념사업회는 단체 출발을 계획하고 있는데 남해문화사랑회 홈페이지 또는 다음카페 '남해군사랑'을 통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초겨울의 바다 풍광과 함께 서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문학기행이 될 듯하다.

문학의 섬, 노도는?

노도는 상주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도라는 섬 이름은 이곳에서 배의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櫓
島)라 불리게 되었다고 구전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청정해역으로 볼락, 농어, 감성돔이 잘 잡히는 곳으로 인근에 상주해수욕장과 보리암으로 유명한 금산이 있어 관광객들의 자주 찾는 곳.

노도가 더욱 유명한 것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이기 때문이다. 서포는 이곳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 등을 집필했다고 한다.

노도는 0.41㎢ 넓이의 작은 섬으로 1689년부터 3년간 이 섬에서 유배생활을 한 뒤,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서포 김만중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문학의 섬이기도 하다. / 송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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