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홀로 월병' 먹어야 하는 중국인

▲ 중국에서는 국경절과 추석이 시기적으로 비슷하여 국경절에 방점을 찍다보니 추석은 다소 소홀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이다.
ⓒ 김대오
중국의 추석은 초라하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불리는 추석이 중국에서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 추석의 주인공 월병(月餠)만이 겨우 중국인들에게 '추석이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할 뿐 정월대보름이나 단오, 칠석 정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대부분 회사나 업소가 추석날도 출근을 해야 하고 각급 학교도 정상수업을 한다. 특히 올해는 국경절(國慶節 10월 1일) 직전에 추석이 들어서 국경절 일주일 연휴를 위해 거의 모든 회사와 학교가 정상적인 일과가 적용되어 탄위엔[團圓](온 가족이 다함께 모인다는 의미로 추석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하지 못하고 '나홀로 월병'을 먹는 중국인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허베이(河北)성 출신의 베이징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고향이 그리 멀지 않지만 추석이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7년 동안 한번도 추석 때 고향에 못 가봤다고 아쉬워한다.

▲ 베이징의 화탕매장에 추석 월병을 진열하고 판매하고 있다. 값이 천차만별인데 보통 500위엔 이상이어서 만만치가 않다.
ⓒ 김대오
적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쉬는 설날 춘지에(春節)와 비교하면 중국인의 추석 지내기는 그야말로 단출하다. 설날과 함께 일 년 중 가장 큰 세시풍습이던 추석의 의미가 이렇게 약화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기상으로 중국이 중요시 여기는 국경절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국경절에 방점을 찍다보니 비슷한 시기에 있는 추석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또 조상과 조왕신 등에 대한 제사나 차례 지내기 풍습은 사회주의 중국이 다소 경계하는 종교적인 성향을 띤다는 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와의 단오전쟁과 세계문화유산대회 개최 등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중국에서 중추절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의 86%가 추석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70%는 추석에 출근하는 것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론을 등에 업고 베이징농업대학장인 지바오청(紀寶成) 등 30명의 인민대표는 청명절, 단오, 추석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줄 것을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에 신청한 상태다.

우리만의 추석문화 중국인들에게 선보였으면

다소 썰렁한 중국의 추석 분위기는 한국 유학생과 교민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교민들은 추석날 저녁 가족들 혹은 친구들끼리 모여 송편이나 월병을 먹고 또 외식을 하며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중국 회사에 다닌다는 한 한국 직장여성은 추석날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데 좀 서운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여기는 중국이잖아요(TIC/This Is China)"하고 대답하면서 중국의 상황에 맞출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루샹쒜이쑤(入鄕隨俗 : 현지에서 현지의 풍속을 따르다)된 모습이다.

▲ 한국인이 많이 사는 베이징 왕징의 한 시장에서 한국교민이 제수용 과일을 고르고 있다. 한국에 비해 값이 싸서 그나마 부담없이 과일을 살 수 있다.
ⓒ 김대오
베이징의 한인촌 왕징(望京)에서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김모씨는 올해로 중국에서 열두 번째 추석을 맞이하게 되는데 한국인들의 달라지는 추석 지내기 모습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교민이 적던 90년대 초반에는 어느 한국식당에서 추석에 송편을 준다는 소문이 나면 금방 많은 유학생들이 모여들어 송편을 나눠 먹고 체육대회, 윷놀이 등을 함께 하며 단합대회를 했다고 한다.

또 중국인들도 몇 안 되는 한국인들에 큰 관심을 보이며 집으로 초대하여 위에삥이나 만두를 함께 빚어 먹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은 한국인에, 어딜 가나 한국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이어서 예전처럼 타국에서 추석을 보내는 애틋함이나 간절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한다.

중국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한국 유학생은 작년 추석 때 베이징 외곽에 있는 중국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가서 월병과 과일을 나눠 먹고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과 폭죽을 터뜨리며 달을 감상했다면서 문화적인 차이가 있지만 한-중 양국 추석의 의미는 비슷한 것 같다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한국유학생들과 교민들에게 추석에 차례를 지내거나 송편을 만들고 민속놀이를 즐기느냐는 물음에 대다수가 그냥 가족단위나 지인들과 함께 외식을 할 정도라고 밝혔다.

재 중국 한인수가 20만 명을 넘어선 지금 우리의 풍성한 추석 문화를 중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선보이며 우리의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석에 뜨는 둥근 달은 단결과 화합의 상징이다. 주중한국대사관이나 재중국한인회 같은 영향력 있는 기관이 구심점이 되어 추석맞이 한민족 화합의 장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타국에서 명절분위기도 느끼지 못하고 썰렁하게 추석을 맞는 우리 교민들이 중국의 문화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만의 전통과 미풍양식을 지켜 가는 것과 하나 되어 단합하고 협동하려는 노력들이 중국에서 한국인과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