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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과 새로운 경쟁파트너 중국의 힘겨루기가 시작되는 가운데 중국내에서는 반미정서가 드높다.
내이멍구(內蒙古) 여행을 하던 중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기차 시간이 남아서 역주변을 구경하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왜 사진을 찍느냐"고 물으며 대뜸 “너 미국 스파이(중국어로 터우-特務 라고 한다)지?” 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그 주위로 삼사십 명의 중국인이 모여 들었다. 그 낯선 남자는 디지털카메라를 빼앗아 찍어둔 시장과 거리풍경 사진을 가리키며 "중국의 약점을 찍어서 미국에 보내는 스파이가 맞다"고 소리쳤다. 다행히 옆에 파출소가 있어서 "파출소에 가서 해결하자"고 했더니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물러났다.

그는 단순히 관광객들에게 겁을 주어서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 같았는데, 그 수법에 미국 스파이가 이용된다는 점이 놀라웠다. 우리 나라에서 반공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즉, ‘빨갱이’이란 말 한 마디가 목숨을 좌우하던 때가 있었다면, 중국에서는 바로 ‘미국 스파이(메이궈터우-美國特務)’가 이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지난 7월 25일 상하이(上海)에서는 미국 국적의 화교 왕페이링(王飛凌)이 중국의 국가 기밀을 빼내 미국에 보낸다는 비밀첩보혐의로 체포되어 강제 출국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미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하는 반면, 중국정부는 1999년 5월 8일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NATO)의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 때 보여준 것처럼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며 철저하게 국익을 이끌어 내는 데 반미정서를 활용하고 있다.

대다수 중국인들은 미국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미국이 타이완과 중국과의 통일을 방해하기 위해 타이완에 무기원조 등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티벳의 독립운동을 배후 조종하면서 지원하고 또 중국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서 6·4 톈안먼(天安門)사건과 파룬궁(法輪功) 등도 암묵적으로 지지했다고까지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중국의 내정문제인 정치민주와 인권상황을 걸고 넘어지며 중국의 거사를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은 매년 국회보고서 등을 통해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찾아 외교카드로 적극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 여성 '구타 사건'

▲ 미국경찰에 의해 구타당한 자오옌(趙燕)양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중국의 CCTV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경찰이 미국 여행을 하던 한 중국 여성을 구타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내에서는 또 다시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상업적 목적으로 미국에 합법 입국한 중국인 자오옌(趙燕)양이 7월 21일 밤 11시경 미국 이민국 소속 경찰에게 아무런 이유없이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자오양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부근인 나이아가라폭포를 관광 중이었으며 아무런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입국자로 간주, 3명의 미국 경찰로부터 수갑으로 묶인 채 심한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외교부는 적극적으로 자오양의 신변 안전을 보호하는 한편 조속하고 공정한 사건 해결을 미국측에 촉구했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이번 사건을 기소한 자오양의 재판은 9월에 열릴 예정인데, 그녀의 변호사는 자오양의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과 가해자 처벌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이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에게 서한을 전달, 사과와 책임자 처벌의 뜻을 전달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유감의 뜻을 표명하며 신속한 사건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자오양을 구타하고 현재 현직에서 파면된 로버트 로더스(Robert Rhodes) 경관은 자신의 행위는 적법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정, 법정대응을 벌이고 있어 최종 판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중국의 포털 사이트 왕이(網易)에 실린 '중국 반미정서 고조' 특집기획란.
런민대학(中国人民大學)국제법 전공의 허판(何帆)씨는 "사건 직후 피해자가 현지의 화교사회와 연계하여 적절한 법적, 외교적 조치를 취한 것이 사건을 합리적이면서도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였다.

중국의 포털 사이트 왕이(網易)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중국 반미정서 고조'라는 제하의 특집기획을 통해 "미국은 중국의 언론이 반미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패권적 일방주의가 중국인의 혐오감을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개인피해 사례를 중국인의 민족자존 문제로 간주하여 신속하고 엄중하게 대처하는 중국 외교부의 태도는 가히 강화된 중국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중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미국이 늘 걸고 넘어지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역공을 펼 수 있는 계기로 삼으려는 분위기이다.

중국의 주요 언론들도 이번 사건을 '인권대국 미국의 무고한 외국인에 대한 반인륜적 폭행'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다음 수를 계산하는 중국의 외교적 포석이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비록 대국이지만 경제적 낙후로 인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묵묵히 생존과 발전을 도모해오던 중국의 외교전략이 새로운 역사환경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다.

'집 청소를 하고 손님을 맞이한다(打掃干淨屋子再請客人)'는 방어적, 수세적 외교전략이 이제 집 청소를 끝내고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려는 적극적인 외교전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중국외교가 피동성을 극복하고 전략적 안목을 갖고 국가전략과 맞물려 돌아가며 점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한반도의 통일 이후를 내다보며 철저한 국가전략에 의해 추진된 고구려사 왜곡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며, 최근 발생한 외교사안에 적극 대처하는 중국의 외교부의 목소리에도 다분히 힘이 들어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이 주변국에 대해 큰 소리를 치는 동시에 미국에게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중국이 1980∼1990년대 "패권을 쥐지 않고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며, 재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不稱覇, 不當頭, 韜光養晦)" 방어와 수세의 외교전략을 수정하며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적인 공세외교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연소항미(聯蘇抗美), 연미항소(聯美抗蘇), 반미반소(反美反蘇)를 넘어서 철저한 국익을 위해 다원외교를 추구하는 중국의 외교전략이 변화의 지점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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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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