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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리스예요."
"아! 네, 아리스."

오랜만에 인도네시아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 순간 저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전화를 해 온 사람은 하리스(Haris)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네시아 마두라 출신으로 올해 초에 귀국했던 지인이었습니다.

하리스는 한국에 5년 가까이 체류했는데 귀국하기 전 몇 년 동안, 유명 연예인과 이름이 비슷한 관계로 이름 때문에 한국 사람들로부터 많은 놀림을 당했습니다. 하리스는 자신을 유명 트랜스젠더의 이름인 '하리수'로 부르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이름을 '하리스'에서 'H'를 빼고 '아리스'로 소개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이름 때문에 어려서 많은 놀림을 당해 봤기 때문에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가 귀국하기 전까지 '아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리스'라는 이름이 입에 배어 있었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후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하리스가 자신을 '하리스'라고 짐짓 미리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아리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하리스의 경우처럼 이름이 부르기 쉽고, 유명 연예인과 비슷해서 놀림을 당하는 경우 이외에도, 한국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름이 한국 사람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부르기 쉽게 변형되어 불리게 됩니다. 가령, 우리가 쉽게 들어 왔던 '후세인, 알리, 무하마드' 등은 이슬람권 사람들에게 손쉽게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이름이 너무 길거나 어려워서 짧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무하마드 위스또 수랏노'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네시아인은 회사에서 '또또'라고 불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편 본인의 이름과 전혀 상관 없이 업체 대표가 붙여준 이름이 굳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산재 처리를 도와주다 알게 된 태국인 '모아러이'는 회사에서 '알린'이라는 이름으로 3년 동안 일했습니다. 알린은 회사 대표가 붙여준 이름인데, 모아러이의 앞서 일했던 사람의 이름도 '알린'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회사에 일하는 여성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늘 '알린'이라는 이름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산재 처리를 하는 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남자들 역시 일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바뀌어도 같은 자리라면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회사에서는 모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이름이 사장 편의에 의해 변경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도 외국에 있을 때 외국식 이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사람들은 제가 그 나라에 있을 때 썼던 이름으로 저를 부릅니다.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제 이름은 그 지역에서 흔히 쓰는 이름인 '조코'였는데, '족자카르타의 한국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저를 놀리거나 외국인이라고 구분짓기 위한 이름이 아니라, 저를 그 나라 사람으로,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현지인들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조코라고 불릴 때, 외국인이 아닌 지역 주민으로 받아들여진 자신을 발견하곤 했었습니다.

이 땅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이 이제껏 들어왔던 이름과 다르게 불리며 살아갑니다. 이름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대로 불러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편의상 현지화된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봅니다. 분명한 건 그 이름이 사람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하리스'가 "이제 하리스라고 불러도 돼요"라고 밝게 답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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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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