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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목동에 있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습니다. 미등록이주노동자 국별 자진출국 현황에 대한 행정정보 공개 청구 자료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근 넉 달만에 간 것 같은데, 예전보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북적대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는 비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등노조' 소속 외국인이주노동자들과 대학생들 20여명이 시위를 하고 있었고, 강제출국을 앞둔 외국인 20여명이 외국인보호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수술복 같은 초록색 수의복을 입고 그들은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으며, 두 사람이 한 조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송차에 올라타던 사람들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는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쉼터에서 생활하던 러시아인 페트로(베드로)였습니다. 페트로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에서 별을 둘이나 달았던 장군 출신이라고 합니다. 몸집이 크고 콧수염이 멋진 그는 성격이 좋아 쉼터에서 생활할 때 얼굴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잠시 멈췄지만 호송을 책임진 듯한 사람이 뒤에서 미는 바람에 호송버스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는 그 호송책임자에게 신분을 밝히고, 아는 사람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잠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호송 중이라 안 됩니다"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출입국 사무소에 같이 갔던 한미교육재단의 미국인 캐롤 맥 역시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캐롤도 외국인이주노동자 관련 논문을 쓰면서 페트로를 자주 만났던 터라, 안타까워 했습니다.

수갑을 찬 페트로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내리던 빗줄기 만큼이나 마음속에서는 타닥거리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15일 발표된 불법체류 강력단속을 알리는 정부의 담화문에 대해 제 의견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는 앵무새처럼 "정부의 발표는 그동안 합리적인 외국인력 정책 수립을 촉구하며, 대안을 제시해 왔던 관련 시민사회단체의 의견과 현실을 무시한 안일한 발상이다. 또한 정부의 이번 발표는 그동안 ‘불법체류자 강력 단속’을 천명할 때마다 해 왔던 주장들을 반복하고 있음으로 인해 그 실효성에 의문을 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법무부와 노동부장관 공동명의의 담화문을 찬찬히 뜯어보았습니다.

담화문의 논조는 "정부가 불법체류자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온정주의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정부는 그간 단속 과정 중에 '그물총 사용', '외국인이주노동자지원단체 표적 단속' 등으로 숱한 물의를 일으켜 왔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강력한 단속 의지를 표명한 법무부, 경찰 합동 단속 과정에서 그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온정적으로 접근해서 문제가 됐다'고 말하는 정부관계자들의 인권 의식이 의심스러웠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은 제가 페트로와 같은 사람들을 몇 번 더 만나는 상황을 만들지 모릅니다.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은 마당에, 강제 출국하는 페트로의 모습을 본 저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캐롤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사는 게 이런 거지요."

뜻대로 되는 게 없고, 아쉬운 게 많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만이라도 감사한 게 아니냐는 그의 체념 어렸던 말투가 가슴을 치게 했습니다. 캐롤은 지난 겨울 정부가 단속을 통한 강제추방정책을 막 시작할 때 지하철에 뛰어들었던 스리랑카인 다라카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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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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