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6회 오클랜드 국제영화제 공식 로고 및 포스터
ⓒ 오클랜드 국제영화제
뉴질랜드의 최대 영화축제인 2004년 뉴질랜드 국제영화제가 지난 9일 오클랜드에서 개막됨으로써 5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비경쟁영화제로 매년 7월에 막을 올리는 뉴질랜드 국제영화제는 한 도시에서만 열리지 않고 뉴질랜드 전역을 순회하는 영화제라는 점이 특징이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3개 도시가 더 늘어나서 모두 15개 도시를 순회한다. 오클랜드를 시작으로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넬슨, 기스본 등 작은 지방 도시들을 거쳐 오클랜드 북쪽에 있는 소도시인 팡가레이에서 11월 28일에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이처럼 뉴질랜드 국제영화제는 순회 영화제이기 때문에 각 도시별로 이름을 붙여 영화제가 개최된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또 가장 먼저 개막하는 영화제가 바로 오클랜드 국제영화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기에 오클랜드 국제영화제는 뉴질랜드 국제영화제와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오클랜드 국제영화제는 1970년에 오클랜드 축제의 일부로 처음 시작되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 규모가 커져서 이제는 독립된 행사로 매년 10만여 명에 가까운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뉴질랜드 최대 영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올해로 36회째를 맞는 이번 오클랜드 국제영화제에서는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뉴질랜드의 장편영화 <나의 아버지의 서재에서(In my Father's Den)>를 비롯해서, 전 세계 38개국에서 출품된 장편영화,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식의 영화 130여 편이 선보인다.

▲ 뉴질랜드 영화 <나의 아버지의 서재에서>의 한 장면
ⓒ 오클랜드 국제영화제

주목받는 다큐멘터리 영화들

그 중에서 올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는 다큐멘터리 영화. 지난 1999년 이후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올해에는 30여 편을 넘어서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다.

다큐멘터리의 전면 부상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작품은 바로 마이클 무어의 논쟁적 다큐멘터리 <화씨 9/11>. 지난 달 25일 미국 개봉 첫 주에 다큐멘터리로서는 드물게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화씨 9/11>의 수은주가 태평양을 건너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급속도로 달아오르고 있다.

<화씨 9/11>은 오는 7월 29일로 예정된 전국적인 개봉에 앞서 이번 뉴질랜드 국제영화제를 통하여 7월 20일, 오클랜드와 웰링턴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그러나 이미 입장권은 6월 28일자로 모두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와 함께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점점 늘어가는 비만 인구 및 소아 비만 등의 문제가 뉴질랜드에서도 점점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 ‘맥도널드의 최악의 악몽’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3000켤레의 구두’로 인구에 회자되었던,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의 영부인 이멜다 여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멜다>도 화제작 중의 하나. 특히 이 작품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7월 6일에 일반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이멜다의 요청에 의해서 상영금지를 당하는 바람에 더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내게 극단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안겨주는 부당한 처사”라는 것이 법원에 상영금지를 청구한 이멜다의 변이었다.

필리핀 출신의 미국 감독인 라모나 디아즈(Ramona S Diaz)는 <이멜다>로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으며, 초청인사로 이번 오클랜드 국제영화제에 참가하여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관객들과 직접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다시 부활하고 있는 무술 영화들

다큐멘터리와 함께 무술 영화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이번 영화제의 특징 중 하나.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시리즈로 대표되는 최근의 무술 영화에 모아지는 영화 팬들의 높은 관심과 열기가 이번 오클랜드 국제영화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 장예모 감독의 정통 무협 영화 <영웅>의 한 장면
ⓒ 오클랜드 국제영화제
그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은 중국 장예모 감독의 정통 무협 영화 <영웅>과 태국의 프라챠 핑케우 감독의 현대적 액션 영화 <옹박(Ong-Bak)>. 주최 측은 중국에서 날아 온 스펙터클 무협 영화 <영웅>을 개막일에 상영하고, 태국에서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둔 현란한 액션 영화 <옹박>은 폐막일의 밤을 장식하는 영화로 배치했다.

한국에서도 오는 7월 15일에 개막되는 부천국제영화제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쇼 브라더스 회고전’이 예정되어 있고, 프랑스의 파리에서도 한때 ‘쇼 브라더스’에서 감독으로 일한 바 있는 정창화 감독의 회고전이 최근에 열리는 등 무술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전 세계적인 경향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의 무술 영화들은 대부분 60~70년대 홍콩의 영화제작사 ‘쇼 브라더스’가 제작한 무협 영화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창조’가 아니라 ‘재발견’ 또는 ‘부활’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더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번 오클랜드 국제영화제에서도 ‘과거로부터(Out of the Past)’라는 섹션에 전성기 홍콩 무협 영화들을 첨가함으로써 일백년 영화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무술 영화의 ‘재발견’과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1960~70년대에 홍콩의 ‘쇼 브라더스’가 배출한 걸출한 감독인 장철의 작품 <복수>(1970), <자마>(1973)와 유가량 감독의 <소림 36방>(1978) 등 전성기 무협 영화 5편이 이번 영화제에서 재발견을 통하여 부활을 꿈꾸고 있는 영화들이다.

약진하고 있는 한국 영화들

특히 이곳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 어느 해보다 많은 5편의 한국 영화들을 이번 영화제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반갑다. 한국 영화들이 뉴질랜드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한 약진이 아닐 수 없다.

▲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한 장면
ⓒ 오클랜드 국제영화제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 이전에 이미 이번 오클랜드 국제영화제에 선보일 최고의 작품으로 <올드 보이>를 주목했던 영화제 프로그래머 안소니 팀슨(Anthony Timpson)은 영화제 프로그램 책자에 <올드 보이>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은 남겼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함께 거머쥐지 못하고 단지 그랑프리를 수상하는데 그쳤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 심사위원장이 타란티노 감독이었는데, 이 작품보다 더 그의 입맛에 맞는 현대적인 영화가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걸 보고 싶군요.”

그런가 하면 지난 2월에 베를린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영화제 주최 측의 추천작으로 선정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선보이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 다섯 편을 엄선하여 하나의 티켓으로 묶어서 판매하는 4가지 종류의 패키지 투어 티켓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두 번씩이나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미 이 영화제를 통하여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등 대표작이 소개되어 이곳 영화 관련자들과 영화 팬들에게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홍상수 감독은 올해에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현역 감독 중에서 가장 위트가 있고 형식에 있어서 가장 꼼꼼한 감독”이라는 것이 올해에도 그의 작품을 빼놓지 않은 주최 측의 평가다.

한국 영화 상영 일정

1. <올드 보이>
-7월 9일(금) 오후 10:15, 씨빅 씨어터
-7월 11일(일) 오후 8:30, 씨빅 씨어터

2. <실미도>
-7월 15일(목) 오후 3:30, 스카이 시티 씨어터
-7월 18일(일) 오후 9:15, 씨빅 씨어터

3.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
-7월 19일(월) 오후 1:30, 씨빅 씨어터
-7월 24일(토) 오후 6:15, 씨빅 씨어터

4. <살인의 추억>
-7월 19일(월) 오후 8:30, 아카데미 씨네마
-7월 21일(수) 오후 8:30, 빌리지 호이츠 씨네마

5.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7월 21일(수) 오후 1:00, 아카데미 씨네마
-7월 23일(금) 오후 8:15, 아카데미 씨네마 / 정철용
이외에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영화화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가장 민감한 부분으로 그동안 금기시 되어 온 북파 공작원의 진실을 다룬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도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인다.

한국에서는 이 두 영화가 각각 지난해와 올해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지만 과연 이곳에서는 관객들을 얼마나 끌어 모을 지 두고 볼 일이다.

이처럼 올해 오클랜드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는 5편의 한국 영화가 작품성이나 흥행성 면에서 모두 최고의 수준을 갖춘 작품들이긴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곳 현지 관객들에게까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이름만으로도 그 작품성을 보증할 수 있는 세계의 내로라 하는 감독들의 작품이 여러 편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월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빠뜨리스 르꽁뜨의 <친밀한 이방인>,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난 무섭지 않아>,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차이 밍량의 <안녕, 용문객잔>, 리차드 링클레어의 <비포 선셋>, 피터 그리너웨이의 <털시 루퍼의 가방>, 짐 자무쉬의 <커피와 시가렛> 등 쟁쟁한 감독들의 최신 화제작들이 이번 영화제에서 선을 보인다.
2004-07-11 12:1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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