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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김선일씨 피살사건으로 온 국민이 침통해 있던 금요일 오전 부천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제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그 중 4개월 동안 산재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압둘씨는 오른손 중지와 검지 손가락 첫 마디가 잘려 있었습니다. 압둘씨는 지난 3월 부천에 있는 이슬람사원에서 우리나라의 외국인력정책에 대해 강의하던 저를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압둘씨와 그 친구들이 저를 찾아 온 이유는 출입국직원과 그 친구를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입국직원을 사칭하는 왕모씨와 그 친구인 김모씨는 압둘씨가 병원에 있을 때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인데, 산재처리가 된 압둘씨의 통장에서 돈을 임의로 인출하여 쓰고, 술만 먹으면 나타나 행패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김모씨는 압둘씨가 불법체류자로 통장을 만드는 것을 꺼리자, 통장을 만들어 주면서 현금카드를 만든 다음, 그것을 자신이 갖고 있으면서 중간에서 돈을 가로챘고, 압둘씨는 그런 일을 언제까지 당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같은 병원에서 입원했던 이주노동자 산재환자를 신분적 약점을 이용해 등쳐먹고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가난한 이주노동자를, 그것도 같은 처지로 병상에 누워 있던 사람을 등쳐먹을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마침 김선일씨 피살 소식 때문에 이슬람 사원에 대한 대테러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그 지역 관할 경찰서 외사과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더니, 담당 형사는 적극 도와주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인도네시아에 20년 가까이 살았던 인연으로 평소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자주 도와주시는 방 선생님이라는 분이 나서서 통역해 주시겠다고 해서 설명을 하고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인도네시아인 압둘씨로부터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김선일씨 피살로 혹시 있을지 모를 이슬람사원에 대한 경계를 하던 관할 손 경사라는 사람이 압둘씨의 돈을 빼앗은 사람을 잡아 돈을 돌려 받을 수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압둘씨는 산재기간 중 받았던 휴업급여와 장해보상비로 640만원 정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압둘씨의 돈을 빼앗던 사람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다 망한 데다가 사고를 당해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는 처지라, 술을 먹고 못된 짓을 했다고 자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그를 경찰은 봐줘선 안 된다고 하고, 압둘씨는 돈을 찾았으니 굳이 검찰로 넘기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압둘씨를 옆에서 도와 줬던 방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저 역시 불법체류외국인이라는 신분적 약점을 이용해 등쳐먹으려 했던 점은 괘씸하지만,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굳이 처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 동생이 형의 형편을 전하며 거듭 용서를 구해, 압둘씨와 방 선생님은 검찰에 사실관계를 말하고 가해자를 풀어달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되었는데, 그 사람을 잡아넣었던 경찰이 가만있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놈은 본때를 보여야 된다'면서 진술서를 다시 쓰는 게 어떠냐고 종용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용서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죄가 밉지 사람이 밉나요. 지난 감정은 덮어두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 없이 마무리 짓고 귀국하기를 작정한 압둘씨의 앞날이 평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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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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