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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인도네시아에서 온 메일을 두 통 받았다. 한 통은 한국에 와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출신 한 노동자가 급작사했다는 소식이었고, 다른 한 통은 "오늘이 선거일이니, 귀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하라"는 투의 선거 홍보용 메일이었다. 인도네시아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그런 메일을 보낸 사람은 현 인도네시아 대통령인 메가와타가 속해 있는 PDI(민주투쟁당)의 당원이었던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직접 선거가 지난 5일 치러졌다. 내가 2년 동안의 인도네시아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앞두고 있던 97년, 인도네시아는 당시 대통령이던 수하르토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며 전국적인 반정권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결국 98년 수하르토는 민중 봉기에 의해 축출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의 30여년간의 군사 독재는 막을 내렸다.

내가 처음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만 해도 인도네시아인들 중 누구도 대놓고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날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다들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이번 선거에서 두 명의 유력한 후보가 나온 족자카르타 지역 역시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러던 나라에서 대통령 직접 선거를 치르고, 본격적인 민주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첫 발을 내디뎠다는 소식은 외국인인 나에게도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선거 전인 지난 주말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고국에서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고국을 떠난 지 짧게는 일이년, 길게는 사오년씩 된 그들이었지만, 다들 선거 소식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마침 주말이 인도네시아에서는 '평온한 주간(Minggu Tenang)'이라는 뜻의 선거 유세 금지 기간이었다. 'Minggu Tenang'은 선거 막판의 과열 혼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데, 이 기간 동안 모든 유세는 중단되고 시내에 설치되었던 각종 깃발, 홍보물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선거 얘기를 열 받으며 하면 안 된다"고 서로 농담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지지 후보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평들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 후보인 유도요노(55)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에 질세라 족자카르타에서 온 몇몇이 같은 지역 출신인 위란토(57)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들의 주요 논지는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것이었다. 수하르토 몰락 후 집권한 현 정권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그나마 수하르토 시절은 치안이나마 안전했다는 것이 그들의 요지였다. 한편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다른 유력 후보들은 모두 군 출신이라 인도네시아를 수하르토 시절로 되돌릴 것이고, 인도네시아 건국 이념인 다양성 속의 조화를 말하는 '빤짜실라'를 가장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메가와티뿐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나는 그들의 토론을 보면서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도 저런 다양한 의견들을 대놓고 말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최소한 내가 경험했던 인도네시아는 정치적 발언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경험 때문인지 모르지만, 저들이 저토록 정치인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건 고향을 떠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이 나의 편견이기를 바란다. 외국에 나와 있기 때문인지, 6년간의 민주화 과정을 거쳐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전처럼 정치 지도자에 대한 함구는 찾을 수 없고, 지역에 따라, 혹은 종교적 성향과 학력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를 분명하게 밝히는 걸 보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았던 그들이 본국으로 귀국했을 때, 아시아에서 조금 일찍 민주화를 경험한 나라인 한국에서의 경험이 그들의 나라를 민주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들의 열띤 토론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는 결선투표까지 갈 것 같다는 선거 결과 보도가 들려오고 있다. 오는 주말 만나게 될 인도네시아인들이 선거 결과에 대해 어떠한 반응들을 내 놓을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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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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