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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살면서 가장 긴장해야 할 순간은 바로 거스름돈을 받을 때이다. 택시에서 내릴 때 재빨리 거스름돈의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슈퍼에서 물건값을 치를 때도 뒷사람에게 지장이 없도록 신속히 거스름돈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사람이 많이 붐비는 재래시장에 갔을 때는 단단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진짜 돈 쓰고 가짜 돈 받아 오는 바보가 된다. 거스름돈을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은행에서 잔돈을 바꿔 다니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 곳에서 더 황당한 일은 물건을 사고 비용을 치를 때이다. 50위안이나 100위안 같은 큰돈을 주면, 상대방 체면은 아랑곳없이 돈을 이리 뜯어보고 저리 살핀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잡아 당기거나 심지어는 돈을 벽에 문질러 지폐성분을 확인하고는 거스름돈을 내어준다.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나 해서 처음에는 불쾌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졌다. 이것도 일종의 상하이식 신용거래 방식인데다가, 자존심 좀 상한다고 돈 손해보는 건 아니니까.

바자회에서 생긴 일

▲ 상하이 한국학교 신축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작은 물건을 파는 가게일수록 가짜 돈을 많이 받았다.
ⓒ 오기현
그런데 몇 일전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고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게 한 사건이 터졌다. 일요일인 지난 10월 26일 '상하이 한국학교 신축'을 위한 바자회에 가짜돈이 무더기로 들어와 주최측과 한국상인들 양쪽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한국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이날 바자회에는 한국 교민 수천 명이 참석했다. 요즘 한국교민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데다가, 한국학교 신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여서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 가족이 도착했을 때는 학교 주변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그 동안 어렵게 행사를 준비해 온 주최측에서는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돼 상당히 만족스러워 했다. 교민들의 숙원사업이던 한국학교 신축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졌던 상황이다.

그런데 참가자들로 가장 붐볐던 정오 무렵, 장내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가짜 돈이 돌고 있습니다. 돈을 받으실 때 꼭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만약 가짜 돈이 있으면 행사본부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어리숙한 한국상인들의 손에는 가짜지폐가 수북히 건네져 있었다. 행사주최측에 후원금으로 입금된 돈 가운데 8000위안(120만 원)이 가짜였고, 협찬한 상인들이 물건값으로 받은 돈 가운데도 가짜 돈이 수두룩했다.

분통이 터지는 일은 이런 가짜 돈이 싼 물건을 파는 코너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가짜지폐 100위안을 지불하고 진짜 거스름돈을 많이 챙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위안(150원)짜리를 팔았던 액세서리 업체가 1200위안, 10위안(1500원)짜리 미만의 실내화를 팔았던 신발가게도 1200위안을 가짜 돈으로 받았다.

더욱 화가 나는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행사진행자들이 가짜 돈을 지불하는 걸인행색의 중국여인 두 사람을 현장에서 잡았다. 그들의 손에는 돌돌 말아 담배값에 감추어 둔 가짜지폐 뭉치도 들어있었다. 그리고 즉시 그들을 행사장 관리를 위해 나와 있던 공안(경찰)에게 넘겼다.

그런데 사건을 접수한 공안의 태도가 예상외로 미온적이었다. 평소 위폐범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히 다루던 공안들이, 범인을 넘겨받고 오히려 부담스러워 했다. 뭉치돈이 발견되고 피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분명히 조직적인 범죄였는데도, 공안들이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다루려고 했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이나 사건내용에 대해 통보를 해주지 않고 있다.

우리 교민들은 가해자가 중국인이고 피해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외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에 중국인이 끼어 있어서 공안당국이 자존심 상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교민회에서 사건내용을 확인하거나 항의하기도 쉽지 않다. 공안을 자극할 경우 내년에 행사를 못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평소 당국의 태도를 볼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학교 운영위원회에서는 그래도 이번 행사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이 날의 모금액이야 교민들에게 할당된 목표액 210만 달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4천 만원 가량이었지만, 참가자들이 예년에 비해 월등히 늘었고 또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범인을 잡아냈기 때문이다. 경제적 손실은 좀 보았지만 한국교민의 응집력을 확인하고 학교신축의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는 것이다.

가짜 돈의 범람을 급속한 경제성장과정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산물로 보거나, EC의 몇 배가 되는 거대한 인구를 지닌 중국경제의 특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래의 안정성을 해치고 상하이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가짜 돈을 막지 못하면 2010년 상하이에서 열리는 세계엑스포 때는 국제적 망신만 당할 것이라고 단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더 아쉬운 것은 외국인에 대한 현지인들의 왜곡된 자존심이다. 뿌리 깊은 중화사상이 아직도 몸 속에 배어 있어 사건의 합리적인 해결을 가로 막고 있다. 너네 나라에 가서나 잘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국제도시 상하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쉬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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