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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려지는 것들이 있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언제쯤인가 어느 산골 캠프에서 하루 종일 진흙탕을 뒹굴다가 목소리도 새어나오지 못할 만큼 탈진할 때쯤 ‘어버이 은혜’ 같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 찔끔거리던 풍경. 그 나름대로 비장하고 감동적이었건만 왠지 다시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껄렁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나마 아기자기했던 학창시절 극기훈련의 추억을 뒤덮어버린 경험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유격훈련의 기억이다.

훈련입소 5주째가 되던 날 유격훈련이 시작되었다. 유격훈련장은 막사에서 백여리 떨어진 고원에 있었고, 당장 그 날부터 시작될 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부터 산과 물 몇 개를 넘어 걸어가자면 열댓 시간은 걸릴 그 길로 나서야 했다.

그 날의 행군은 최악이었다. 출발 무렵부터 뿌리기 시작한 비는 곧장 장대비로 바뀌어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군장(배낭)을 찍어눌러댔고, 그 무게보다도 감당하기 어려운 추위가 잠시 걸음을 쉬는 휴식시간을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중간 어디쯤 냇가에서 선 채로 들고 먹던 반합 속 돼지고기 국은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를 않았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긴장이 지나쳤을까. 아니면 그때까지 한달 간의 훈련도 이미 내게는 벅찬 것이었을까. 엎친데 덮친다고, 나는 그 날 아침부터 코피를 쏟았다. 그러나 가만히 고개 젖히고 지혈을 할 틈을 갖지 못한 채, 나는 콧등을 지나는 혈관을 짓이겨누르는 동시에 연신 콧구멍에 휴지조각만 우겨넣으며 걸었고, 어느 고갯길에서 군장을 고쳐매던 거친 호흡 속에 핏물 진득한 휴지뭉치가 콧속으로 밀려들어가고부터는 코로도 입으로도 호흡이 시원치 않은 지경까지 갔었다.

어쨌건 그렇게 이미 초죽음들이 되고서야 마무리된 열 서너 시간의 행군은 유격훈련의 끝도, 하다 못해 시작도 아니었다. 시작을 위한 이동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빗물을 씻어낸 그 밤부터 도무지 아무도 알지 못할, 심지어 도망을 치려 해도 그 끔찍한 백리길을 되밟아 나가야만 민가가 있을 고립무원의 고원에서 일주일간의 유격훈련이 진행되었다.

군대라는 곳이 어디나 그렇지만, 특히 유격장은 낮에 덥고 밤에 춥다. 그 낮에는 따가운 햇살과 싸우며 달리고 기는 훈련이 이루어졌고, 그 밤에는 추위와 함께 모기 따위와 싸우며 숨고 버티는 훈련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기억만 따라가도 숨이 가쁘고 맥박이 빨라지는, 매달리고 기고 뛰어내리는 갖가지 과정들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선착순’이었다. 난데없이 “전방에 보이는 모형탑 좌에서 우로 돌아 선착순 10명!”하는 구령이 떨어지면 오로지 그 10명 안에 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야 한다. 11등부터 백 이십 몇 등까지는 다시 열 명, 열 명씩을 가리며 열댓 번이라도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그렇게 어깨 부대끼고 누구 하나 넘어지거나 말거나 독한 눈 뜨고 달리다보면, 눈앞에 일어나는 흙먼지만큼이나 뽀얀 머릿속으로 내가 속해있던, 그리고 한때나마 친구고 식구라고 생각했던 동기들이 또 얼마나 살벌한 경쟁자들이었는지 똑똑히 배우게 된다.

어디서 무슨 일정을 하든 군대에서는 선착순을 많이 한다. 곧잘 부하나 교육생들이 긴장이 풀어지거나 나름의 연대감으로 뭉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곤 하는 지휘자의 입장에서는 말 한마디로 전체를 조각내서 한 손으로 휘어잡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격장에서는 그것이 이따금의 자극제가 아닌 일상이다. 저마다의 인내심을 넘어서는 동작을 강요해야 하는 교육과정마다 조교들은 준비운동시키듯 선착순을 외쳐댔다. 그것은 싸늘한 경쟁심을 이용해 거대한 부대를 잘게 자르고, 다시 굴복시키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렇게 각자에 대한 좌절감과 서로에 대한 배신감을 쌓아가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그 날도 이른 아침부터 반복된 교육과 유격체조, 그리고 선착순이 몇 차례 돌고 돌아 다들 늘어지던 오후였다. 교육장까지 들어오는 걸음걸이가 불량해보였던지, 우리 조를 맞이한 조교는 제대로 자리를 잡을 틈도 주지 않고 악을 썼다.

“ … 선착순 한 명!”

가끔 살다보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내 걸음도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이십 여 명이 함께 달리는 가운데서 일등이 되기란 불가능한 처지였다. 그런데 선착순이라는 것이 최소한 너댓 번 이상은 반복되는 것이다보니 초장에 힘을 빼고도 제시된 커트라인에 들지 못하면 다시는 재기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흔히 첫 번째 바퀴는 꼴찌만 면할 만큼 뛰면서 체력을 비축하는 동시에 강적들을 걸러낸 다음 두 번째나 세 번째 기회를 엿보곤 했었다.

정신이 온전히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다보니 아마 그런 일이 생겼나보다. 때려죽여도 더 이상은 움직이지 못할 것 같던 내 몸은 나는 듯이 튕겨나가 달리기 시작했고, 이미 두어 호흡 내달았을 때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을 뿐 아니라, 등 뒤로도 동기들은 한참 뒤처져있었다. 이젠 순위조절을 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번 기회에 죽자 사자 달려서 1등을 하는 것만이 내가 살 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신나게 한참을 달리고서야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디를 돌아서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 그러니까 나는 도대체 목적지가 어디인지 듣지도 못한 채 달렸던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걸음을 조금씩 늦추기 시작했고, 2등으로 달려오던 동기와 간신히 호흡이 통할만큼의 간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야, 그런데… 헉, 헉, 어디를 … 돌아서 … 선착순이냐?”

죽을 힘을 다 해 따라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앞선 경쟁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기막힌 소리를 들으며 그 친구도 꽤나 당황했을 것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 순간. 나는 얼핏 고개 뒤로 그 친구의 황당스러워하는 얼굴빛을 보았다. 그러나 그 입에서 흘러나온 답은 표정만큼 흐릿했지만, 결연했다.

“글…쎄…다…”

사실 그렇게 뭉개고 흐리는 말꼬리를 다 챙겨듣지는 못했다. ‘글쎄다’였는지, 혹은 다른 무슨 애매한 신음소리였는지. 어쨌든 그 친구 입에서 정확히 가르쳐줄 수 없다는 의지가 명백한 소리가 흘러나오던 그 순간 우리 둘은 어느 고목나무를 지나치는 듯 싶었고, 다음 걸음 그 친구는 그 고목을 돌아서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제 딴에 품고 있던,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는 독한 집념만큼 궤도 밖으로 대여섯 걸음이나 끌려나가서야 멈춰설 수 있었고, 그제야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내 앞으로 서너 명이나 앞지르기 시작한 뒤였다.

결국 나는 그 첫 번째 바퀴에서 1등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마저 너댓 번의 선착순에 끌려다니느라 실신 직전까지 밀려가고야 말았다. 물론, 애타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던 그 친구는 첫 바퀴에 1등을 하고 그나마 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사실 따져보고 말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구령도 제대로 듣지 않고 냅다 달린 것부터가 한심하거니와, 두 명도 아니고 단 한 명을 자르는 선착순에서 2등 경쟁자에게 목적지를 물은 내가 참 엉뚱하다.

그래도 왠지 가슴 속에 울컥거리는 노기는 무엇이고, 끝내 그 하루 내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한 그 동기의 민망함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극기(克己)란, 역시 스스로를 이겨낸다는 뜻이다. 제멋대로 두면 나태해지고, 비열해지고, 음흉해지려는 자신을 스스로 제어해서 옳은 길에 놓으려는 노력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던 어른들 말씀 속에서, 군생활이라는 것 전체의 교훈이 바로 극기이며 그 과정에서 남도 생각하고 조직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 어느 극기훈련장에서, 또 군인시절 유격훈련장에서 단련된 ‘극기’란 자신보다는 남을 이기는 능력과 의지에 가까웠다. 그 훈련과정은 인정이라든가 배려라든가, 또는 다른 여러 가지들 보다 ‘이긴다’는 것 자체의 가치가 얼마나 높고 중요한 것인가를 뼛속으로부터 새기고 배우는 과정이었다.

사실 한동안 귓가에 남아 원망스러웠던, ‘글쎄다…’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요즘에는 문득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살벌한 생존경쟁의 와중에 차라리 한 걸음 뒤에 서서도 아니고, 나는 나대로 살겠다고 한 발 앞에서 기웃거리며 승리의 비법을 물어 미처 삭지 못한 무른 마음을 들쑤시고 새삼 자책에 빠지게 한 못할 짓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숭고한’ 극기의 과정을 나름대로 감당한 역전의 용사들 체면에 기껏 여성부 홈페이지에나 몰려가서 ‘호주제 폐지 주장하려거든 너희들도 군대에 다녀오라’고 호기나 부리는 몇몇 망종들의 그 쇳소리나는 뻔뻔함이야말로 그 극기훈련의 와중에서 길러진 독한 경쟁심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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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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