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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나 식성이나 경제수준에 상관없이,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의 예외 없이 좋아하는 음식을 꼽아본다면 아마 김밥이 맨 윗줄에 오를 것이다. 혹시 당근이 들어간 김밥은 싫다거나, 시금치만은 꼭 빼고 먹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막상 입에 넣고 나서 느끼는 미감이야 둘째 치더라도 그 빨갛고 파랗고 또 희고 검게 들뜨는 색감, 그리고 김밥이라는 이름이 무의식으로부터 끌어내는 흥겨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년에 김밥을 먹는 날은 딱 두 번, 봄 소풍날과 가을 운동회 날이었다. 한 가지는 야외에서 구경도 하고 오락도 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운동장에서 달리고 소리소리 질러대는 것이기 때문에 별 공통점이 없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서 종종 그 두 가지가 얽혀드는 것은 순전히 김밥 때문이다. 그 두 날만큼은 별로 재미있는 일도 많지 않았던 학교 생활 중에 드물게 자유롭고 흥겹고 들뜨는 날이었고, 그것은 김밥의 화사한 색감, 그리고 사이다나 콜라 같은 청량음료와도 잘 어우러지는 김밥의 경쾌한 미감으로 각인되어왔다.

그것이 참 신기하다. 보통 밥이란 것이 단 것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다. 또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다기보다, 원체 밋밋한 맛으로 먹는 것이다보니 단 것에 밀리는 음식이다. 그래서 밥시간 다 되어 청량음료를 찾으면 어머니들은 밥맛 떨어진다며 손사래를 치곤 했었다.

그런데 김밥만큼은 청량음료와 붙어있어야만 그 맛과 분위기가 완성된다. 단 맛 뿐 아니라 입 속에서 톡톡 쏘는 그 탄산가스의 경박한 감촉까지. 한 손에는 청량음료 병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무젓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들고 있는 모습. 내 사진첩 속에서 가장 흥겨운 장면은 바로 그것이다.

소풍 전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비가 오면 소풍이 취소될 것이고, 김밥과 음료수 병이 들어있는 울긋불긋한 등산배낭 대신 볼펜자루에 끼운 몽당연필과 낙서 가득한 책이 들어있는 우중충한 책가방을 들고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어릴 적 얘기지, 대개 고등학생쯤 되고 나면 좀 무뎌지기도 하고, 소풍 가느니 차라리 진도 조금 더 나가자는 놈마저 생겨났었지만 나는 그제서야 오히려 더 긴장되고 잠을 설쳤었다.

경기도 변두리에 살면서, 부모님은 학교만이라도 서울로 보내야 대학에 갈 수 있겠다고 위장전입까지 시켜가며 서울통학을 시키셨고, 나는 걷고 타는 시간을 합쳐 한 시간 반 걸려 통학을 해야 했었다. 따라서 혹 소풍가방을 멘 채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서 비를 만나기라도 하면 낭패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말끔하게 화창한 날이 되든지, 아니면 화끈하게 쏟아 붓는 날이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이 들곤 했었다.

그리고 꼭 한 번 그런 날이 있었다. 전날 저녁 뉴스 때부터 서울 일대 폭우가 예보되고 있었고, 다음 날 아침에도 굵지는 않았지만 분명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은 하루 이틀 정도는 내내 퍼부어줄 수 있다고 시위를 하는 듯이 기세등등한 검푸른 색이었다. 이렇게 비가 예상되는 날이면 학교에서는 ‘아침 일곱 시 기준으로 비가 오면 취소’라는 식으로 사전통보를 했었고, 그 기준과 모든 주변 상황에 따라 나와 어머니는 소풍 취소를 확신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완성해놓은 숙제노트를 꼼꼼히 챙기고, 말끔한 교복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우산으로 가리며 버스를 탔고, 일산의 하늘은 곧 무슨 일이라도 낼 듯이 으르렁거리며 나를 배웅했었다.

그런데 일이 좀 이상해질 수 있다고 느낀 것은 한 십오 분 쯤 달려 원당 근처를 지날 때부터였다. 차창 밖이 좀 환해진다 싶더니, 구파발을 지나 서울로 진입할 무렵엔 날이 지나치게 화사해지고 있었다. 보도블럭엔 빗방울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학교 앞이 가까워질 때, 거리엔 그 시간 쯤 꽤 보여야 할 우리학교 교복차림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버스를 내려 나는 황급히 공중전화로 달려갔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엄마, 혹시 거기도 비 안와?”
“응, 여기도 아직 흐리긴 한데 좀 개이는 것 같네.”
“어떡하지? 여기 서울은 지금 하늘이 파란데..”
“학교에 전화 해봤어?”
“전화는 안해봤는데, 길거리에 교복 입은 애들이 하나도 없어.”

고등학생씩이나 돼서도 내 목소리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아니, 꼭 울음이 섞였다는 것보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함과 긴박함에 질려버린 목소리가 꺽꺽대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럼 일단 학교 확인해보고, 혹시 소풍 간다고 그러면 그냥 가야지 뭐. 아니면 그 근처 사는 친구네 집에 가서 옷 좀 빌리든가.”
“그냥? 교복 입은 채로?”

대개 부모님에 대해 분노하는 경우는 이런 순간이다. 지금 목소리가 깔딱거릴 정도로 흥분하고 있는 아들에게, 남 이야기하듯 ‘그냥 교복 입고 가야지, 뭐’ 라니.

집으로 돌아가자면 다시 한 시간이 걸릴 것이었고, 옷을 갈아입고 김밥 챙기고 나오자면 거기서 다시 한 시간 반은 걸려야 했다. 더 이상 어머니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실 이제는 하얀 색보다 파란 색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는 하늘은 상황이 거의 확실해졌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제서야 학교로 전화를 해서 바보짓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근처에 살고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천연덕스럽게도 아직 자고 있었다는 그 녀석의 집으로 찾아갔다.

“어제 비 온다고 예보 나오지 않았냐?”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뉴스 보니까, 무슨 저기압이 대만 쪽으로 움직여서 오늘 오전부터는 갠다고 그러잖아. 그래서 또 잤지. 그런데 너는 왜 교복차림이야? 멍청하게”

그 친구에게 빌릴 수 있는 것은 빨간 색 점퍼 하나였다. 배낭도 한 개 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김밥을 나누어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교복 상의는 벗어서 둘둘 말아서 가방 속에 넣었고, 교복 바지와 와이셔츠는 그대로 입은 채 위에 빨간 점퍼 하나로 덮어버렸다.

그렇게 찜찜한 기분으로 나선 소풍길. 아이들은 저마다 패션쇼라도 하듯이 발랄한 옷으로 그동안 교복에 억눌려왔던 패션감각을 뽐내고 있었고, 원색의 겉옷으로 가려봤자 목으로 드러나는 푸르스름한 교복 와이셔츠의 옷깃과 진회색 교복바지 차림의 내 모습은 생각보다도 훨씬 도드라졌다.

“야, 김은식. 뭐야”
“어이구, 김은식. 공부하러 왔냐?”

차라리 내가 일이 등 다투는 모범생이나 되면, 그런대로 내 이미지라고나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도 못되는 것이 소풍지까지 교복을 입고 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꼴불견이거나, 웃음거리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카세트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고무공 던져서 깡통 쓰러트리기 게임에 돈을 쓰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 친구가 가져온 돗자리에 누워서 잠이나 자련다며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잠은 설쳤지만 도무지 잠들지 않는 민망함, 그리고 얼굴을 덮은 점퍼 옷깃으로 새어 들어오는 저 흥겨운 음악소리, 노랫소리, 웃음소리들.

점심시간이 되었고, 친구 서너 명과 도시락을 열었다. 물론 두세 개의 김밥과 한 개의 하얀 쌀밥. 친구들은 같이 김밥 좀 먹자고 했지만, 제 기분에 몰릴수록 자존심이란 유치한 모양으로 피어오르는 법이다. 나는 꾸역꾸역 고개도 들지 않고 내 맨밥만 퍼넘겨대고 있었으니.

이건 순전히 서울시민이 되지 못한 채 나를 서울 아이들 속으로 잠입시킨 부모님 탓이다. 내가 좀더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것도 통학시간이 잡아먹는 하루 세 시간 때문이고, 방과후나 주말마다 친구들과 더 어울려서 운동도 하고 콘서트장도 가면서 살지 못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또 이것도 그 때문이고, 저것도 그 때문이고. 빳빳하게 곤두서서 넘어가는 밥알과 맞서느라, 나도 목줄과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그 날 밥알을 씹으며 나는 이미 기억 속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초등학교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흥겹던 소풍날마저 하얀 쌀밥만 가득한 밥통과 김치병 하나를 들고 오거나, 혹은 아주 도시락을 들고 오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무슨 죄라도 지은 듯 그저 내리깔린 눈빛으로 뒷걸음질치듯 어디론가 숨어버리던 친구들. 그러나 한 번도 그 아이들 때문에 가슴아파하거나 머뭇거려보지도 못했던 나. 어찌 보면 가당치 않지만, 혼자 맨밥을 씹으며 나는 그 친구들을 떠올렸다.

각자 한 그릇씩 감싸 쥐고 먹는 그냥 밥과는 달리, 김밥이란 조각조각의 개체들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한 숟가락씩 떠 모아서 나누어야 하는 그냥 밥과는 달리, 김밥은 그대로 나누어 먹기 좋게 만들어져있다. 흔히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한 사람 더 먹인다고도 하지만, 김밥이란 숟가락마저 필요 없다. 입만 가져오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잔치라는 것을 음식 나누는 날로 생각했던 어른들이, 좋은 날은 나누어 먹기 좋으라고 소풍날마다 김밥을 싸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김밥마저 우리는 김밥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만 나누어먹은 것은 아닐까? 김밥을 싸온 친구와는 '네 김밥 맛은 어떤지 보자’, ‘내 김밥 맛은 어때’ 하며 즐겁게 나누는 동안이, 정작 김밥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에게는 그냥 밋밋한 밥시간보다도 훨씬 고통스럽게 배제되어야 하는 시간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우리는 ‘나눈다’는 이름으로 사실은 ‘바꾸기’만 거듭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람이 따뜻해서 창문을 열어놓고 보니 김밥 생각이 나고, 이런 좋은 날 혼자 눈 아픈 모니터나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무 거라도 좀 나눠줄 친구들 생각이 났나보다. 아카시아 필 때 쯤, 몇 놈 불러내서 소풍 한 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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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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