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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별스럽다는 얘기를 듣는다. 농담 섞어, 상대하기 겁나는 놈이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케케묵은, 게다가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옛날 일들을 추억이랍시고 풀어내는 걸 듣다보면 해도 너무 한다 싶을 만큼 자잘해서 그렇다고들 한다.

그래서 이 놈은 아주 똑똑한 놈이거나, 아주 쓸데없는 놈 이리라고도 한다. 물론 대개 두 가지 가설 중에서 후자 쪽에 방점이 찍혀온 것은, 하필 시험에 나올만한 교과서 속 내용들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사람 평균만큼도 기억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기억들에 관한 글을 써서 누군가가 읽어주고, 또 분에 넘게 책까지 냈다는 것은, 그래서 내게 참 뜻밖에 발견된 쓸모 있는 면모인 것이다.

'쓸데없다'는 말 앞에 '대학입학'이나 '취업', 혹은 '돈벌이'라는 전제가 흔히 숨어있기 마련이건만, 어쨌거나 쓸데없는 기억 하나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복잡한 나에게도 '소꿉친구'라는 정겨운 단어만큼은 또 생소하다.

소꿉친구라는 단어를 입 속에 떠올릴 때도 머릿속은 허전하게 비어있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벌써 세 차례나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떠올리자면 초등학교 입학 전의 내 삶에서 기억에 남은 친구가 하나 있긴 하다. 글쎄, 친구라고 불러야 할 지도 애매하긴 하지만, 유치원 대신 두어 달 다녔던 미술학원 입학 선물로 누군가 사주었던 조그만 수첩 속에 '내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적었던 글 속 이름이 그것이었다는 점에서 그저 나의 첫 친구라고 해두기로 한다. 정환이라는 친구였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도록 그 이름이 기억에 남은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사소하지만, 독한 상처의 기억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루는 선생님이 팔씨름을 해보자고 했다. 잠깐 지루한 기색이 돌아 마련한 오락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일단 교실 중간쯤에다 책상과 의자를 놓아 팔씨름장을 꾸며놓은 다음 팔씨름을 해본 사람이 있느냐고 묻기도 하고, 팔씨름의 규칙에 대해 설명하기도 한 다음에 교실 안을 둘러보던 선생님의 시선은 하필 나에게서 멈추었다.

"저기… 정환이하고, 은식이 나와볼까?"

또래들 앞에 나서서 떠들기도 하고 춤도 추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쯤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다. 정환이는 그 학원 아이들 중에서 제일 활달한 축에 드는 아이였고, 나는 반대였다. 선생님이 정환이와 나를 찍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스무 명은 넘었을 아이들 중에서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정환이었다면, 학원 안팎에서 그저 혼자만 다니는 나는 선생님 딴에야 뭔가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껏 마음 써서 찍은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리 사교적인 아이가 못되었다. 그래서 엄마 손에 이끌려 간신히 미술학원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그림이나 몇 장 그려대다가 끝나면 혼자서 쭈르르 나서 집으로 돌아오기를 끝까지 반복했었다. 다른 아이들은 원래 동네 친구들이었는지는 몰라도 삼삼오오 저희들끼리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도 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나는 미술학원 마당에 있는 놀이시설을 단 한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정환이는 달랐다. 미술학원은 그대로 그 녀석의 안마당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와"하는 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벌써 정환이라는 아이는 활개를 쳐가며 팔씨름장에 등장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리기 시간이건, 노는 시간이건 안팎으로 뛰어다니며 온갖 참견을 다 하고, 기회만 있으면 앞에 나와서 노래건 춤이건 해대던 아이. 분명 누구와 붙게 되든, 반 아이들 대부분은 정환이의 응원단이 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은 그 아이들 속에 내 편을 하나도 심어두고 있지 못하던 내가 그 상대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세력관계라는 것은 정보와 경험을 통해 인식되기 이전에, 그저 공기의 맑고 탁함처럼 피부로 느껴지는 것인지라 아무리 어린 나이였다고 해도 나는 웬지 팔씨름에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마냥 싫다고 버틴 것도 아니었다. 워낙에 벌어져버린 싸움판이라면 종종 약자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기도 한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지만 팔씨름이라는 게임에서 저 정환이라는 아이를 꺾어버리고 싶다는, 난생 처음 느끼는 강렬한 전투본능에 몸을 떨었다.

"자, 두 사람 인사. 그렇지. 그리고 손잡고, 일단 손에 힘을 다 빼. 그렇지. 그리고 선생님이 시-작, 하고 말하면 정환이는 이 쪽으로, 은식이는 이 쪽으로 힘을 써서 팔을 넘기는 거다. 그리고 팔꿈치는 책상에서 떼면 안되는 거야. 알았지?"
"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두 친구를 응원해주는 거다. 알았지?"
"네에에"

선생님이 정환이와 내가 움켜쥔 주먹 덩어리를 손으로 감싸고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정환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벌써 주먹에 힘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객석에서는 벌써 '정환이 이겨라'하는 응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건 일종의 원천적인 불공정 경기였다. 억울함, 서러움. 그 때는 그렇게 이름조차 붙일 줄 조차 몰랐던 조그만 가슴 속 꿈틀거림이 나의 손에도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꼭, 이기고 싶다….'

"시이-작"
"우와… 이겨라, 이겨라."

생각보다도 아이들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정환이는 자신만만한 손짓으로 단숨에 내 손을 절반이나 넘겨버렸다. 경기에 나선 것 자체가 얼떨떨했던 나는, 어쩌면 선생님의 시작 구령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어느 만큼 정신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나는 반격했다.
"으으으, 우우욱"
그 때 내 입 속에는 이가 몇 개나 있었을까? 그리고 힘을 주어 깨물면 어떤 이가 어떻게 맞물려들었을까? 새삼 혀를 놀려 그 때를 떠올려본다.

이를 악물면 턱이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이 나면서 얼굴 전체가 덜덜 떨려온다. 그리고 꼭 이겨야겠다고 용을 썼으니 눈알도 희번덕거리면서 이리저리 갈리는 잇틀은 뿌득뿌득 소리도 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녀석과 나의 주먹 모둠은 조금씩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정환이는 평소에 어디서 굴러먹던 촌뜨기인지도 모를 녀석의 의외의 저항에 부닥친 것이 당황스러웠는지, 조금씩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승부에 대해 새삼 진지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쥐방울만한 녀석들의 승부는 꽤 길어졌었다. 어차피 정확한 기록은 고사하고 기억도 갖다 댈 수 없을 만큼 오래 전, 그리고 어릴 적 사건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참을 용을 쓰면서, 무슨 경기가 이렇게 힘이드냐는 한탄이 내 속에서 줄줄이 이어졌던 기억으로 봐서 그렇다. 아마 선생님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길고 심각한 대결이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이지만 나는 선생님이 원망스럽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대결, 승리와 패배, 그리고 성취감과 열패감의 갈림길을 그렇게 어설프게 만들면 어쩌냐는 말이다. 그렇게 일방적인 응원을 비롯한 경기 안팎 분위기.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결국 엄청난 부정행위마저 제어하지 못한 부실한 경기로 결말지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정환이는 어느새 팔꿈치를 책상에서 조금씩 떼기 시작했다. 애초에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그 녀석 팔꿈치를 괴고 있던 내 손바닥은 그걸 분명히 느끼기 시작했다. 경기전에 분명히 선생님은 팔꿈치를 책상에서 떼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그리고 팔꿈치를 떼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하셨는데. 나는 선생님 얼굴을 올려다보기 시작했고, 정환이 팔꿈치가 책상에서 떨어져 올라가는 만큼 우리 둘의 주먹은 다시 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선생님은 왜 그랬을까? 경기를 빨리 끝내고 싶으셨을까? 정환이의 팔은 급기야 누가 보든지 알 수 있을 만큼 번쩍 들어올려졌고, 꽤 오랜시간 완강하게 버텨왔던 내 손등은 고집스럽게 책상에 박혀있던 내 팔꿈치를 구심점 삼아 스르르 내 쪽을 넘어와 박혀버렸다.

"우와아, 이겼다."
"정환이 승리이이…"
정환이와 선생님은 거의 동시에 정환이의 승리를 선언해버렸고, 아이들은 '정환이가 이겼다'는 소리를 복창해가며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팔꿈치가 떨어지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애초의 약속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한동안이나 손등을 책상에 묻어두고 있었다. 물론 한 마디도 항의나 질문은 하지 못했었다.

우리의 대결이 좀 길었거나, 과열된다 싶어서였는지. 달랑 우리의 한 경기를 마치고 곧 팔씨름장은 치워졌고, 다시 뭔가 그리기를 시작했지만 나는 한동안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그 날의 남은 시간도 그랬지만, 또 그 뒤 최소한 며칠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건 분명히 반칙이었는데.

이목구비가 그대로 웃는 모양으로 박혀있던 인상 좋은 선생님. 언젠가 소풍을 가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참 인상이 좋았던 양반이구나, 하고 되새기게 되는 선생님. 그러나 아직도 한구석에, '참 좋은 사람이었지' 하는 감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오로지 그 날의 오심에 맺힌 단단한 한 때문일 것이다.

잦은 이사 때문에 친구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 아직 미처 배우지 못하고 있던 시절. 누군가 그저 같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친구인 거라고 하기에 '내 친구 김정환'이라고 수첩 속에 적어 넣었던 인물. 사실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 하지만, 그 '친구'라는 단어를 통해 내가 처음 배웠던 것은 애정과 배려 이전에 경쟁과 씁쓸한 승패의 느낌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 김은식 기자는 "솔직해지기 위해서, 모른 체 눈감고 살기를 좋아하는 제 머리와 싸운 흔적을 글로 남기고 있으며, 그렇게 쓴 글은 개인홈페이지 '솔직해지기 위한 투쟁'(www.kes.pe.kr)에 모으고 있습니다. 

2002년 5월부터 11월까지 '맛있는 추억'을 연재해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에 선정되었으며, 그 글은 동명의 산문집으로 엮여지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추억", 자인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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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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