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실내. 무관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큼지막한 파란 수건을 이마에 두른 남자가 걸어온다. 통로 중간에 선 그는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준비해 둔 피켓을 들고 잠시 서 있는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 축구협회 조중연 전무님 기억하시나요?`
피켓 제일 앞머리 글귀다.

축구계의 2가지 벽 축구협회와 붉은 악마

근 1년간 지하철 내 1인 피켓 선전전을 해온 김대성(38)씨. 이마 위에 ‘FROZA BLUEWINGS’라고 적힌 수건과 등에 맨 수원 블루윙즈 가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수원 팀의 서포터다.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가 수원 팀 창단 때부터 서포터즈 활동을 해 온 것도 모자라 지난 봄부터 피켓 선전전에 나섰다. 그 이유에 대해 김씨는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와 붉은 악마를 ‘공공장소’로 끌어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현재 축협과 붉은 악마는 한국 축구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따로 노는 존재죠. 우선 축협은 한국 축구의 본사에요. 그런데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축협과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축협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하지만 결국엔 메아리가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들리든 안 들리든 직접적으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붉은 악마 집행부는 고고한 신선들 같아요. 그들은 노사모를 진지하게 들여 다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집행부들은 이렇게 주장하죠. 프로 축구로 가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포팅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한국 축구의 현실에서는 너무 이상적이에요.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 축구의 문제를)이슈화 시켜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축협 사무실에서 나와 야죠. 이런 관점에서 우리 축구계의 2개 벽인 축협과 붉은 악마를 공공장소로 끌어내고 싶었어요"

결국 그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한 지하철에서 선전전을 벌여왔다. 선전전이라고 하지만 요란할 건 없다. 준비한 피켓을 들고 지하철 내의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서 있는 정도. 그렇다면 피켓에는 어떤 내용들이 적혀있을까?

▲ 지하철 내 1인 피켓 시위를 하는 김대성 씨
ⓒ 스포츠피플 박예준
피켓에 보니 조중연 전무에 대한 얘기(`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 축구협회 조중연 전무님 기억하시나요?`)가 있는데 자세히 설명해 달라.
"조중연 전무는 축협이 하는 일의 중심에 있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한 말은 항상 문제가 돼 왔어요.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저 말을 한 게 99년 이었는데 저 때가 클라이막스였어요. 당시 `할 일 다 하면 자신도 물러날 거다`라고 했는데 아직도 한식은 오지 않고 있죠. 이번에 국가대표 선수들 성과급 균등지급 해야 된다고 할 때도 `공산주의적 사고 방식`이라고 말했고, 박항서 문제가 있을 때도 조 전무가 중심에 있었어요. 얼마나 말을 많이 했는지 몰라도 이제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저 같이 일개 시민은 안 그래도 되요. 하지만 저 사람은 말 한마디가 다 파장이 되요. 권력이 클수록 책임을 져야죠. 물론 조 전무가 물러난다고 한국 축구가 10년은 발전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저 사람을 물러나라고 하는 건 축협이 지켜야 할 수많은 원칙 중 하나인 겁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축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건 룰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10년 대계, 100년 대계 이런 게 룰이죠. 한국 축구는 한번도 축협이 말한 대로 간 적이 없어요. J리그가 20년간 룰을 지켜올 동안 한국은 안 지켰죠. 그리고 그 지켜오지 않은 중심에 저 사람이 있었어요."

- 그 아래에는 스포츠 5개 일간지의 축구부 기자 숫자를 표로 그려 놨는데 이건 뭔가?
"축협에서 한국 스포츠 언론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인터넷 언론이 생겨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이번 대선 전 까지만 해도 언론은 한국 사회를 벼랑 끝에도 내몰았다가 천당으로 끌고 가는 역할을 했어요.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론이 축구에 냉소적이라는 게 문젭니다.

80-90년대 우리나라가 프로야구로 천하통일이 되면서 야구의 인기가 올라가고 또, 야구는 매일 경기가 있기 때문에 기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이런 현실이 그 후 지금까지 한국 스포츠 언론을 좌우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국 스포츠 언론들은 축구 담당 기자를 늘려야 해요. 국어 교사한테 역사 가르치라고 하면 못 하듯이 야구 기자한테 축구 기사 쓰라고 하면 잘 쓰겠어요?

축구팬들은 월드컵 대표팀이 잉글랜드 대표팀과 대결하는 데도 스포츠 신문 1면에 기사가 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이건 축구 협회의 문제라고 봅니다. 협회 직원들이 그래요. 자기들도 답답한데 방법이 없다고. 이건 배째란 얘기예요. 언론이 축구에 냉소적이지 않게 할 방법을 찾아야죠. 그게 축협에서 움직여야 할 원칙인 겁니다."

상무의 K리그화 "오물을 뒤집어 쓴 거 같다"

▲ 김대성 씨가 들고다니는 피켓 앞면의 내용
ⓒ 스포츠피플 박예준
- 1년 동안 하면서 피켓 내용이 바뀌기도 했나?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말고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이슈를 얘기했어요. 1년간 이 일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축협이 원칙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 원칙이란 단순히 한 가지 상황에 대한 게 아니고 비전을 만들고 그에 맞는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전략을 차곡차곡 쌓아야 돼요. 축협 사이트에 가면 <한국 축구 10대 과제>라고 있어요. 대체 몇 년 간의 10대 과젠지 모르겠어요. J리그는 그걸 몇 년 안에 만들었어요. 한국 축구는 아직 시기상조다 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엔 상무를 K리그에 포함 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은데.
"그것도 원칙과 관계된 문제예요. 어떤 이유로든 아마는 프로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피파 규정 아티클 1장, 2장에 나와 있어요. (그는 가방에서 원서로 쓰여진 피파 규정 사본집을 꺼내 해당 규정을 보여줬다) 선수 신분과 이적에 관한 규정입니다. 선수 규정을 보면 아티클 1장 선수는 아마와 비아마로 구분된다. 아티클 2장 축구로 대가를 받는 사람은 프로고 아닌 사람은 아마다. FIFA가 이걸 왜 1, 2장에 규정해 놓겠습니까. 이건 세계 축구를 움직이는 기본 틀이에요.

결국 한국 축구는 2006년에 again 2002가 아니라 지금껏 안 지켜 온 사소한 걸 지키는 거 그게 돼야 합니다. 상무가 K리그에 들어온 건 축구 팬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이예요. 오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이에요. 물론 몇몇 선수는 좋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20년 간을 잘난 국가대표 몇 명을 위해 희생돼 왔습니다."

- 피켓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1년간 하면서 딱 한 사람이 질문 했어요. 40대 아저씨가 와서 ‘무슨 얘기냐’고 묻더군요. 기본적으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방침입니다. 논쟁을 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너무 두려웠다" - 피켓 시위 덕에 한나라당 당원으로 오인 받은 사건

1년간의 선전전 동안 특별한 일 한번 겪지 않았던 김씨. 하지만 그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직업이 교사인 덕에 겨울 방학을 맞은 그는 지하철이 아닌 축구협회로 선전전이 아닌 시위에 나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가 시작. 축협 건물 앞에서 말뚝이 탈을 쓰고 피켓을 들고 있던 김씨에게 축협 직원으로 보이는 직원 둘이 다가와 탈을 벗기고 사진을 찍은 것.

"저한테 한나라당이 보낸 사람이라면서 선관위에 고발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너무 화가 나서 탈을 벗고 그 말 취소하고 찍은 필름을 안주면 방송사 불러다가 이슈화 시키겠다고 했어요. 마침 제가 캠코더를 가지고 있어서 그 장면을 찍었거든요. 그 때가 축구 원로들이 정몽준 회장 축협 회장직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던 즘이라 그랬던 거 같아요"

당시의 일을 회고하며 김씨는 "사실 너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캠코더로 찍지 않았으면 어떤 협박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정작 본인은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노동당 지지자라는 그는 아직까지 자신이 찍힌 사진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 일부러 캠코더를 갖고 다닌다는 김씨. 축구협회로 두 번째 시위를 다녀온 이 날도 그는 작은 캠코더를 가방에 챙겨왔다. `두려운 일`까지 겪어가며 김씨가 시위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개인적으로 얻는 건 `스트레스` 밖에 없어요. 한번은 장인어른이 피켓을 숨기시고는 `내가 잘 보관해 놨네` 그러시더라고요. 달라는 말을 못했어요. 제가 하는 일이 옳건 그르건 간에 사위를 챙기는 마음으로 하신 일이니까요."

▲ 피켓에 적힌 내용을 보기 위해 한 시민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보고 있다
ⓒ 스포츠피플 박예준
- 스트레스 밖에 얻는 게 없는데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뭔가?
"게시판에 써 놓은 걸 지키려는 거 뿐이에요. 축구팬들이 말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쓰거든요. 붉은 악마는 너무 현장을 외면하고 고고한데 도취돼 있고, 마니아들은 게시판에서만 열성적이에요. 경기장에서 열심히 응원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당장 붉은 악마가 축협에서 나와 가난하고 낮은 곳으로 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시위를 집단화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고민도 있었는데 제가 말하는 게 다 맞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걸 온전히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이 일을 시작했지만 ‘끝을 봐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없고요"

인터뷰의 끝 무렵 김씨는 다시 한번 "두렵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간 직후 자신에게 올 일들이 두렵다는 것.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인터뷰를 한다는 건 다가올 모든 액션을 감당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그가 기다리는 건 봄이다. 3월이 되고 K리그가 시작되면 그는 피켓도 응원팀인 수원과 관련된 내용으로 바꿀 계획이다. 그리고 작년처럼 올해도 수원이 우승하는 걸 보고 싶다.

- 그 전까지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아, 지금 2종 클럽팀 등록 하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있어요. 축협 생긴 이후로 가장 잘 한 일이에요. 제대로만 되면 한국 축구의 근간을 바꿀 수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이 일 해야죠."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풀었던 `FROZA BLUEWINGS` 수건을 이마에 두르고 피켓을 집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또 한명의 시민을 만나기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서 제공했습니다.

2003-01-16 11:30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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