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지도자를 하려니까 공을 차는 것과 지도는 또 다릅디다. 새로운 시작이더라고. 선수 때 배운 거 갖고는 안 되서 유럽으로 갔어요. 69년에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로 유럽에 다녀 온 후 10년 뒤에 처음으로 간 거지. 코칭 스쿨 과정을 들으러 독일로 가서 3개월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 때 유소년 축구를 좀 더 활성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힘들 때면 찾아가는 선생님 산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 제일모직에 입단한 김 감독은 8년간의 국가대표 생활을 마친 후 지도자로 변신했다. 79년 세계청소년대회 코치, 한일은행, 현대프로축구단, 94 미국 월드컵 대표팀, 그리고 현재 수원블루윙즈 감독까지 그의 지도자 인생도 벌써 25년째다.

▲ FA컵을 우승으로 이끈 김호(수원) 감독
ⓒ 스포츠피플 김진석
베테랑 감독 김호의 첫 지도자 데뷔 무대는 출신 학교인 부산 동래고. 그의 나이 34세였다. 넉넉치 않은 월급에도 김 감독은 제자 양성에 힘썼다. 덕분에 그의 후배들은 대학에도 가고 대표 선수도 됐다. 그로부터 6년 뒤 김 감독은 모교를 떠났다. 지방 학교의 축구 지도자가 처할 수밖에 없는 가난. 현실을 이기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던 것. 후배들을 가르칠수록 축구 발전을 위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느꼈다는 김 감독. 그 때 시절을 떠올리던 그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 혹시 다시 하실 생각은 있으세요?
"지금도 고등학교 지도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잘 모르겠는 게 내가 나이도 있고 체력이 뒷받침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래도 저는 고등학교를 좋아해요. 젊은 선수들도 좋고."

- 감독님이 존경하는 스승님도 계셨죠?
"고등학교 때 나를 길러준 안종수 선생님. 그 분을 아직도 존경해요. 기술 이전에 인성교육을 많이 해 주셨고. 지금까지도 1년에 3,4 번씩은 선생님 산소에 가요. `깊은 뜻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가서 다짐을 하는 거지. 사춘기 시절에 선생님 덕에 방황 안 하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해 준 많은 교육 때문에 자신감도 느꼈고, 변화도 많았죠."

- 가장 큰 변화가 어떤 건가요?
"그 땐 환경이 어렵고 축구를 하기 힘든 시기라 그만 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이 그 때마다 우리를 도와 주셨어요. 그 분도 진짜 깡통을 찰 정도로 어려웠는데 내색 한번 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런 분들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 거예요. 저도 그 분 뜻을 따르기 위해 모교에 와서 6년간 있었던 거구요. 정말 그 분을 존경합니다."

힘들 때마다 돌아가신 스승의 묘를 찾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앉아 있는다는 김 감독. 스승이 살아생전에도 둘의 관계는 특별했다. 스승의 한 마디면 그는 말속에 포함된 10가지 뜻을 알아들었다.

"안 선생님이 무슨 얘길 하면 애들이 슬슬 내 눈치를 봤다고. 김호가 어떻게 하나 보는거야. 이상하게 나는 안 선생님 말을 딱 들으면 `아 저렇게 해서 이렇게 가야겠다` 생각이 됐거든. 그러다 가끔 내 생각이 맞는지 한 번씩 (선생님께) 물어봐요. 그럼 `거 니가 어찌 아노` 그러신다고. 기특한 거지."

지도자 생활 25년,"이제 선수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압니다"

- 지금 김 감독님 한테 그런 제자 분이 있나요?
"딱 내 맘을 아는 건 윤성효(현 수원 삼성 2군 코치·40) 하나야. 성효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 제자거든. 그 놈은 내 숨소리만 들어도 뭘 얘기하는지 알아요. 그런 제자가 평생에 한 명 있기 힘들지.

내가 축구계에 사십 몇 년 있으면서 그런 사람 있다는 게 참 고마워요. 그 놈은 틀림없어. 술 한 잔도 못 먹으면서 술 다 마시는 사람 보다 인간관계도 좋고"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렇게 말 잘 듣는 제자는 "평생에 한 명 있을까 말까"다. 말 안 듣는 제자들 때문에 김 감독역시 시커멓게 속이 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을 터.

ⓒ 스포츠피플 김진석
말 안 들었던 제자 얘기도 해 주세요.
"많지. 내가 동래고에 있으면서 많은 제자들을 졸업 시켰다고. 그런데 그 많은 제자 중에 딱 3명을 대학 못 보냈어요. 그 놈들은 축구를 해선 안 되는 놈들이었거든. `니네 축구하지 마라` 그랬다고. 죽을 때까지 그 놈들은 내 맘 속에 남아있을거야.

그래도 그 애들이 지금은 다 잘 됐어. 그 때는 나를 원망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동창애들 보다 지가 더 잘 돼 있거든. 그러니까 인제 아는 거야. `아, 인생이 이런 것도 있구나` 그래서 지도자의 보람은 세월이 더 흘러봐야 아는 거 같아."

- 수원 선수 중에서는요?
"고종수, 데니스, 산드로"

묻기가 무섭게 그는 세 선수의 이름을 호명했다. "재능은 있는데 재능만 가지고 선수 하는 게 아니지. 하이클라스로 갈수록 개인만 가지고는 안 되거든. 외국 선수 중에 펠레나 마라도나 처럼 유명한 스타들은 조직보다 개인 능력으로 경기를 많이 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조직을 중시해야 돼요.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조직이 강해지고 개인 능력이 감소되는 옛날로 돌아가는 거지."

그렇게 말 안 듣는 선수를 길들이는 김 감독만의 노하우는 `강의와 숙제`다. 김 감독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선수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고 그때마다 숙제를 내준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선수가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체크한다.

"숙제를 내 줬는데도 안 변하는 애들이 있어. 그런 애들은 여자친구가 생겼다든지 가정에 문제가 있다든지 도박을 한다든지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걸 치료 해주는 게 지도자의 방법론이란 거지. 치료를 해주면 좋은 길로 가는 선수도 있어요. 또 전혀 안되는 선수도 있는데 그러면 결국에 말을 안 해요. 나는 말을 안 하면 그 사람하고 죽을 때까지 말을 안 해. 왜? 내 말이 필요 없는데 왜 말을 하나. 잔소리로 들리는데. 그래서 선수들한테 `내가 말 안 할 때 조심해라` 항상 얘기하지."

동래고 감독 시절부터 수원 블루윙즈 창단 감독이 되기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로 선수들을 지도해온 김 감독. 그 간 수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지만 김호 감독에겐 변치 않는 지도 철학이 있다. 25년간 살아 온 김 감독의 지도자 인생사에서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일까?

- 처음 지도자 생활 했을 때부터 시작하면 25년이 지났는데 지금과 비교한다면 뭐가 달라졌나요?
"엄청나게 변화가 있었죠. 가장 큰 게 지금은 제가 싫을 때가 있어요. 선수들을 계속 가르치다 보니까 어떤 기운을 많이 느낍니다. 내 방에 가만 누워 있으면 우리 선수들이 뭘 생각하는지 다 알 정도가 돼 버렸어요. 그게 싫은 거야. 또 시합 나갈 때 오늘 이기겠다 지겠다 이런 걸 많이 느낍니다. 감이 빨리 오죠."

-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있죠. 변하지 않는 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장 할 수가 없다`는 거. 아무리 세대가 바뀌어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그걸 절대로 해결 할 수가 없어요."

- 그게 감독님이 갖고 계신 지도 철학인가요?
"그렇죠. 저는 시간 엄수, 정직 그런 거 지키는 사람 좋아해요. 그 담에 운동선수는 준비를 잘 하는 선수. 다시 말해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지."

ⓒ 스포츠피플 김진석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야, 자신 안에 있는 거야"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들에게 "노력하라"고 말해 온 김 감독. 그는 분명 누구보다 그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왔다.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이 대부분인 한국 축구계에서 고졸 출신의 그가 여기까지 온 과정이 쉽지 만은 않았기 때문.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를 `고독한 승부사`라 부른다. 처음 그는 `고독한` 이라는 말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승부사`란 말에 대해서는 달랐다. "중요한 건 승부가 아니라"는 것.

"나는 이래 봅니다. 스포츠는 이기려고만 하면 안 돼요. 팬들한테 즐거움을 줘야지. 승부사라는 건 늘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잘 해나가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부삽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승부사가 되기 위한 제일의 덕목으로 `인내`를 꼽았다.
"제가 작년 1년 동안을 거의 쇼파에서 잤어요. 우승 많이 하고 팀이 점점 잘 될수록 자꾸 나태해 질 수가 있거든요. 스스로를 자학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선수들한테도 은연중에 풍겨요. 나도 모르게 선수들이 나를 보면서 강한 느낌을 받는 게 많은 거죠."

선수들에게 강한 느낌을 주는 지도자. 김호 감독은 그 느낌을 `지도자의 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지도자의 폼`은 선수들에게 향기롭고 좋게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강한 것, 폭군 같아 보이는 카리스마 같은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지도자에게 항상 뭔가가 있을 거다`라고 느끼는 게 바로 김 감독이 말하는 `지도자의 폼`인 셈.

ⓒ 스포츠피플 김진석
"감독이 말하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듣는 게 아니고 이걸 왜 요구하는가를 알 때까지 연구 해야지. 그래야 강한 사람이 되는 건데. 때론 운동 마치고 합숙소 나와서 소주도 한잔 마실 수 있다 이거야. 그럼 그 때는 푹 빠져서 소주 먹고 잊어버리는 거야. 돌아와서 나라는 존재는 그거하고 전혀 별개로 있어야 되는 거지.

그런데 우린 노는 것도 아니고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밑에 사람들은 더 그래요. 목적이, 내가 왜 축구를 하는가 하는 목적이 없어. 그런데 나는 중학교는 어디 가고 고등학교는 어디 가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대도. 또 우리 팀에서 누가 제일 잘 하나? 그 담에 우리 고향에서 누가 제일 잘 하나? 경남에서 누가 제일 잘 하냐. 항상 점검하는 거예요. 결국에 전국에서 누가 제일 잘 하나까지 가는 거지."

- 그런 면 때문에 승부사란 얘기를 들으시나 봐요.
"승부사라면 겉으로 강한 거, 남한테 이기는 거 그런 게 아니에요.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거든.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거야. 내가 수비 안 하면 우리 팀이 지는데. 내가 빨리 공격에 가담 안 해서 득점 안 나면 우리 팀이 잘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요?"

"안 그래요?"라는 물음에 무슨 답이 필요할까. 그의 말엔 자신이 `고독한 승부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흔히 생각하듯 그가 `주류`의 틈에서 살아남은 `성공한 비주류`란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가 고독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는 데 있다.

"지도자가 되는 순간부터 고독했어요. 하나의 팀을 만들기 위해 혼자 많은 고심을 하고 오랜 생각을 해야 꽃을 비울 수 있어요. 내 인생 20여년을 바쳤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나는 문제예요. 됐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을 텐데. 항상 어렵고 힘듭니다."

승자도 패자도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싸움`. 오늘도 그는 끝나지 않을 `고독한 승부`를 위해 인내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서 제공했습니다.

2002-12-20 15:1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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